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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을 거부하는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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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세대도, 성별도 각기 다른 10명의 비(非) 페미니스트를 만났다. 114주년 세계 여성의 날(3월 8일)에 보도한 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의 기획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당신에게'를 준비하면서였다. 주변에는 페미니즘의 가치를 인정하고, 삶 속에서 실천하고자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평소에 사회 여러 지표에서는 뚜렷이 드러나는 반(反) 혹은 비 페미니즘 진영의 존재감을 느끼기 어려웠던 터라 기사를 빌려서 깊은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다.
여성 우월주의. 페미니즘을 향한 거부감을 가진 이들은 한국에서의 페미니즘을 이렇게 표현하며 변질했다고 지적했다. 남성뿐 아니라 여성의 반감도 컸다. 한 20대 여성은 "페미니즘이 여성의 권리에만 치중되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든 사례가 인상적이었다. 낮은 '남성 육아휴직률'이 일종의 역차별이라는 이야기였다. 통계청의 2020년 육아휴직통계를 보면 육아휴직자 중 남성은 22.7%에 불과했다.
전체 육아휴직자 중 남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년 증가하는 추세라지만 아직도 드물다. 이 여성 역시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분위기를 설명하며 "제도적으로는 남성도 육아휴직이 가능하지만, 여성 육아휴직과 달리 남성은 실제로 쓸 경우 다음 인사 발령 때 소위 '아오지(북한의 악명 높은 탄광 지역)'라 불리는 곳으로 발령이 난다"라고 했다. 이어 "이러한 부분에는 (페미니즘이) 큰 목소리를 내는지 잘 모르겠다"라고 전했다.
남성 육아휴직에 눈치를 주는 일은 차별이다. 다만 이 차별은 페미니즘이 존재해서가 아니라 '부족해서' 일어난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남성 육아휴직이 드문 이유는 성평등한 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육아를 여성의 일로만 여기는 분위기가 만연하고 일·생활의 균형을 지원하는 조직 문화도 자리를 잡지 못했다”라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또 "성별 임금 격차로 상대적으로 임금이 높은 남성이 휴직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페미니즘은 육아는 여성의 몫이라는 가부장적 사고에서 벗어나 남성에게도 육아의 책임을 지운다. 남성 육아휴직을 주도적으로 장려하는 부처 역시 여성가족부다. 여가부는 육아휴직 활성화를 위해 가족친화인증기업에 남성의 육아휴직 이용 시 가점을 주고 '아빠 육아휴직 수기집' 등 관련 공모전을 열어 제도 및 인식 변화에도 힘썼다. 여성 군인에게만 육아휴직을 허가하는 군인사법 개선 의견을 낸 것도 여가부다. 조금만 찾아봐도 낮은 남성 육아휴직률을 페미니즘이 외면한다는 말은 틀렸음을 금방 알 수 있다.
남성 육아휴직뿐 아니다. 여성 전용 주차장, 여성 할당제 등도 막상 들여다보면 페미니즘에 의한 역차별이라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최근 한 MBC 시사교양 프로그램에 출연한 남성이 여가부 폐지를 지지하며 "혈세 낭비가 심하고 말도 안 되는 정책을 내민다"라고 말했다. 제작진이 어떤 정책이 있는지를 묻자, 돌아온 대답이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다"여서 화제가 됐다.
페미니즘을 비판하면서도 정작 무엇인지는 모르는 아이러니다. 어떤 대상을 싫어하거나 비판하려면 제대로 아는 일이 먼저다. 그런데 유독 페미니즘에는 '잘 모르지만 일단 싫다'라는 반응이 앞선다. 이런 거부와 오해가 잘 몰라서인지 혹은 그저 모르고 싶어서인지는 정말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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