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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야 면장'...면장이 그 면장이 아니라고?

입력
2022.03.27 22:00
27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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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는 유래나 어원이 밝혀지지 않은 말이 많다. 민간어원도 뒤죽박죽 섞여서, 예컨대 훈몽자회(1527)에 이미 '행주'가 나옴에도 '행주치마'가 행주대첩(1593)에서 유래한다고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붓, 먹, 배추 등 언뜻 고유어 같지만 사실은 중국어 귀화어이거나 '김치'처럼 한국 한자어가 변한 말도 있고 '생각'처럼 취음자 '生覺' 탓에 한자어 느낌이 드는 말도 있다.

'알아야 면장'이 알고 보니 '面長'이 아니고 '面牆'(담을 마주 대하듯 앞이 안 보임, 견문이 좁음)을 피하다'의 '면면장(免面牆)'에서 왔다는 설은 2000년대 들어서부터 퍼졌다. 통념을 뒤집으니 일단 왠지 그럴싸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다시 들여다보면 뭔가 석연치 않다. 일상에서 잘 안 쓰는 말에 한자 한 자가 더 붙었다가 다시 빠져 속담이 됐다? 다들 面長으로 알고 뜻도 잘 통하는데, 검증 없이 억지스레 갖다 붙인 느낌이다. 주로 한문에서 유래하는 고사성어와 달리 속담은 민간에서 전해지는 말이 대다수다.

면장(面牆)은 중국어, 일본어 사전들에서 서경(書經), 후한서(後漢書) 등이 출처로 언급된다. 그런데 한국 사이트나 기사, 책에서는 논어(論語)의 양화(陽貨)에 공자가 아들 백어에게 공부를 강조하며 하는 말로 나오나, 정작 면면장(免面墻)이라는 구절은 없다.

人而不為 '周南', '召南', 其猶正牆面而立也與?(사람이 '주남'과 '소남'을 배우지 않는다면 담장을 마주하고 서 있는 것 같지 않겠는가?)

배우지 않으면 담에 가로막혀 앞도 안 보이고 한 발짝도 못 나가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취지는 어쨌든 같지만, 논어 구절은 '면장'도 아닌 장면(牆面)이며 면할 免도 없고, 중국어든 일본어든 免面牆이나 免牆이라는 숙어나 관용어도 안 쓴다. 한문을 좀 아는 호사가들한테 논어부터 떠올라서 그랬겠지만 굳이 후한서나 서경을 출처로 언급하지 않고 免面牆도 지어낸 데서 신빙성은 더 떨어진다.

'알아야 면장'이 조선시대부터 쓰였다는 증거도 없다. 면장이라는 관직은 1910년 생겼다. 이 속담은 1962년 민중서관에서 펴낸 '속담사전'에 나오고, 매일경제 1966년 12월 26일 자 '알아야 面長을 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볼 때, 아무리 일러야 1940~50년대쯤부터 퍼진 걸로 짐작된다. 그때부터 퍼진 속담에 뜬금없이 논어든 다른 한문이든 영향을 미치긴 어렵다.

어원이 좀 알쏭달쏭하다고 여겼는지 표준국어대사전은 속담이 면장(面長)과 면장(面牆) 항목에는 없고 '알다'에 있다. 다만 '알아야 면장을 하지'의 뜻풀이가 '어떤 일이든 그 일을 하려면 그것에 관련된 학식이나 실력을 갖추고 있어야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듯이 '면장(面長)'을 넌지시 드러낸다.

북한의 조선말대사전은 '면장'과 '알다' 항목에 '배워야 면장이라'와 '알아야 면장(도 하지)'이 있고, 속담 풀이는 '그래도 얼마간의 지식이라도 있어야 면장 노릇을 한다는 뜻으로 아무것이나 다 그 방면의 지식이 있어야 해당한 일을 맡아 할 수 있음을 비겨 이르는 말'이라 나온다.

종합하면 '알아야 면장'이 免面牆/免牆이라는 설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몰라 생긴 가짜 어원일 가능성이 높다. 통념이나 통설을 깨려면 제대로 깨야 한다. 통념을 깨는 재미에만 몰두해 별다른 근거도 없이 꾸며내는 우를 범하면 안 된다. 꼭 통념을 깨야 한다는 것도 일종의 통념이다.


신견식 번역가·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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