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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점뉴스’ 맛집 탐방은 소통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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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이랑 밥 안 먹어요."
꿈에서 내지르고도 이게 생시인가 벌컥 겁이 났던 저 문장을 중학생 아들은 수시로 뱉는다. "아빠랑 밥 안 먹어요." 밥상머리 교육을 빙자한 훈계와 잔소리는 찬밥 신세다. 창피를 몇 차례 화로 볶다가 '(아빠를) 그래도 신뢰하니까 (아이가) 그나마 솔직한 거지'라는 긍정을 시식했다.
"아, 그랬구나" "저런, 힘들었겠다" "우와, 신났겠다". 추임새를 넣으니 아이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밥상에 수긍이라는 양념을 뿌리자 대화가 익어갔다. 조리법이 완성된 건 아니다. 제 자식일지라도 타인과의 밥상 소통은 간을 맞추기보다 어렵다는 이치를 깨달은 정도다.
하물며 직장에서 식탁 소통은 난제다. 프랑스 작가 쥘 르나르가 "진정으로 자유로운 사람은 변명하지 않고 저녁식사 초대를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19세기에 설파한 세상은 아직 한국 사회에 오지 않았다. 있지도 않은 약속을 즉석에서 가공하고, 하지도 않는 다이어트를 내걸어 위기(?)를 모면한다.
'함께 식사=소통' 공식은 대개 윗사람, 가진 자의 논리다. 한 끼 식사가 평소의 불통을 소화시킨다는 생각은 환상이다. 한 TV 프로그램에 소개된 직장 상사와 식사하기 싫은 이유는 이랬다. "좋은 얘기 할 것도 아니고,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자기 먹고 싶은 거 먹을 거고, 내가 가고 싶을 때 갈 수 없고." 공감하며 반성한다. 소통의 가면을 쓴 식사는 배는 부르되 가슴은 고프다. 식사는 식사일 뿐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점심식사를 다룬 언론 보도에 체했다. 당선인이 공개한 음식 종류와 일행의 면면을 날짜별로 알뜰살뜰 소개한 건 그러려니 했다. '식사정치' '오찬정치'라는 수사 아래 그 속뜻까지 우려낸 글자들을 음미하려니 마음이 더부룩했다. 1980년대 '땡전뉴스'에 빗대 '땡점뉴스'라는 조어가 떠올랐을 만큼 부끄럽다.
"국민이 있는 현장 속으로 가는 행보"(김은혜 대변인)는 반갑다. 다만 끼리끼리 친한 이들과 어깨를 맞대고 식당에 가서 같은 편에게 음식을 덜어주는 모습이 과연 소통인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직장 상사가 직원들을 우르르 데리고 맛집 탐방하듯, 검찰의 상명하복 조직문화가 몸과 의식에 밴 행보처럼 보였다. 구체적으로 소통을 어떻게 한 건지 알맹이도 빠져 있다.
적어도 밥상에 소통이란 숟가락을 얹으려면 반대편,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밥상에 앉아야 한다. 일터에서 밥값 벌던 자녀를 산업재해로 잃은 부모, 화장실에서 점심을 때우는 청소 노동자, 밥 먹을 시간조차 없는 간호사, 돈이 없어 점심을 거르는 취업준비생…. 한끼가 누구보다 소중한 그들과 자주 먹고 무엇보다 경청해야 한다. 임기 내 점심만 따져도 1,800여 끼, 그 숫자만큼의 기회가 선물로 주어졌다.
당선 전 대부분 식사의 동반자였을 '서오남(서울대 출신 50대 남성)'과의 식사 약속은 가급적 미루길 바란다. '당선인의 먹고 사는 얘기'를 홍보하기보다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챙기겠다"는 초심으로 돌아가길 소망한다.
식단은 소통과 하등 관계가 없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가 말했다. "함께 먹고 있는 사람을 바라봐야지 먹고 있는 것을 바라봐서는 안 된다." 당선인의 밥상에는 아직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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