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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총장의 잊힌 존재감

입력
2022.03.24 04:30
26면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연합뉴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연합뉴스

나는 아직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을 이해하지 못한다. 지난 5년 동안 그토록 강조했고, 그래서 귀가 닳도록 들었는데 말이다. “이게 맞아? 이게 개혁이야?” 늘 그렇게 질문을 던지면서 그들의 개혁 종착지가 어딘지 몰라 헤매곤 한다.

어쩌면 ‘검찰이 왜 존재하는가’란 질문에 대답 자체가 달랐던 것 같다. 나 역시 검찰이 무소불위 권력 집단이고 견제 또는 통제가 불가능한 조직이라는 비판에 100% 공감한다. 하지만 지지부진한 권력형 수사 같은 걸 지켜보면 검찰이 검찰다움을 잃었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식당은 밥이 맛있어야 하고, 병원은 치료를 잘해야 한다. 검찰 역시 수사를 잘하는 게 존재 이유 아닌가 하는 생각 말이다. 검찰이 개혁 대상인 건 수사권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걸 제멋대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번 정부의 검찰개혁을 박하게 평가하는 건 그래서일 것이다. 개혁의 파고에 검찰의 수사 능력은 이미 낙제생 수준으로 전락했다. 반년이 지난 대장동 의혹 수사가 초기에 확보한 정영학 회계사의 녹취록에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정치권 한마디에 ‘네 편과 내 편’으로 갈라지는 내부 구성원들은 무너진 검찰의 현주소다. 듣다 보면 공무원 조직의 최소한의 기강 자체가 오래전 사라진 듯하다. “개혁으로 악(惡)을 무너뜨리고 그 자리는 선(善)으로 채운다”는 옛 사상가 말에 비춰보면, 지난 5년 검찰개혁은 그냥 ‘무너뜨림’이었다. 그게 원했던 개혁이라면 물론 ‘성공’이겠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검찰총장의 존재감이 무너진 고택이 남긴 디딤돌 수준이다. 특히 이 정부의 검찰개혁이 본격화된 문무일 전 총장 이후 임명된 윤석열 전 총장과 김오수 현 총장은 공통적으로 ‘그림자 총장’이라는 평가까지 내려진다. 자의냐 타의냐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법과 원칙에 따라 본연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하겠다”는 김 총장의 선언은 솔깃했다.

냉정히 들리겠지만, 작년 6월 취임한 김오수 총장의 성적은 평균 이하다. “정권이 원했던 누군가의 대타라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었다”는, 김 총장과 친분이 두터운 검찰 간부의 말을 감안하더라도 그의 운신은 너무나도 미미했다. 좀 더 냉정하자면, 존재감 자체가 제로(0)였다.

지금 검찰 조직은 폭풍이 오기 전날 밤처럼 뒤숭숭하다. 과거로의 회귀를 강조한 대통령 당선인 공약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이들이 있고, 5년의 짧았던 영광을 뒤로한 채 '이젠 내가 일제 독립운동가가 되겠다'며 전열을 가다듬는 무리도 있다. 분명한 건 김 총장의 선언과 별개로 검찰 안팎에선 누군가 계속 중도 하차를 종용할 것이고, 어느 순간 전임 총장처럼 ‘왕따 총장’ 취급당할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돌이켜보면 검찰총장을 포함해 법조계 고위 간부들은 으레 어려운 고사성어를 두어 개쯤 퇴임사에 남기곤 했다. 김 총장의 임기는 내년 5월까지다. 그는 지금 마음 속에 어떤 한자성어를 품고 있을까.

지금 같은 1년을 또다시 보내지 않기를. 그리고 오상고절(傲霜孤節ㆍ추운 날씨에도 굴하지 않고 피는 국화) 같은 성어로 자신과 임기 2년을 변명하지 않기를 바란다.



남상욱 사회부 차장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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