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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의 초라하고 부조리한 현실

입력
2022.03.24 00:00
27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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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기간 소득의 43%를 연금으로 지급하는 국민연금 급여율이 낮다고 지난 5년 동안 급여율을 올리자는 주장이 우리 사회를 혼란에 빠뜨렸다. 연금개혁이 절박함에도 공적연금 강화란 명목으로 국민연금 지급률을 더 올리자고 했기 때문이다.

노후소득 강화 논쟁에서 신기한 대목은 정작 퇴직연금의 낮은 급여율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는 점이다. 9%인 국민연금 보험료율과 별반 차이가 없는 8.33%를 부담하는 퇴직연금의 급여율이 20%에도 못 미치고 있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퇴직연금의 답답한 처지는 이뿐이 아니다.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 퇴직연금은 OECD 분류체계로 노후소득에 포함되지 않고 있다. 강제 적용되는 제도가 아니라서 그렇다. 퇴직연금 전환을 노사 합의에 맡기다 보니, 퇴직연금 도입 사업장과 도입하지 않은 사업장이 혼재하고 있어서다.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는 사람 대부분이 퇴직금을 받아, 퇴직연금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음에도 정작 국제기구로부터는 노후소득원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다. 퇴직금으로 부동산을 구입하면, 실제로는 자산가임에도 가처분 소득 기준으로 빈곤율을 산정하는 OECD 기준으로 인해, 이들 상당수가 현금소득이 적다는 이유로 빈곤 노인으로 분류된다. 젊은 층보다 훨씬 많은 순자산을 보유한 노인 집단 대부분이 노후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것으로 분류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이 높게 나타나는 이유 중 하나로,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동안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낮은 퇴직연금 수익률, 이로 인해 초래되는 낮은 급여율을 높일 수 있는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를 국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였다. 사전지정운용이란 퇴직연금의 낮은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전문가가 퇴직연금 가입자를 대리하여 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제도이다. 문제는 국회에서의 어정쩡한 타협으로 인해 그동안 낮은 운영성과의 주된 요인으로 지목되던 원리금 보장상품이 포함된 채로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이 통과되었다는 점이다. 2020년 기준으로 원리금 보장상품 수익률(1.68%)과 사전지정운용제도 활용이 가능한 실적배당상품 수익률(10.67%)에 너무도 큰 차이가 나고 있어서다.

2020년 말 현재 255.5조 원의 적립금이 쌓였고, 앞으로 빠르게 늘어날 퇴직연금이 노후소득의 한 축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바로잡으려는 범국가적인 차원의 노력이 그래서 더욱 필요하다.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정치권의 협조는 물론이고, 금융위원회와 금감원 등 관련 부처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수적이다. 노후소득원으로서의 퇴직연금 정체성보다는 금융 상품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어서다.

노후소득보장제도 활성화를 위해 대규모 세제 혜택(퇴직연금과 개인연금 등 총 5조 원 규모)이 제공되고 있음에도, 퇴직연금이 노후소득의 한 축으로 자리 잡지 못하는 우리 현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급여율은 형편없이 낮으면서도 국민연금과 달리 사망 시점까지 지급하는 제도로 운영되지 못하다 보니 가입자 불만이 날로 높아지고 있어서다. 고용노동부 홀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범정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복지국가인 덴마크, 그리고 네덜란드와 호주는 노후소득 대부분을 공적연금이 아닌 퇴직연금에 의존하고 있다. 우리 퇴직연금이 더 분발해야만 하는 이유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한국연금학회 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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