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짜리 대통령 뭐 대단하다고"

입력
2022.03.28 18:00
26면

윤 당선인, 문 대통령에게 한 말대로
다 뒤집거나 모든 분야 성과 낼 수 없어
‘통합’ 한 가지만 잘해도 박수 받을 것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창업허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워크숍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창업허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워크숍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 뒤 국정수행을 잘할 것이라는 답변이 절반에 그친 여론조사가 여럿이다. 초박빙 선거 결과의 영향이 없진 않겠지만 18대 대선에서 근소한 차로 이긴 박근혜 당선인이 80%가량의 긍정평가를 받았던 것에 비하면 유독 낮은 수치다. 윤 당선인에게 바라는 것을 물은 또 다른 여론조사에선 ‘통합’ 다음으로 두 번째가 ‘열심히 잘하길 바람’이었다. 담임선생이 학생에게 의례적으로 건네는 상투어가 ‘열심히 잘해 달라’는 당부다. 이들 조사가 함의하는 바는 지지자들조차 정권교체를 원해 찍었지만 그에게 큰 기대는 않는다는 정서가 읽힌다.

의욕이 충만한 윤 당선인으로선 수긍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정치에 처음 발을 디뎌 숱한 난관을 뚫고 대통령이 된 과정 자체가 능력과 자질을 입증하지 않느냐고 항변할 만하다. 문재인 대통령처럼 뒤로 숨지 않고 전문가들 의견을 들어 신속히 판단하면 뭐가 문제냐 싶을 것이다.

대통령 권력이 가장 강한 때가 당선 직후다. 대한민국의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과 의욕이 용솟음치는 순간이다. 윤 당선인을 보면 투우장 문이 열리기 기다리며 숨을 몰아쉬는 싸움소를 보는 듯하다. 무대에 오르기만 하면 당장에 성과를 내리라는 결기가 엿보인다.

선거 끝나기가 무섭게 돌출된 청와대 이전이 조급한 성과주의의 산물로 보이는 것은 그래서다. “봄꽃이 활짝 핀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드린다”는 것만큼 확실히 성과를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는 없다고 생각한 게 아닌가. 당장은 반대가 많아도 일단 옮겨 놓으면 이명박 서울시장 때 청계천 개발처럼 ‘대통령 윤석열’의 브랜드가 될 거라는 확신이 선 것 같다. 그 취지에는 공감해도 왜 청와대에 단 하루도 들어가지 않으려 하는지에 대해선 적잖은 보수 지지층도 고개를 갸웃한다.

국민이 윤 당선인에게 바라는 최우선 순위가 청와대 이전은 아니다. 대다수 여론조사에서 나타났듯 그가 가장 해줬으면 하는 것은 통합이다. 윤 당선인은 현 정권에서 발탁됐다 경쟁 당 후보로 나와 대통령이 된 전무후무한 사례다. 공동체가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하는 진영 간 대립을 치유하고 화해시킬 적임자인 셈이다. 국민이 윤석열을 택한 이유도 바로 이것이 아닐까. 어찌 보면 코로나 극복, 양극화·불평등 해소, 신성장 동력 확보 등 산적한 과제는 국민 마음을 하나로 모으면 해결책이 보이는 하위명제다.

윤 당선인은 아직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말로는 통합과 소통을 강조하지만 겉치레에 그치는 느낌이다. 자신이 직접 지휘봉을 잡고 기자들 질문에 답한다고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 모든 것을 밀실에서 결정해 놓고 사후에 얘기하는 건 소통이 아니라 ‘쇼통’일 뿐이다. 대통령 집무실과 프레스센터 사이의 물리적 거리가 문제가 아니고 쓴소리도 경청해 반영하겠다는 의지가 중요한 것이다.

“혼밥을 않겠다”는 다짐은 좋지만 같은 편하고만 먹으면 오히려 동질성과 위계만 강화된다. ‘소통 대통령’이라고 불린 오바마 전 대통령은 점심을 야당 지도부와 자주 하며 국정 협력을 당부했다. 윤 당선인은 백악관의 웨스트윙을 모델로 삼지만 공간에 앞서 미국 대통령들의 소통법부터 배워야 한다.

윤 당선인은 후보 때 한 인터뷰에서 “임기 5년짜리 대통령이 뭐가 대단하다고. 너무 겁이 없다”며 문 대통령을 비판했다. 그의 말대로 불과 5년만 있을 대통령이 나라를 통째로 뒤집을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5년 동안 갈라치기를 통해 국민 통합을 악화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윤 당선인이 정작 전임자와 차별화할 대목은 바로 이 부분이다. ‘통합’ 하나만 잘해도 5년 뒤 박수 받으며 떠나는 대통령이 될 것이다.

이충재 주필
대체텍스트
이충재주필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