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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을 사는 백인 남성 '보통씨'의 일상, 묘하게 끌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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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대신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작품을 김봉석 문화평론가와 윤이나 작가가 번갈아가며 소개합니다. 매주 토요일 <한국일보>에 연재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었을 거다. 대학을 갓 졸업한 남자가 혼자 여행을 갔다가 연상의 여성을 만나 멋진 추억을 갖게 된다. 인생이란 아름답구나. 앞으로 이런 일들이 종종 일어나겠지. 하지만 그런 일은 두 번 다시 없었다. 아주 특별한, 인생에 단 한 번도 있을까 말까 한 일이 우연히 일어난 것이었다. 나이가 들어서야, 그 남자는 진실을 알게 된다. 인생이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인생은 지루한 것이다. 애플TV플러스의 '미스터 코먼'이 보여주는 인생도 무척이나 심심하다. 30대 초반의 조쉬 코먼은 샌 페르난도 밸리의 공립학교에서 5학년을 가르치는 선생이다. 한때 뮤지션을 꿈꿨고 밴드도 했지만 이제는 포기했다. 함께 음악을 했던 약혼녀와도 헤어졌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집에 오면 소파에 앉거나 누워 TV를 보고 비디오 게임을 한다. 어릴 때부터 친구이며 룸메이트인 빅터도 택배 일에서 돌아오면 함께 시간을 보낸다. 새로운 일도, 특별한 사건도 없다.
지루한 일상을 바꿔보고 싶은 조쉬는 친구들을 불러 무엇을 할까 고민한다. 그러다 엄마인 루스에게 픽업해 달라는 전화가 오자, 바로 출동한다. 돌아온 조쉬는 친구들과 가끔 놀던 클럽에 간다. 그러다 한 여성을 만나고, 서로 호감을 느껴 집으로 가게 된다. 하지만 '원나잇 스탠드'는 조쉬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뭔가 특별한 것을 만나고 싶다. 가족, 친구들하고만 어울리는 지루한 인생에서 벗어날 수 있는 무엇이 필요하다. 하지만 보통의 삶에 구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미스터 코먼'은 심심한 드라마다. 장르는 코미디라고 돼 있지만, 웃음은 실소에 가깝고 주로 느끼는 감정은 씁쓸함이다. 인생이 뭐 그렇지, 라는 말을 반복하며 보게 된다. 이제 40대에 들어선 조셉 고든 래빗이 요즘 각광받는 영화사 A24와 함께 제작하고, 10개 중 8개의 에피소드를 직접 연출한 '미스터 코먼'은 보통 남자의 일상을 그리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가진 뮤지션의 꿈은 포기하고, 비교적 안정적이지만 지루한 날을 보내는 남자. 조셉 고든 래빗은 '미스터 코먼'이 '매우 개인적인 이야기'라고 말한다.
예술가가 되려다 실패한 사람 만나기가 제일 힘들다, 고 흔히 말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예술로 표현하려 했던, 자유롭지만 유아독존인 사람이 실패했으니, 자격지심과 분노가 가득 차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선입견으로 조쉬 코먼을 보면, 대체로 들어맞는다. 조쉬의 마음속에는 늘 무엇인가 들끓고 있다. 보기에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사람이지만 아주 예민하고 까탈스럽다. 공황장애와 불안증에 시달리고, 가끔 환각도 본다. 거대한 혜성이 하늘을 날아 이곳에 떨어지는 망상은 늘 있다. 세상이 모두 망해버렸으면 좋겠다는 마음. 환각처럼, 거리를 헤매는 홈리스 같은 이를 자주 본다. 어쩌면 나도 저렇게 낙오자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
가족사 때문일 수도 있다. 아버지는 무명 뮤지션이었고, 어머니와 이혼한 지금도 한량으로 대충 살아가고 있다. 어머니는 아버지 때문에 내내 고생했고, 여동생은 결혼해서도 종교에 파묻혀 살아가고 있다. 뮤지션이 되기를 원하는 조쉬는 아버지처럼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지대했다. 결국은 불안감 때문에 원하는 일을 포기한 것은 아닐까. 그리고 미스터 코먼은 지지부진한 날을 살아가고 있다. 1년간 전혀 음악을 하지 않으면서.
