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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는 네오나치”라는 허상에 빠진 푸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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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남동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은 이달 초부터 러시아군에 포위된 채 끊임없는 폭격에 시달리고 있다. 마치 중세 시대로 돌아간 듯 모든 것이 무참히 파괴됐다. 우크라이나 현지 언론 ‘키이우 인디펜던트’ 기자는 “마리우폴은 유령 도시로 변했다”며 “도시 인프라 80%가 파괴됐고 40%는 재건조차 불가능하다”고 트위터에 썼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영상 성명을 통해 “봉쇄된 도시에 주민 10만 명이 식량도 물도 없이 갇혀 있다”며 폭격 중단을 촉구했다. 마리우폴은 2014년 러시아에 병합된 크림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다. 마리우폴의 처참한 광경은 러시아가 이 도시를 얼마나 필사적으로 장악하려 했는지 방증한다.
러시아군에 맞서 마리우폴을 방어한 우크라이나군은 ‘네오나치’ 조직으로 알려진 ‘아조프 대대’다. 아조프 대대는 2014년 5월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내전 당시 극우단체인 ‘우크라이나의 애국자(Patriot of Ukraine)’와 ‘사회국가회의(SNA)’ 등이 결성한 민병대로 출발했다. 이들은 최전선에서 친(親)러시아 분리주의 반군과 싸우며 마리우폴을 탈환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고, 그해 11월 12일 우크라이나 내무부 산하 국가방위군으로 편입됐다. 현재 부대원은 900명으로 추산된다.
아조프 대대 창립자인 안드리 빌레츠키는 2004년 훌리건들과 함께 백인우월주의 단체를 조직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2010년에는 “우크라이나의 국가적 목표는 전 세계 백인을 이끌고 열등한 유대인 종족에 맞서 마지막 십자군 원정을 벌이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반유대주의 사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빌레츠키는 2013~2014년 ‘유로 마이단 혁명’으로 친러 성향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축출된 후 치러진 총선에 무소속으로 출마,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며 정계에 진출했다. 선출직 의원으로서 군사조직에 가담할 수 없어 아조프 대대를 떠났고, 2016년 ‘국민군단(National Corps)’이라는 정당을 만들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아조프 대대는 잔학행위와 인권침해로 악명이 높았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2016년 보고서에서 “아조프 대대 부대원들이 대규모 약탈행위와 불법 구금, 고문, 집단강간 등 수차례 전쟁범죄를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2014년 아조프 대대와 ‘돈바스 대대’(아조프 대대와 함께 돈바스 전쟁에 동원된 국가방위군 조직) 대원 8~10명이 지적장애 남성을 집단 강간하고 고문한 사실도 폭로됐다. 올해 1월 발표된 또 다른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2018~2021년 돈바스 분쟁 과정에서 희생된 민간인 81.4%가 반군 점령지 주민이었고, 우크라이나 정부 통제 지역 희생자 비율은 16.3%였다. 무력 충돌 강도가 높은 반군 지역에서 민간인 희생이 월등히 많았다는 건, 반군 소탕 작전을 담당하는 우크라이나 국가방위군이 민간인 피해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내세운 명분 중 하나는 ‘우크라이나의 탈나치화’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8년간 돈바스에서 집단학살이 자행돼 왔다”며 “탈나치화를 통해 러시아계 주민들을 보호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여기서 ‘탈나치화’ 표적이 아조프 대대라는 건 자명하다. 러시아는 마리우폴에서 주민 대피소와 산부인과 병원 등을 폭격하고서 “아조프 대대 소행”이라는 억지 주장을 늘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침공은 ‘탈나치화’는커녕 정반대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우크라이나인들은 똘똘 뭉쳐 결사 항전에 나섰고, 그 최전선에 바로 아조프 대대가 있다. 과거엔 거리를 활보하던 자경단 수준이었던 조직이 2014년 돈바스 전쟁을 통해 국가방위군으로 승격됐고, 이제는 대러 전선에서 ‘나라를 구하는’ 국민군으로 맹활약하고 있다. ‘침략자’ 러시아에 맞서 싸우고자 총을 든 시민군을 훈련시키는 역할도 아조프 대대 몫이다. 우크라이나의 네오나치는 러시아 침공과 함께 성장했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한때 유대인을 “열등한 종족”이라 칭하던 네오나치는 지금 유대인 출신 젤렌스키 대통령과 한 배를 타고 있다.
