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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尹 만남 앞, 온라인에 퍼진 2008년 1월 노무현의 발언

입력
2022.03.28 15:00
수정
2022.03.28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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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인수위 인사 갈등에 14년 전 데자뷔
2008년 1월 노무현 대통령 발언 '짤' 확산
이명박 당선인 측 "인사 자제" 세 차례 요청에
"한 번 더 인사 자제 요청하면 제 맘대로" 작심 발언
결국 이 당선인 의견 수용해 경찰청장 등 인사

2008년 2월 18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당선인이 청와대 안 대통령 관저에서 만나 국정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이 자리에는 문재인 비서실장과 유우익 비서실장 내정자가 배석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08년 2월 18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당선인이 청와대 안 대통령 관저에서 만나 국정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이 자리에는 문재인 비서실장과 유우익 비서실장 내정자가 배석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아직은 노무현 정부거든요. 지시하고 명령하고 새 정부 정책을 지금부터 준비하라는 것은 인수위 권한이 아니거든요. 만일 한 번 더 협조하라는 이야기가, 인사 자제하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모욕주기 위한 것으로 생각해 제 맘대로 할 것입니다."

요즘 온라인 커뮤니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8년 1월에 했던 발언이 캡처된 사진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띕니다. 아무래도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과 인사권 문제 등에 관한 의견 차이로 신구 권력 갈등이 불거지니까, 14년 전 정권 교체기에도 지금과 유사한 상황이 벌어졌던 것을 떠올렸던 것 같습니다. '데자뷔'라는 거죠.

누리꾼들이 이 사진을 공유한 목적은 입장에 따라 다릅니다. 사진과 함께 올라온 글이나 댓글 등의 반응을 보면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은 '현 정부의 정당한 권한과 책임'에 방점을 둔 문 대통령의 입장을 옹호하려는 차원에서,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순조로운 정권 이양에 비협조적인 민주당 정권을 비판하기 위해 게시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런데 이 발언 이후에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당선인 측은 인사 문제에 상호 협의해, 신임 경찰청장을 임명하는 등 원만하게 풀어나갑니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도 인사 문제 등을 두고 갈등을 이어왔지만, 오늘(28일) 만나기로 해 국민들이 기대하고 있죠. 물론 잘 풀지 못하면 갈등이 이어질 수도 있겠지만요. 그래서 양측이 잘 협력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당시 어떤 일이 벌어졌던 건지 찾아봤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해당 발언은 임기 종료를 50여 일 앞둔 2008년 1월 4일에 나왔는데요. 2007년 12월 19일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 지 14일, 딱 2주 만인데, 역시 인사권 문제가 발단이 됐었네요.

대선에서 역대 최다 표차인 557만 표차로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를 이긴 이명박 당선인은 인수위원장 임명(12월 25일), 인수위원 임명 및 인수위 현판식(26일)을 하며 차기 정부 국정 과제와 운영의 밑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합니다.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 청와대에 '인사 자제' 3회 요청

한국일보 2007년 12월 28일자

한국일보 2007년 12월 28일자

현 정부에 인사 자제도 요청합니다. ①대통령직인수위원회 김형오 부위원장이 12월 27일 인수위 첫 간사회의에서 "(새 정부 출범 이전 임기가 끝나는) 고급 공무원에 대한 인사는 현 정부에서 신중하게 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현 정부에서는 두 달이고, 그 다음엔 계속해서 차기 정부와 일해야 하기 때문에 차기 정부와 의논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한 것이지요. 지금 윤석열 당선인 인수위원회 측의 반응과 비슷하죠.

