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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임(꾐)에 빠지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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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뢰배의 꼬임을 듣고"('월하가인', 1911년), "상전되는 사람의 꼬임을 받았을 뿐이라"('금국화', 1913년)처럼 100여 년 전 신소설에서 '꼬임을 듣다/받다'라는 표현을 종종 볼 수 있다. 신소설에서 '꼬임(꾐)'과 어울리는 낱말 짝인 '듣다, 받다'는 지금은 거의 찾기 어려워 생소한 느낌이 든다. 신소설에서도 지금처럼 '꼬임에 빠지다'도 쓰이지만 '듣다'나 '받다'도 빈번하게 어울렸다. 꼬임(꾐)이 '듣다'와 잘 어울린 이유는 '말, 소식, 소문' 등이 '듣다'와 짝을 이루는 것과 같이 꼬임이 '언어(말)'와 연관되어 이루어지는 행위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꼬임(꾐)은 "어떠한 일을 할 기분이 생기도록 남을 꾀어 속이거나 부추기는 일"이라는 의미이다. 요즘은 '꼬임에'와 같이 '에'가 붙어 '꼬임에 빠지다, 꼬임에 넘어가다'로 주로 쓰인다. 꼬임(꾐)과 연이은 낱말 짝이 변화되는 과정을 보면 먼저 '꼬임을 듣다'의 사용 빈도가 줄고 '꼬임을 받다'도 '꼬임을 당하다'로 대체되는 경향을 보인다. 1990년 이후 신문을 검색할 수 있는 빅카인즈를 보면 꼬임과 어울리는 '듣다, 받다'는 출현 빈도가 20회가량으로 지극히 적게 나타나 활발한 쓰임이라고 할 수 없다. 이제 '꼬임을 듣다/받다'는 낯선 말이 되었다.
꼬임(꾐)을 '받다/듣다'는 사라지고 '꼬임에 빠지다'가 널리 쓰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에 빠지다'가 '유혹, 함정, 음모, 계략' 등 부정적인 낱말과 짝을 이루는 것에 유추하여 꼬임(꾐)도 '빠지다'와 함께 사용하는 빈도가 높아지면서 '꼬임을 받다/듣다'가 자연스럽게 밀려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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