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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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 Words : 여성의 언어
"저는 정치적 공방 속에 다뤄지지 않는 '틈'을
메우는 일을 하러 국회에 온 사람입니다."
국회의원 김예지,
2020년 10월 한국일보 인터뷰 中
Her View : 여성의 관점
<51> 혐오를 저지한 여성
(2022년 3월 31일자)
독자님, 안녕하세요. 허스토리입니다. 넘치는 혐오와 차별 발언으로 부지불식간에 마음에 상처를 입거나 불쾌해지는 일이 생기는 날들입니다. 1년 전인 2021년 4월 1일, 허스토리는 첫 뉴스레터로 여러분을 찾아갔습니다. 당시 제목을 무척 고민하다 '모든 차별과 혐오에 단호히, 그리고 함께'라 정했던 기억이 나요. 여성 혐오는 물론이고 장애인, 이주민, 성소수자 등에 대한 차별과 배제도 비일비재하게 목격하는 나날 앞에서, 다시 한번 초심을 다져보게 됩니다.
장애인 혐오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였습니다. 그는 지속적으로 남녀 갈라치기를 부추기며 '여성 혐오' 정서를 활용해 자신의 입지를 다진다는 비판을 받아 왔는데요. 이 대표는 지난달 25일부터 4일 동안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무려 14개 이상 글을 올리며 장애인 이동권 확대와 예산 확보를 위해 지하철 승하차 시위를 하고 있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에 대해 "수백만 서울시민을 볼모로 잡는 시위를 중단하라"는 주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출퇴근 시간대 시위 장기화로 시민들의 불편이 없지는 않으나, 갈등을 조정할 정치가 사회적 약자의 권리 투쟁을 콕 집어 '불법 집회'로 비판하는 공당 대표의 모습에 시민들은 개탄했습니다. "이미 여성이 절대 약자라거나 장애인이 절대 선자라는 프레임은 작동하지 않는다"며 소수자의 권리 투쟁을 '언더도그마(약자는 무조건 선하고 강자는 무조건 악하다고 인식하는 현상)'로 몰고 가는 발언에 분노하기도 했습니다. 시민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하는 기본권은 '착한 여성' '선한 장애인'에게 시혜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곧 여당을 이끌 이 대표가 '몰라서' 한 발언은 아닐 겁니다.
고장 난 브레이크를 단 열차처럼 폭주하는 '혐오 정치'의 장에 제동을 건 이가 있습니다. 바로 시각장애인인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입니다. 지난달 28일 오전 8시, 안내견 조이를 데리고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승강장에 선 그는 정치권을 대표해서 사과하겠다며 맨바닥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순간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머리를 푹 숙이며 괴로워 하고, 조이도 덩달아 함께 엎드립니다. 한국일보가 현장의 모습을 기사와 영상으로 담았는데요. (https://url.kr/fxj16y) 뉴스레터에는 김 의원의 발언 일부만을 옮겨 봅니다.
"헤아리지 못해 죄송하고 공감하지 못해 죄송하고 적절한 단어 사용이나 소통을 통해 여러분과 마음을 나누지 못해서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 정치권을 대신해서 제가 대표로 사과드립니다. (...) 정치권에서 해결하지 못한 일을 여러분이 겪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 이준석 '혐오 정치'에 김예지가 무릎 사과… 침묵하는 국민의힘 (https://url.kr/s583qr)
김 의원의 험난한 출근길에 함께 한 여성 의원이 또 있습니다. 발달장애인 동생을 둔 장혜영 정의당 의원입니다. 장 의원은 이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당의 대표는 국민에 대한 봉사자입니다. 장애인들이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제1의 책무입니다. 시민들과 싸우지 마시고 차별과 함께 싸웠으면 좋겠습니다." 네, 이제는 차별에 맞서 싸울 때입니다.