그러나 당일에 일이 벌어집니다. ②청와대는 같은 날 인사추천회의를 열어 예금보험공사 사장에 박대동 금융감독위원회 상임위원을, 자산관리공사 사장에 이철휘 재정경제부 대외부문 특별보좌관을 각각 내정하며 인사권을 행사한 건데요. 청와대 관계자는 "인수위가 고위직 공무원이나 공기업 간부 인사 자제를 요청할 경우 협의한다는 것이 기본 방침"이라면서도 "예보 사장과 자산관리공사 사장은 후임 인선 절차가 이미 진행 중이었고, 인사 협의 요청이 들어오지 않아 절차를 밟은 것"이라며 인사의 불가피성을 말합니다. 예보 사장의 경우 대선 전(2007년 12월 18일)에 후보 공모를 마감했다는 언론 보도도 확인이 됩니다.

이에 대해 ③이동관 인수위 대변인은 "(임기제 공무원에 대한 인사 자제는) 법으로 규정해서 따지기 이전에 정치적 금도나 정책적 양해의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불편한 심기를 내비칩니다. 이날 저녁 '임기제 공무원의 임명을 인수위원회와 적절히 협의해 달라'는 공문도 청와대에 보냅니다.

그런데 ④다음날인 28일에 비슷한 일이 또 벌어집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가 만료된 김경섭 감사위원 후임에 김용민 청와대 경제보좌관을 임명하고, 2008년 1월 14일 임기가 만료되는 전용태 중앙선관위원 후임에 강보현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를 내정합니다.

⑤인수위는 즉각 감사위원 인사를 예로 들며 "대통령 임기 말에 고위공직자에 대한 인사를 자제하는 것이 순리다. 불가피하게 꼭 해야 할 인사가 있다면 인수위와 협의하는 게 마땅하다"(김형오 인수위 부위원장)고 반발합니다.

그러자 ⑥청와대는 "새 감사위원은 이미 12월 10일 임기가 만료돼 임명 절차를 진행해왔고, 선관위원 역시 국회 인사청문회 등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청와대 인사비서관실에서 이명박 당선자 쪽에 이번 인사의 불가피성을 사전에 밝힌 것으로 안다. 앞으로 불가피한 인사는 이 당선자 쪽과 최대한 협조할 것"(천호선 대변인)이라고 재차 설명합니다.

⑦인수위도 논란이 커지자 부담을 느꼈는지 이동관 대변인이 "인사 협의는 정치적 요구 사항이 아니라 정치적 금도이고 양해 사항일 뿐"이라며 "청와대에서 양해해달라는 취지의 전화를 해오면서, '앞으로 계획된 임기제 인사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인수위 의견을 존중하겠다'고 말했다.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겠다"고 서둘러 불을 끕니다.


문재인 비서실장 "정무직 제외 공공기관은 직접 접촉하시라"

한국일보 2008년 1월 3일자

한국일보 2008년 1월 3일자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2008년 1월 2일 새 정부 출범 이전에 고위직 공무원이나 공기업 간부 등의 인사를 자제해 줄 것을 현 정부에 거듭 요청합니다. 김형오 인수위 부위원장이 현 대통령인 문재인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현 정부에서 임기가 만료되는 정무직 공무원 및 국책기관장 30여 명의 인사는 새 정부 출범 이후에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인수위와 협의해 달라"고 한 건데요.

이에 문 실장도 "정무직 공무원을 제외한 인사는 산하기관과 국책기관에서 결정하기 때문에 인수위에서 직접 접촉해 협의하는 것이 좋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인수위는 각 부처와 중앙인사위원회에 공문을 보내 임기말 인사를 자제하도록 요청합니다.

이렇게 보면 잘 협의하기로 된 것 같은데, 각 부처가 인수위에 업무보고를 하면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됩니다. 이명박 당선인은 수능 과목 축소 등 대학입시 자율화에 강한 의욕을 내비쳤었는데요, 1월 2일 담당부처인 교육인적자원부가 정부 부처 중 처음으로 업무보고 후 인수위가 "업무보고 내용이 상당히 미흡했다, 인수위의 기대에 크게 못미쳤다"(이주호 인수위 사회교육문화분과 간사), "이 당선인의 공약을 그대로 나열만 해 놓은 채 추진 예정이라고 적어 놓은 걸 보고는 정말 어이가 없었다"(인수위 실무자)는 등 불만을 나타냅니다.

