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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新) 김치종주국선언을 생각한다

입력
2022.03.31 04:30
25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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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0월, 농협은 세계 최초로 '김치종주국선언문'을 발표해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일본이 기무치를 앞세워 김치종주국 지위를 위협하던 시점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이 김치종주국임을 세계만방에 선언한다'던 외침은 미국에까지 퍼져 김치의 수문장 역할을 했다.

약 30년이 흐른 지금, 김치종주국 지위가 또 흔들린다. 지난해 한국김치가 4만2,500톤 수출될 때, 외국산 김치는 24만600톤 수입됐을 정도로 저가물량 공세가 거세다. 2019년 한 조사에 따르면 식당의 80%가 외국산을 쓴다. 최근 불거진 국·내외 김치 파동은 불안감만 더한다.

하지만, 반전의 기회는 있다. 역설적으로 코로나19가 김치에 기회를 줬다. 지난해 프랑스 몽펠리에 의과대학 장 부스케 교수는 '김치가 코로나19 증상 완화에 매우 효과적'이라는 연구로 김치의 면역 효과를 밝혔다. 구글 검색어 분석 결과 코로나19 발생 직후인 2020년 5월, 김치 관련 검색량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부터 미국 캘리포니아주 등 3개 주가 우리와 같은 11월 22일을 김치의 날로 정해 한국김치에 힘을 실어줬다.

기회를 살려 김치종주국 지위를 다잡아야 한다. 주목할 건 프리미엄이다. 지난해 한국김치 수출량은 수입량의 6분의 1 수준이지만, 수출액은 15년 만에 수입액을 앞질렀다.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김치의 국가명 지리적 표시제'를 서둘러 도입해 배추·고춧가루·마늘 등 재료 모두 국산을 사용한 김치에만 '한국산' 명칭을 부여해야 한다. 까망베르 등 프랑스 치즈가 명품인 건 '원산지 보호 명칭 제도(AOP)'로 원료·생산지·제조법을 엄격히 관리하는 덕이다. 아울러 국산김치의 공공부문 공급을 제도화하고, 국산을 쓰는 외식업체엔 과감한 인센티브를 주자.

BTS 등 세계를 휩쓰는 'K컬처'에 '한국김치'를 접목하기도 더없이 좋은 때다. 외국 김치소비자의 약 70%가 한국 문화를 접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동시에 '제주' 맥주, '강릉' 커피처럼 '지역산'이 각광받는다. 김치는 그 종류만 40여 가지에 지역별로 맛과 스토리도 특색 있다. 이를 살리면 하루아침에 넘볼 수 없는 경쟁력이 된다.

농협도 기민하게 움직일 것이다. 4월 1일 '한국농협김치'를 선보인다. 8개로 나뉜 지역농협 김치공장과 브랜드를 하나로 묶고, 지역별 특화 김치를 생산한다. 판매관리비를 낮추고, 원료 계약재배는 늘려 합리적인 가격을 채택할 것이다. 미주·유럽 유통망도 구축 중이다. 30년 만에 '신(新) 김치종주국 선언'을 한다는 각오다.

새 선언엔 애국심을 넘어 믿을 수 있는 국산재료에 맛과 먹는 재미까지 더한 김치를 만든다는 의지가 담길 것이다. 의지에 실행을 더하면 김치의 '위기'는 반드시 '기회'로 반전될 수 있다.


이성희 농업협동조합중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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