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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십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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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의 소설은 깔끔하다. 이야기의 결말은 꽉 닫혀 있고, 사건의 진실에 대해 독자에게 별다른 상상의 여지를 허용하지 않는다. 모범적인 지주의, 요즘 말로 하면 서울 시내 중대평형 아파트 하나쯤은 끼고 있지만 자기는 늘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이들을 위한 이야기랄까. 반면 브론테 자매의 소설들은 모호하다. 자본주의의 폭풍이 본격적으로 몰아치기 시작하는 시대의 그것답다. 오! 독자여, 저는 그와 결혼했습니다! 그래 제인, 잘됐구나, 그 망할 자식을 차지해서.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그놈은 사랑하는 제인, 나와 중혼을 해주오, 라고 말할 용기도 없는 놈팽이고 너희 부부는 둘 다 식민지를 착취했어. 하지만 아무 말도 안 할게. 우리는 피차 문학소녀였던 의리가 있으니까.
동생 에밀리의 작품, '폭풍의 언덕'은 언니보다 더 모호하다. 라틴어나 그리스어를 빼고는 서재의 모든 책을 읽었다는 소설 화자 넬리의 설명은 문학소녀로서 의리를 갖고 아무리 잘 봐주려 해도 어딘가 음흉하다. 토지 소유권은 날아가고 가문의 적자는 비참하게 몰락하며 어디서 일확천금을 벌어 온, 출신이 불분명한 놈팽이들이 거들먹거리며 고풍스러운 저택을 접수하는 와중에 멋도 모르고 전원주택에 대한 막연한 도시인적 환상에 빠져 요크셔의 저택에 세들어 살기 시작한 화자, 록우드씨도 그렇게 느꼈을 테다. 그러나 재미있다면 무슨 상관이랴. 분명히 객관적 진실은 – 그런 진실이 존재한다면 – 언뜻 객관적이고 때로 야비할 정도로 냉정한 넬리 딘이 의도적으로 숨기는 그 어떤 곳에 있을 것이다. 지금 시대에 태어났다면 어디서 주워들은 헛소리들을 믿고 여가부 폐지론이나 밀고 있을 헤어튼이나 광화문에 출몰하는 태극기 부대였을 조셉의 입장에도 귀를 기울이다 보면, 숨겨진 진실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 독자여, 당신도 그렇겠지만, 나 역시 조셉이 하는 이야기 따위는 듣고 싶지 않다.
'폭풍의 언덕'은 그런 점에서 오스틴의 소설보다 우리의 사정을 더 잘 대변한다. 록우드씨처럼,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내적 친밀감을 쌓고(책에 적힌 낙서만 보고 그는 히스클리프도 홀딱 속아넘어갈 캐서린을 꿈속에서 창조해낸다), 그들의 로맨스에만 관심을 가지며, 사건의 진실은 어떻건 상관없는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적어도 노골적으로 그런 시대,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히스토리(history)보다는 가십(gossip)의 시대가 된 것이다. 이준석의 시대. 넬리가 누구보다 정확하게 이해했던 것은 어쩌면 그런 현대적 세태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세태에 맞춰 '폭풍의 언덕'에 관해 내가 밀고 있는 히스토리, 혹은 가십은 이렇다. 언쇼씨의 히스클리프에 대한 집착을 보자. 주워 온 아이 때문에 친자식들을 위한 선물을 분실하고, 소형차 가격이 나가는 말을 사 주고, 그 아이를 조금만 패면 자기 자식을 팬다. 어째서? 남자는 이렇게 자비로운 동물이 아니다. 그는 언쇼씨가 리버풀의 정부에게서 낳은 친자식이고, 정부가 죽든지 도망가든지 했기에 히스클리프를 데려온 것이다. '제인 에어'의 아델, 즉 아버지가 낳아 온 사생아의 조금 더 의뭉스러운 버전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헤어튼에 대한 히스클리프의 기묘한 애정 역시 설명된다. 오, 독자여, 친조카니까! 넬리는 아마 이것 역시 알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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