사실 우크라이나 제도 정치권에서 네오나치의 영향력은 미미했다. 2019년 총선 결과를 보면 더욱 확연하다. 국민군단과 ‘라이트 섹터(Right Sector)’ ‘스보보다(Svobodaㆍ자유당)’ 같은 극우주의 정당들은 득표율 2.15%를 얻는 데 그쳤고, 결국 의회에서 단 한 석도 챙기지 못했다. 정치 세력으로서는 철저히 실패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이들은 ‘전쟁 영웅’으로 위상이 180도 바뀌었다. 나라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진 상황에서 우크라이나는 아조프 부대의 ‘나치주의’를 문제 삼을 겨를이 없다.
아조프 대대를 바라보는 전 세계 네오나치 단체들의 입장도 엇갈린다. 지난 15일 미국 백인우월주의 단체 ‘더 베이스(The Base)’ 창립자 리날도 나자로는 텔레그램을 통해 추종자들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해 눈길을 끌었다. “러시아 침공은 ‘자유주의적 세계주의자(Liberal globalists)’ 간 분쟁”이기 때문에 “백인우월주의자들은 관여해선 안 된다”는 논리였다. 그는 “참전을 위해 우크라이나로 가는 외국 전사들은 그곳에서 감시받으며 활동하게 될 것이고, 아마도 러시아 공격으로 죽거나 미국ㆍ유럽 국가들에 체포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아울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대리전에 참여하는 대신 미국과 유럽의 (자유주의 시스템) 붕괴를 가속화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촉구하며 “전쟁이 빨리 끝나길 바라지만, 우크라이나인들에 대한 애틋함을 느끼진 않는다”고도 했다.
이에 반해 유럽과 북미 지역 네오나치 세력들은 아조프 대대에 적극 동참하라고 선동하고 있다.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를 비롯해 극좌, 극우 등 다양한 극단주의 세력들을 분석해 온 비정부 기구 ‘사이트 인텔리전스 그룹’ 리타 카츠 대표는 15일 미국 워싱턴포스트 기고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백인우월주의자와 신나치주의자의 온라인 활동이 급증한 것을 확인했다”며 “외국 전사를 모집하는 아조프 대대 텔레그램은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 스웨덴, 폴란드 등 각국 네오나치 추종자들의 메시지로 가득 차 있다”고 우려했다.
“그들의 목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우크라이나, 즉 유대인 대통령이 이끄는 다민족적이고 민주적인 사회를 지키려는 것이 아니다. 몇몇 네오나치는 이 새로운 전쟁을 그들의 폭력적인 환상을 실행하는 장소로 생각한다. 그들을 분쟁으로 유인하는 힘은 초국가주의 민족국가에 관한 공통된 비전이다. 이들은 우크라이나를 이러한 목표를 추구하고 전 세계에 수출할 수 있는 모델로 만들 절호의 기회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우크라이나의 진보적 사회학자로 알려진 볼로디미르 이셴코 베를린자유대 동유럽연구소 연구원은 16일 ‘로자 룩셈부르크 재단’ 홈페이지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이번 전쟁은 극우 물결을 더 강화시킬 것”이라며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재앙으로 끝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울러 그는 이번 전쟁이 우크라이나 내 일부 남아 있던 ‘러시아 정체성’을 어떻게 지우고 있는지도 설명했다. “유로 마이단 혁명과 돈바스 전쟁 발발 이후에도 수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를 여전히 형제라 여겼고, 인구 15~20% 정도는 우크라이나인이자 러시아인의 정체성을 동시에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전쟁은 모호한 정체성마저 지워버렸다.”
‘러시아 지우기’는 지난 20일 젤렌스키 대통령이 친러 성향 11개 정당에 내린 ‘활동 중단 명령’에도 반영됐다. 여기엔 우크라이나 의회에서 44석(전체 450석)을 차지한 거대 정당도 포함됐다. 다만 한 가지 우려스러운 건 이러한 흐름이 자칫 ‘낙인찍기’로 변질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셴코 연구원은 “우크라이나의 중립성을 요구하는 이들, 독립주권을 지지하는 이들, 반(反)서방주의자들, 포퓰리스트, 좌파 그리고 다른 담론을 제시하는 이들에게도 친러파라는 낙인이 붙기 시작했다”며 “친러 성향 정당 지도자와 지지자들 중에도 러시아 침공을 비난하고 우크라이나 수호에 동참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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