▶ 전장연 '출근길 시위' 현장 찾은 인수위… 일부 시민, 시위대에 박수도 (https://url.kr/gvq7b9)
이번 주 전 세계가 주목하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온몸으로 평화와 공존을 이야기한 여성이 있습니다. 바로 배우 윤여정입니다. 지난해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받고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시상자로 나선 윤여정은 간단한 수어 동작으로 수상자 발표를 열었는데요. 바로 주인공은 영화 '코다'의 청각장애인 배우 트로이 코처였습니다. 코처가 수상소감을 하려면 두 손을 써야 했는데, 윤여정은 재빠르게 배우 대신 트로피를 대신 들어주며 배려의 품격을 보여주었습니다.
▶ 윤여정 '청각장애 배우' 트로피 들어준 이유 (https://url.kr/1bdyck)
그의 검은색 드레스에 유독 눈에 띄는 액세서리가 있었습니다. 바로 왼쪽 어깨에 달린 푸른 리본이었는데요. 리본에는 '난민과 함께'란 뜻의 영문 '#With Refugees'가 적혀 있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발생한 난민을 지지하는 상징이었습니다. 시상식보다 조금 앞선 지난달 23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윤여정은 57년 연기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로 김수현 작가의 '모래성(1988)'의 몇 문장을 꼽았는데요. "누구도 누굴 함부로 할 순 없어. 그럴 권리는 아무도 없는 거란다. 그건 죄야." 그의 모든 생각과 행동, 그리고 표현이 이 대사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감상이 들었습니다.
물론 평화를 사랑하고, 공존을 노래하며, 차별에 저항하는 것이 여성만의 속성은 절대 아닙니다. 유전자에 새겨진 선천적 기질 같은 것도 아니지요. 하지만 사회의 가장자리에서 구조 안팎을 두루 살피고 공감하는 데에는 '소수자' 혹은 '약자'의 경험이 무척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높은 권력을 향해 달려가기보다, 단 한 번이라도 주변부에 위치했던 이들이 탁월한 공감 능력을 발휘하는 이유입니다. 허스토리는 앞으로도 이런 여성들의 서사를 여러분과 함께 써 내려가고 싶습니다.
Her Story : 여성의 이야기
다큐멘터리 '오픈 셔터'
한국의 불법촬영 범죄를 보도하던 한 기자는, 자신도 자신의 집에서 감시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때마침 한국에는 '불법 촬영'을 규탄하는 여성들의 전국적 움직임이 거세지고...
독자님, 매주 이 코너에는 제가 직접 읽거나 감상한 콘텐츠를 추천하곤 했는데요. 시즌1의 마지막 뉴스레터인 만큼, 오늘은 허스토리 구독자인 도유진 다큐멘터리 감독의 다큐멘터리 '오픈 셔터'를 소개합니다. 미 시사주간 타임도 지난달 7일, 도 감독과 다큐멘터리를 소개했는데요. 이번 작품이 한국의 여성들이 처한 디지털 성범죄 실태를 세계에 알리고, 국제적 연대를 도모하는 계기가 되길 허스토리도 응원하겠습니다.
딱 1년이 되었습니다. 지난 1년간 허스토리가 다루는 대부분 이슈는 공론장에서 범람하는 '차별과 혐오 발언'에 대한 저항이었습니다. 대체로 분노했고 허탈했으며, 이따금 무기력함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한번 세상의 흐름을 정리하고 여러분과 연결될 수 있어 보람찼습니다.
독자님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 공유하고 싶은 경험 등은 무궁무진한데 모든 것을 다 하지 못해 안타까운 날들이 많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허스토리를 사랑하는 분들과 더 좋은 기억을 쌓아갈 수 있을지 재정비 기간에 깊이 고민하겠습니다. 허스토리 피드백 구글폼과 이메일 편지함(herstory@hankookilbo.com)은 언제나 열려 있으니, 뜨거운 응원과 탁월한 제안 등은 언제나 환영이랍니다. 그럼 건강히 다시 만나요!
※ 본 뉴스레터는 2022년 3월 31일 출고된 지난 메일입니다. 기사 출고 시점과 일부 변동 사항이 있을 수 있습니다. 뉴스레터 '허스토리'를 즉시 받아보기를 원하시면 한국일보에서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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