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양식장 고양이 잔혹 살해한 20대, 시민들이 잡았다

입력
2022.03.25 10:00
수정
2022.03.27 18:18

지난 21일 경북 포항시의 한 폐양식장에 갇힌 고양이들이 동물권행동 '카라'에 의해 구조됐다. 이곳에서 고양이들은 20대 남성 A씨의 학대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지난 21일 경북 포항시의 한 폐양식장에 갇힌 고양이들이 동물권행동 '카라'에 의해 구조됐다. 이곳에서 고양이들은 20대 남성 A씨의 학대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경북 포항시의 한 폐양식장에 고양이를 가둬두고 학대와 살해를 거듭한 20대 남성이 시민들의 추적 끝에 붙잡혔습니다.

포항 남부경찰서는 22일, 20대 남성 A씨를 동물학대 혐의로 조사 중입니다. 동물권행동 카라는 이보다 앞선 21일 새벽,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라이브 방송을 통해 이곳에서 학대당하던 고양이를 구조하는 과정을 공개했습니다.

A씨는 지난 2월부터 SNS에 고양이를 살해하고 해부하는 사진을 찍어 올렸습니다. SNS상에서 A씨의 위치가 포항인 것을 확인한 시민들은 카라에 관련 내용을 제보하고 그의 신원을 확보하기 위해 추적에 나섰습니다.

지난 21일 동물권행동 카라가 폐양식장에 갇힌 고양이들을 구조하는 과정에서 확인한 현장 모습. 물병과 휴대용 가스레인지 등 사람이 사용한 흔적이 발견됐다.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지난 21일 동물권행동 카라가 폐양식장에 갇힌 고양이들을 구조하는 과정에서 확인한 현장 모습. 물병과 휴대용 가스레인지 등 사람이 사용한 흔적이 발견됐다.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추적 끝에 지난 20일 오후, 시민들은 A씨가 고양이들을 가둬두고 학대한 폐양식장을 특정하고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현장에는 살아 있는 고양이 8마리가 있었고, 죽은 고양이들의 사체도 발견됐습니다. 사체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훼손돼 있었으며, 한쪽에는 사용한 흔적이 있는 휴대용 가스레인지와 물통, 바구니와 포획틀 등이 발견됐습니다.

폐양식장에 고양이가 갇혀서 헤매고 있다.(왼쪽) 폐양식장은 3m가량의 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고양이들이 자력으로 탈출하기는 어려웠다.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폐양식장에 고양이가 갇혀서 헤매고 있다.(왼쪽) 폐양식장은 3m가량의 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고양이들이 자력으로 탈출하기는 어려웠다.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고양이들이 갇혀 있던 폐양식장은 출입구 없이 3m 이상 높이의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고양이가 들어갈 수는 있지만, 자력으로 빠져나오기는 매우 어려운 구조였습니다. 카라는 A씨가 폐양식장 안에 고양이 사료를 놓아두는 방식으로 굶주린 고양이를 유인하거나 아예 직접 포획하는 방식으로 고양이를 가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경찰이 처음 출동했을 당시, A씨는 현장에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시민들은 “왜 고양이를 살해했느냐”고 물었지만, 그는 “고양이들을 폐양식장에 가둔 것은 맞지만 학대하거나 살해한 적은 없다”고 부인했습니다. A씨는 이어서 “고양이들이 서로 싸우다가 죽은 개체들이 있었던 것 같다”며 “나는 호기심에 죽은 고양이 사체를 해부했을 뿐”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나 주변 정황은 A씨의 주장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죽은 고양이들의 사체가 지나치게 많이 훼손됐다는 점도 의문이었지만, 일부 사체에서는 안구가 파열되는 경우까지 발견됐습니다. 사람의 폭력 없이는 나올 수 없는 피해 양상입니다. 이 점을 들어 시민들이 재차 추궁하자 결국 A씨는 학대와 살해 사실을 시인했습니다.

카라는 현장에서 포획틀 등을 활용해 폐양식장에 갇힌 고양이 구조에 나섰다.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카라는 현장에서 포획틀 등을 활용해 폐양식장에 갇힌 고양이 구조에 나섰다.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A씨의 범행은 생각보다 더 잔혹했습니다. 그는 고양이들을 폐양어장 벽에 집어던져 죽인 뒤 해부하는 등 사체를 훼손하고 사체 일부는 자신이 키우는 밀웜에게 먹이로 줬습니다. 심지어 A씨가 살해한 고양이 중에는 새끼를 배고 있던 개체도 있었는데, 그는 이 어미 뱃속에 있다가 죽은 새끼 고양이들까지 꺼내 알코올 용액에 담아뒀습니다. 이 점을 종합했을 때, 현재까지는 피해 고양이들은 약 5~7마리 정도로 추정됩니다.

경찰 관계자는 “범행을 시인한 A씨가 경찰 조사에서는 다시 말을 바꿔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며 “A씨 보호자가 동석해 다시 조사를 이어가기로 해 사실관계 확인이 다소 지연될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경찰은 정확한 범행 동기 등을 파악한 뒤 구속영장 신청 여부를 결정할 예정입니다.

21일 새벽 카라 관계자들이 고양이 구조를 위해 관련 장비를 폐양식장 안으로 옮기고 있다.(왼쪽) 구조된 고양이가 옮겨지고 있다.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21일 새벽 카라 관계자들이 고양이 구조를 위해 관련 장비를 폐양식장 안으로 옮기고 있다.(왼쪽) 구조된 고양이가 옮겨지고 있다.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A씨에 대한 조사는 추후 진행될 예정이지만, 이번에도 수사 과정에서 다소 아쉬운 점이 노출됐습니다. 사건 초기 경찰의 대응이었죠. 20일 오후, A씨를 조사한 뒤 경찰은 그대로 현장을 떠났습니다. 살아 있는 고양이들을 구조하거나, 죽은 고양이들의 사체를 수습하는 과정이 없었던 겁니다. 결국 시민들이 카라에 연락해 도움을 청하고, 카라가 부랴부랴 준비한 끝에 다음날 새벽에야 현장에서 살아남은 고양이들을 구조할 수 있었습니다. 카라는 이 자리에서 수습한 고양이 사체를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보내 부검을 의뢰한 상태입니다.

카라 최민경 정책행동팀장은 경찰의 초동 대응에 대해 “아무리 사건이 벌어진 날이 일요일이라지만, 지방자치단체 당직자가 상주하는 만큼 동물보호 담당 부서에 연결해 현장 수습을 부탁할 수 있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지난해 경찰은 ‘동물학대 사건 대응 매뉴얼’을 제작해 일선에 배포했지만, 아직 지구대 단위 현장에서는 이 매뉴얼이 제대로 현장에서 활용되지 못하는 상태로 보입니다.

2년 전, 한동대에서 발생한 고양이 연쇄 살해사건부터 지난해 불에 탄 고양이 사체가 발견되는 등 길고양이를 노린 학대 범죄는 포항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했습니다. 경찰은 이에 대해 “A씨의 범행이 최근 발생한 범죄와의 연관성이 있는지도 확인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최 팀장은 “관내에서 발생하는 연쇄 동물학대 범죄에 시민들이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며 “관할 경찰과 지자체에서 특별한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정진욱 동그람이 에디터 8leonardo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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