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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산업부 '통상 쟁탈전' 점입가경... 인수위 "발언 삼가라" 경고

입력
2022.03.31 00:10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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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美, 통상 이관 부정적" 보도에 발끈
산업부 손사래에도 "외국 등에 업었다" 격앙
인수위 측 "뚜껑 열어봐야..." 확전 자제 당부

외교부(왼쪽 사진)와 산업통상자원부. 연합뉴스

외교부(왼쪽 사진)와 산업통상자원부. 연합뉴스

외교부와 산업통상자원부의 ‘통상 쟁탈전’이 점입가경이다. 조만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의 정부조직 개편안 초안 발표를 앞두고 각각 통상 기능을 이관(외교부)하고 사수(산업부)하려는 양측의 논리 대결이 감정 싸움으로까지 번진 것이다. 두 부처의 신경전이 격화하자 30일 결국 인수위가 나섰다. “개별 부처는 공개발언을 삼가라”며 경고장을 날린 것이다.

외교부와 산업부의 정면 충돌은 전날 한 언론 보도가 발단이 됐다. 미국 행정부 고위관료가 산업부가 맡고 있는 통상업무 기능을 외교부로 이관하는 것에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외교부가 발끈했다. 외교부는 밤늦게 돌연 출입기자들에게 보낸 입장문에서 “국익ㆍ국격에 대한 일말의 고려 없이 사실에 반하는 내용을 소위 타국 정부 입장으로 왜곡해 국내 정부조직 개편 논리로 활용하려는 국내 부처의 행태가 매우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외국을 등에 업었다” 등 정부 보도자료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격한 표현도 다수 등장했다. 부처 이름을 명시하진 않았지만, 해당 기사를 사실상 통상 업무를 내주지 않으려는 산업부의 ‘여론전’으로 판단하고 격앙된 감정을 가감없이 노출한 셈이다.

외교부 직원들은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통상 기능이 떨어져 나간 9년간 잠재됐던 불만이 일시에 분출됐다는 것이다. 한 직원은 “아무리 경쟁관계여도 산업부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직원은 “산업부에서 통상 업무는 아르바이트지만, 우리는 본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처 간 ‘밥그릇 싸움’으로 비칠 수 있어 그간 말을 아꼈으나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난 이상 충돌을 불사해야 한다는 분위기다.

산업부는 당혹한 기색이 역력하다. 해당 보도 직후 “사실 무근”이라는 취지의 자료를 냈는데도, 외교부가 한밤중에 언론 플레이를 하는 등 너무 예민하게 군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산업부 관계자는 “안 그래도 부처 간 다툼을 우려하는 여론이 강한데, 저렇게 (외교부처럼) 공개 대응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정부조직 개편과 관련해 진행 중인 인수위 절차에 따라 착실히 대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두 부처의 기싸움이 위험 수위에 이르자 관망하던 인수위도 부담을 느낀 듯 제동을 걸었다. 원일희 인수위 수석부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인수위가 큰 틀에서 (조직 개편을) 검토하고 있는데, 개별 부처의 공개 발언이 나오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자제를 당부했다. 아직 개편 초안도 발표하지 않은 만큼, 섣불리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지 않겠다는 뜻이다. 인수위 관계자는 “외교부ㆍ산업부 각자 논리에 모두 수긍할 부분이 있다”며 “최종 결과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김민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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