이에 노무현 대통령은 3일 3부 요인과 정부 및 주요 인사 270여 명을 청와대로 초청한 신년 인사회에서 "중등교육 평준화가 풍전등화의 신세가 돼 있는데 어쩌겠느냐"며 "이러다 교육 쓰나미가 오는 것 아닌가"라며 우려를 표명합니다.


노무현 대통령 "내 맘대로 하겠다" "소금 뿌리겠다" 했지만

한국일보 2008년 1월 5일자

한국일보 2008년 1월 5일자

다음 날(4일) 서울 코엑스에서 1,000여 명이 참석한 경제계 신년인사회에서도 특유의 직설화법으로 작심발언을 쏟아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인사 문제에 자제해 달라고 해서 자제하겠다고 두 번 대답했는데, 한 번 더 인사를 자제하라고 하면 그것은 사람을 모욕주기 위한 것으로 생각해서 내 맘대로 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아마도 추측건대, 불가피한 인사를 제외하고 실무진들이 협조를 약속했는데도 세 차례나 인사 협의를 요청하니까 노무현 대통령 입장에서는 가만 보고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또, "(인수위가) 참여정부 정책을 무너뜨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며 "소금을 더 뿌리지 않으면 이야기를 그만할 것이고, 앞으로 계속 소금을 뿌리면 나도 상처를 입겠지만 계속 해보자"고 맞불을 놨네요. 이에 인수위 측은 "일일이 대응하지 않겠다"면서도 "노 대통령의 상황 인식은 잘못됐다"는 반응을 내놨는데요.


"이명박 당선인 의견 수용한 경찰청장 인사"

한국일보 2008년 1월 5일자

한국일보 2008년 1월 5일자

주목해야 될 것은 양측의 갈등이 고조된 이날(1월 4일) 청와대와 인수위가 새 정부 출범 전 임기가 끝나는 주요 고위직 공무원에 대한 인사를 협의하기로 결정했다는 발표가 나온겁니다. 양측이 설전을 벌이면서도 한쪽에서는 협의로 원만한 인사가 이뤄진 건데요.

당시 한국일보 보도(2008년 1월 5일자)를 보면, 인수위가 4일 브리핑에서 "김형오 인수위 부위원장과 박형준 기획조정분과 위원이 3일 청와대 문재인 비서실장, 차성수 시민사회수석을 만나 취임 전 임기가 끝나는 네 자리에 대한 인사 문제를 협의했다"며 "청와대는 경찰청장, 국가청렴위 상임위원, 중앙공무원교육원장, 국민체육진흥공단 감사 등 네 자리의 인선은 인수위 의사를 따르겠다고 밝혔다"고 발표합니다.


한국일보 2008년 1월 9일자 기사

한국일보 2008년 1월 9일자 기사

그리고 며칠 후에 차기 경찰청장으로 어청수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이 내정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을 2주 앞두고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의견을 받아들여 이뤄진 것이죠. 청와대도 거부감이 없었다고 해요. 덕분에 이택순 경찰청장의 임기가 끝난 2월 9일 다음 날인 10일 어 청장이 취임합니다.

외교통상부에 흡수 통합 가능성이 나왔던 통일부를, 존치하기로 한 결정(1월 7일)도 나옵니다. 물론 조직 규모를 축소하고, 기능을 조정하기로 방침을 정하지만요. 이건 여성가족부 폐지 문제에 참고가 될 만한 사례네요.

이처럼 14년 전에도 신구 권력 사이에 크고 작은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양측이 한발씩 물러나면서 하나씩 문제를 풀어나갔던 것 같습니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도 오늘 회동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집니다.

박민식 기자
박서영 데이터분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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