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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아가씨' 김윤정 "의성의 따뜻한 정을 노래합니다"

입력
2022.04.02 10:00

마을서 35년간 '앞소리' 도맡은 아버지 재능 물려받아
복지관, 경로당서 주민과 어르신들 대상으로 공연
'여자의 일생' 따라 부르며 우는 어르신 보며 보람


김윤정씨가 무대에서 ‘의성 아가씨’를 열창하고 있다. 박상은 기자

김윤정씨가 무대에서 ‘의성 아가씨’를 열창하고 있다. 박상은 기자

"스무 살 꽃봉오리 눈물로 물들이고 산수유 꽃이 필 때 떠난 그님. 금성산에 단풍져도 왜 아니오나, 애타는 이 마음을 어이하라고, 오늘도 눈물짓는 의성 아가씨."

'이것은 시인가 노래인가?' 답을 하자면 의성 지역가수 김윤정(57)씨의 대표곡 '의성 아가씨'의 노랫말이다. 한국 가요계는 요즘 늘씬한 키에, 잘생긴 외모, 멋진 패션 감각을 뽐내는 젊은 가수들이 주름잡고 있다. 이들은 TV 화면은 물론이고 인터넷 음원 사이트까지 장악중이다. 그러나 최근 경북 의성에서만은 지역 가수 한 사람이 조용한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 바로 '의성 아가씨' 김윤정이다.

우리나라에는 매년 노래 수만 곡이 발표되지만 대중 곁에서 사랑받고 길게 살아남는 노래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런 현실 속에 부산 갈매기, 목포의 눈물, 영일만 친구, 안동역, 연안부두와 같은 곡들은 오랫동안 사랑받고 애창되고 있다. 이는 가사 속에서 느껴지는 강한 지역적 유대감, 삶의 애환, 추억, 그리움 등이 녹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지역 공동체의 자긍심 고취와 지역민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고리 역할을 하는 노래들은 돈으로 살 수도, 환산할 수도 없는 가치를 지닌다. 김윤정은 자신의 노래가 전국적으로 히트하지는 않았지만 이처럼 지역민들로부터 사랑받고 유대감을 갖게 해주는데 대해 큰 자부심을 느낀다.

그는 경북 의성 사곡면에서 5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나 계속 의성에서 살고 있다. 그녀가 가수를 하게 된 것은 순전히 아버지의 영향이다. 아버지는 나무를 하러 산에 오를 때마다 막내딸을 지게에 태운 채 노래를 부르곤 했다. 그러다보니 언제부턴가 아버지가 부르던 노래를 흥얼흥얼 따라 부르게 되었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하던 일을 멈추고 흐뭇한 표정으로 가만히 들어주셨다. 어린 마음에도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 한 행동이 가수로 만든 것이다.

비록 전국적 인기 가수는 아니지만 지금도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고 살아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녀의 시원시원하고 감칠맛 나는 목청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았다.

"아버지는 1998년 79세로 세상을 떠나실 때까지 마을에서 35년간 ‘앞소리’(상여가 나갈 때 상여 소리를 선도하는 사람) 도맡아 하셨어요."

아버지가 처음 앞소리를 할 때만 해도 30년이 넘는 긴 시간 이어질 줄은 몰랐다, 젊은 층이 도시로 빠져나감에 따라 뒤를 이어줄 사람이 없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아버지만큼 목청이 좋은 분이 없었던 탓이었다.

"아버지는 돌아가실 무렵 딱히 잘해준 것이 없어 미안하다고 말씀하셨지만 그건 아니었어요. 항상 막둥이인 나를 지극한 사랑으로 대해 주셨고, 이렇게 노래를 할 수 있는 좋은 목청을 물려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아버지가 물려준 재능 덕분에 50이 넘은 나이에도 가끔 ‘즐거운 놀라움’을 누리기도 한다. 8년 전쯤. 어느 분이 공연을 보고 나이를 훨씬 젊게 보았는지 맞선을 제의했다. 그냥 웃고 넘겨버린 맞선 제의는 무려 4차례나 들어왔다. 그 중에는 일본 남자도 있었다고 한다. 이 같은 사실은 물론 남편은 모르고 있다고 웃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공연 직후 안동에서는 고맙다고 예쁜 한복을 맞추어 주거나 청송분은 고로쇠 물로 담근 된장, 고추장을 선물해주기도 했다. 아흔 넘은 영덕 어르신이 꼬깃꼬깃 접은 천원권 지폐를 차비하라고 건네주는 인정을 만나기도 했다. 시골은 아직까지 정이 있고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곳임을 실감하는 것 역시 지역 가수이기에 얻게 되는 과외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의 주 무대는 언제나 넓고 화려한 공연장이 아니다. 그보다는 지역의 복지관, 경로당에서 지역 주민과 어른들에게 즐거움과 위안을 드리는 무대가 더 많다 하겠다. 이런 곳들을 방문할 때면 어르신들께서 참 따듯하게 맞아주어 도리어 위안을 받고 힘을 얻게 된다고 말했다. 경쾌한 노래를 부를 때면 일어나서 춤을 추지만 '여자의 일생' 같은 슬픈 노래를 부르면 함께 우시는 분도 있다. 공연이 끝나면 다가와 손을 잡아 주며, 고맙다는 분. 노래를 듣고 마음속 응어리, 울분 같은 것이 풀렸다며 다시 꼭 와 달라며 눈물을 훔치기도 한다. 이런 분들을 볼 때마다 "내가 노래하길 참 잘 했구나" 하는 보람을 느낀다고.

의성은 1960년대 후반에는 인구 22만명으로 대구 못지않은 군세를 자랑했다. 지금은 당시보다 많이 축소됐지만 의성인을 하나로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싶어한다. 그녀는 2006년 1집 '의성 아가씨', 2008년 2집 '세월에 장사 없다' 등 지금까지 총 두 개의 앨범을 발매했다. 그의 노래는 주로 허기춘 작사, 홍성욱 작곡이다. 허기춘은 남진의 '잘가라 청춘아'를 작사했다.

그녀는 코로나 이전에는 월 평균 13~15회 공연했다. 복지관, 양로원, 노인정, 지역 축제, 행사, 교회에서 운영하는 노래 교실 등을 많이 찾았다. 큰 행사 경우 출연료를 받기도 하지만 때로 무료로 무대에 오르기도 한다. 본인이 전문적으로 섭외해서 가는 것은 거의 없고, 대부분 초대를 받아 간다.

차량 운전은 물론이고 매니저 역할까지 본인이 직접 맡아서 한다. 그러다 보니 교통비와 의상 비용을 제외하면 수익 창출은 별로 없다고 할 수 있다. 남편은 의성읍에서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어 그녀를 도와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결국 지역 봉사 개념과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기에 지속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은 세련되고 고급스런 요리도 좋지만 할머니, 어머니의 된장찌개 한 그릇이 입은 물론이고 영혼까지 감싸줌을 느낀다. 지역 가수 김윤정의 노래는 된장찌개를 비롯한 우리의 전통 음식과 같다고나 할까. 김윤정은 코로나 19가 끝나, 지역민들과 다시 함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고대하고 있다. 그는 "타지 분들이 건강 먹거리와 관광자원이 많은 의성을 방문, 의성인의 따뜻함과 정을 느끼고 가시기를 바란다"고 고향 사랑도 잊지 않았다.

박상은 기자 subutai117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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