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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의 룰이 만드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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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의 집권은 흔들림 없이 22년을 이어왔다. 그는 러시아의 대통령 혹은 총리로서 미국 대통령을 5명째 상대했고, 5번의 월드컵을 지켜봤다. 김정은, 바샤르 알 아사드와 버금가는 사실상 종신 리더다. 그는 전제주의 통치권자의 전형과 같은 인물이다. 대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자국 군인만 1만여 명을 희생시키고, 냉전 이후 3차 대전에 가장 근접하게 세계를 내몰아간 전쟁광이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26일 공식적인 자리에서 그의 퇴진을 거론하기까지 했다. 푸틴의 꾸밈어들 가운데 바이든 대통령이 끄집어낸 '도살자'보다 의미가 정확한 단어는 찾기 힘들 것 같다.
푸틴이 국방예산만 따져봐도 15배(2019년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나 앞서는 나토를 압박하고 조지아(러시아명 그루지야)와 우크라이나를 수차례 침공하면서까지 권력을 지탱할 수 있었던 힘은 실체가 분명하다. 패권다툼으로 서방을 와해하고 소비에트 연방을 회복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집착. 다름 아닌 '푸틴의 룰'이다.
2001년 "유럽의 평화야말로 러시아의 영원한 목표다"라고 말해 앙겔라 메르켈 당시 독일 연방의원 등의 기립박수를 받기까지 했던 푸틴이지만, 이후 돌이켜보면 세계는 그의 권모술수에 당하며 체첸, 조지아, 우크라이나에서 역사의 퇴보를 수없이 목격해야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두 번째 국가안보보좌관 허버트 맥마스터는 저서 '배틀그라운드'에서 푸틴에 대해 "국가주의와 독재정치로 회귀하려는 강한 유혹을 느낄 것"이라 일찌감치 경고(2000년 4월)했던 데이비드 윈스턴 미 의회 전략고문의 글을 인용하면서 서방세계의 낙관을 후회했다. 맥마스터의 표현을 빌리자면 '(푸틴의) 러시아가 내뿜는 독기에 미국과 유럽이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결과를 지금 세계가 감당하고 있는 격이다.
푸틴의 패권 집착이 우크라이나에 불을 지른 지도 한달을 넘겼다. 기대했던 전과를 얻지 못한 그는 자비라도 베풀겠다는 듯 서둘러 출구전략을 펼치기에 이르렀다. 돈바스 등을 챙기면서 전쟁을 "끝내주겠다"는 신호다. 29일 외신들은 군사동맹 없는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 가입을 러시아가 동의해주는 휴전합의 초안 내용을 보도하기도 했다.
하루빨리 끝나야 할 전쟁이지만, 이런 식으로 흐지부지 휴전이 이뤄진다면 푸틴은 크게 잃을 게 없을 것 같다. 러시아군의 명성이 부서지고 제재의 굴레를 쓰게 됐지만 푸틴은 전범의 심판을 피하고, 손에는 여전히 유럽을 압박할 최고의 레버리지인 천연가스 카드가 남아서다. 파이낸셜타임스는 28일 흥미로운 칼럼 하나를 게재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서방세계의 안정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제목의 글은 전후 유럽의 경제난이 심화되면서 트럼프, 르펜과 같은 극우 포퓰리스트들이 득세해 결국 서방 자유민주주의 진영에 균열이 크게 일어날 것이란 내용이다. 실상 실패한 전쟁을 통해서도 오히려 러시아는 교묘하게 '푸틴의 룰'이 작동하는 세상을 향해 진일보한다는 분석이다.
우크라이나 침공에도 다시 '푸틴의 룰'이 성과를 내는 전망은 곳곳에서 현실화하고 있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개전 이후 "심각한 이웃(북한)을 둔 일본은 핵무장을 시급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했고, 미국은 역대 최대 국방예산안을 발표했다. 힘의 논리가 언제라도 피를 부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 사례는 군비경쟁에 불을 지폈고 핵무장 주장에 힘을 실었다. 세계는 그만큼 더 불안해지고, 푸틴이 추구하는 세상은 가까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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