보통의 삶이다. 확실한 길은 어디에도 없다. 꿈을 좇는 것과 안정적인 생계수단을 마련하는 것. 둘이 하나로 통합된다면 좋겠지만 대체로 어느 하나에 쏠리게 된다. 가난하고 불안정해도 꿈을 꿀 것인가, 평온하고 다부지게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만들 것인가. 어느 것도 틀리지 않지만, 인간은 하나를 선택하면 포기한 것에 더 마음이 가기 마련이다. 조쉬는 좋은 선생이다. 아이들의 말을 잘 들어주고, 자신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면 기꺼이 해명도 한다. 인정하고 수정하기도 한다. 이렇게 교사로서 평생을 살아가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무언가 불안하다. 이대로 인생을 계속 가도 좋을까 두려움이 인다.
동네 친구가 일하는 클럽에 놀러 갔다. 마음 상하는 일도 약간 있었지만 잘 놀았다. 집에 가려는데 주차장에서 시비가 붙어 싸움을 했다. 아마도 이긴 것 같고, 기분 좋게 야식도 먹고 잘 헤어졌다. 아침이 되어,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싸우다가 바닥에 쓰러지면서 머리를 부딪혔는데, 그때 뇌출혈이 있었던 것이다. 친구 장례식에 갔다가 전 약혼녀 메건을 만났다. 조쉬가 그만둔 후에도 메건은 음악을 계속했고, 음반도 내게 됐다. 조쉬는 메건의 집까지 가게 되고, 친했던 메건의 가족을 만나고, 안부를 나누고 헤어진다. 세상은 조쉬의 생각이나 일상과 무관하게 제멋대로 흘러간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 같지만, 모든 것은 변해 간다. 그리고 조쉬의 인생도 영향을 받는다.
'미스터 코먼'은 팬데믹으로 변해버린 일상도 흥미롭게 관찰한다. 학교 수업도 비대면이고, 가족을 만나는 방식도 변한다. 조쉬는 소개팅을 줌으로 하게 된다. 한국계인 에밀리. 두 사람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줌으로 하니 더 자연스럽다. 실제로 만난다면 주위를 의식하고, 상황을 연출하고, 상대의 모든 것을 감정하면서 나의 행동과 상대의 반응을 일종의 거래처럼 주고받아야 한다. 조쉬와 에밀리는 각자 저녁을 먹으며 대화하고, 침대에 각자 누워서 말하다가 잠든다. 일상에서, 과학으로, 깊은 인생 이야기까지 털어놓는다. 에밀리는 한때 우울증이 심해 몇 달간 밖에 나가지 못했다고 말한다. 조쉬는 불안증이 있다면서, 자신의 상태가 심각한 줄 알았는데 나만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다음날이 되고, 조쉬와 에밀리의 이야기가 깊어지면서 서로 다른 점들이 드러난다. 백인 남성과 아시아계 여성의 사회적 처지와 고민은 다를 수밖에 없다. 조금씩 이야기가 어긋나기 시작하다가, 에밀리는 말한다. 이번 팬데믹으로 가장 당황하는 것은 백인 남성들이다. 그들은 특권을 가졌기 때문에, 기존의 사회가 변하고 흐트러지는 것에 제일 민감하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이른바 '팩폭(팩트 폭격)'에 당황한 조쉬는 줌 통화를 끊어버린다.
조쉬에게 필요한 것은 변화다. 어중간한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확실하게 마무리를 해야 한다. 조쉬는 1년간 쉬었다가 조금씩 곡을 만들어 왔다. 곡 작업을 끝내야 한다. 음반으로 내건 말건, 성공하건 말건 이제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해온 일을 마무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좋아서 하는 일을 충실하게 끝내야 한다. 그렇게 백인 남성 조쉬는 곡 작업을 마무리하고, 에밀리에게 메시지를 남긴다. 인생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단락이 시작되는 것이다.
'미스터 코먼'은 우울하고 애매모호한 남자의 지루한 몽상과도 같은 드라마다. 그를 보는 일은 참 심심한데 묘하게도 끌리고 계속 보게 된다. 당연하게도 시즌2는 캔슬되었다고 한다. 미스터 코먼의 일상은 참 지루하니까. 그런 점에서, 캔슬에 동의한다. 그를 계속 보기보다, 이제는 나의 일을 정리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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