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줄 수 없는 위로를 콕 집어 추천하는 동네 서점

입력
2022.04.07 14:00
<4> '후란서가'의 맞춤형 추천 프로그램

편집자주

내 마음을 돌보는 것은 현대인의 숙제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이후엔 우울증세를 보인 한국인이 36.8%에 달하는 등 '코로나 블루'까지 더해졌죠. 마찬가지로 우울에피소드를 안고 살아가는 보통 사람, 기자가 살핀 마음 돌봄 이야기를 전합니다. 연재 구독, 혹은 기자 구독을 누르시면 취재, 체험, 르포, 인터뷰를 빠짐없이 보실 수 있습니다.

범람하듯 계속해서 쏟아져나오는 콘텐츠의 공급에 대부분 플랫폼과 미디어는 '추천' 기능을 만들어냈다. 게티이미지뱅크

바야흐로 콘텐츠 큐레이션(추천) 시대다. 1인 미디어와 통신 기술의 발달,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도래로 콘텐츠는 순식간에 차고 넘치게 됐다. 대부분의 플랫폼과 미디어는 '추천' 기능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인공지능(AI)의 알고리즘은 취향을 빠르게 분석할지언정 콘텐츠 선택 그 너머에 숨어있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지는 못한다. 취향은 파악할 수 있을지 몰라도 교감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발견했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독립책방 '후란서가'에서 진행되는 '오늘도 고뇌하는 당신께(오고당)' 프로그램. '당신의 내면 치유를 위한 프라이빗 서비스'라는 수식에 관심이 갔다. 과연 자아 성찰 질문지와 점성술을 기반으로 한 취향·성향 보고서는 내면 치유의 시간을 줄 수 있을 것인가.

향으로 긴장 완화하고 스스로 분석하는 시간 가져

2월 3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독립책방 '후란서가'에서 기자가 '자아성찰 질문지'에 답을 쓰고 있다. 손성원 기자

프로그램은 크게 '자아성찰', '자아탐구', '자아치유'의 단계로 이뤄졌다. 2월 3일 오후 찾아간 후란서가에서는 재즈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서점은 대개 1층에 위치한 독립서점과 달리 2층에 있었다. 서점 내부 벽면에는 각종 태블릿 컴퓨터에 그림을 그린 디지털 드로잉, 구제 소품 등이 진열돼 있었다. 감각적이고 몽환적인 인테리어, 대형 서점에서는 찾기 힘든 독립출판물들이 동네서점만의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렸다.

프로그램 진행자이자 책방을 운영하는 김후란 대표와 향 테라피를 시작했다. 기자는 시트러스(citrus·감귤류), 플로럴(floral·꽃), 우디(woody·나무향) 중 시트러스를 택했다. 잔잔한 음악과 은은한 향 덕인지 약간 긴장된 마음이 가라앉았다.

이후 '자아성찰' 질문지가 주어졌다. 질문지는 크게 '나를 정의내리기', '자주 느끼는 감정', '고민', '취미·취향' 등으로 이뤄졌다. 기자가 질문지를 채우는 동안 방문 전 미리 기자의 생일과 별자리를 파악한 김 대표는 '자아탐구용 분석리포트'를 작성하고 있었다.

15분 정도 지났을까. 무의식 속에 숨어있는 고민을 쥐어짜낸 후 김 대표와 마주앉아 대화를 시작했다. 기자가 직접 들여다본 내 모습과 점성술을 공부한 김 대표가 파악한 내 생일별 특성·성향을 종합해 자아를 탐구하는 시간을 가졌다.

'자아탐구 분석리포트'는 생일과 별자리 등 점성술을 책과 논문을 통해 공부한 김 대표가 직접 만들었다. 원래 광고 회사에 취직해 기획자, 카피라이터로 일했던 김 대표는 마음을 돌아보고 깊은 생각을 담은 글을 쓰는 걸 좋아해 이런 프로그램을 기획했다고 한다. 내면의 불행을 끌어온 수필 '나는 불행하면 글을 쓴다'를 출간하기도 했다.

내 성격에 꼭 맞는 추천 작품 목록

2월 3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독립책방 '후란서가'에서 기자가 김후란 대표와 대화를 하고 있다. 손성원 기자

'자아탐구용 분석리포트'를 받자마자 깜짝 놀랐다. 그동안 TCI(Temperament and Character Inventory·기질 및 성격 목록),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 성격 유형 검사, MMPI(Minnesota Multiphasic Personality Inventory·미네소타 다면적 인성검사) 등 각종 성격 검사 결과에서 나왔던 평가와 너무나 비슷했기 때문이다.

맞춤형 취향 저격 추천 목록이 주어졌다. 문학과 음악 등 예술적 감각이 민감한 기자를 위해 프랑스 시인 크리스티앙 보뱅의 지적 수필인 '작은 파티 드레스', 시인 기형도의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가 추천됐다. 박정용 선곡가가 다채로운 음악을 추천해주는 'Music for Innerpeace' 등도 포함됐다.

1월 '오고당 프로그램'을 다녀온 최혜문(31)씨는 추천 목록을 받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추천 영화 목록 6편 중 3편은 이미 좋아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최씨는 "김 대표와 대화하면서 '평정심'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내 무의식 속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감정이 뭔지 파악하게 됐다"고 전했다.

AI 알고리즘은 절대 알려줄 수 없는 깨달음

2월 3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독립책방 '후란서가'에서 기자가 박연준 작가의 책 '소란'을 필사하고 있다. 손성원 기자

이 프로그램을 하기 전 기자는 삶에 대한 의욕과 스스로에 대한 응원 및 위로를 얻고 싶었다. 김 대표가 파악한 기자의 생애별 특징 및 취향을 함께 살펴보면서, 현재 △새로 시작한 업무가 잘 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 △완벽주의적 성향에 따른 지연 행동 등이 기자를 괴롭히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장' 욕구가 강하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됐다. 좋아하는 영화 종류와 취미인 수필 쓰기 등이 결국 내면의 성장을 이끌어주는 디딤돌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기울어지는 것들만 골라서 사랑하는 유별난 취미가 있고, 그것은 천성이나 성격과 관계된 일일지도 모르겠다. (…) 기운 모습이 밉지 않은 것은 기운 내 마음을 긍정하고 싶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박연준 작가의 책 '소란' 발췌


프로그램의 끝은 김 대표가 추천해준 책을 필사하는 일이었다. 한 문장 한 문장 곱씹고 꾹꾹 눌러 적으며 기자는 느꼈다. 예술적이고 예민한 감각 탓에 자주 불안하지만 그만큼 스스로를 긍정하고 성장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는 것을. AI 알고리즘은 절대로 줄 수 없는 의욕과 위로를 얻으며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책방을 나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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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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