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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를 '너튜브'라 돌려 말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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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부터 MBC의 코미디 프로그램이나 드라마에 나오는 대학은 죄다 '문화대학교'였다. MBC가 문화방송이기 때문에 그런다는 건 대충 알았는데 왜 고려대나 명지대처럼 실제 대학 이름을 쓰면 안 되는지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 광고회사를 다니면서 비로소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공중파에 특정 상표가 언급되면 '홍보효과'라는 게 생긴다. 전 국민이 다 보는 데서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면 그 사람은 졸지에 유명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 일을 피하기 위해서 기업들은 돈을 내고 광고를 집행하거나 간접광고, 협찬 등의 형식을 통해 자사의 제품이나 브랜드를 방송에 내보낸다. 노출 수준에 따라 액수가 달라지는데 다 천문학적 숫자임은 물론이다. 그런데 누군가 공짜로 브랜드를 거론해 버리면 일껏 돈 내고 광고하는 사람들과는 형평성이 안 맞는 것이다. 예전에 라디오 생방송에서 요리 얘기를 하다가 "여기에 농심라면을 곁들이면 더 맛있어요"라고 하는 바람에 난리가 난 적이 있다.
'너튜브'라는 말이 유행이다. 방송 출연자들이 유튜브를 그렇게 부르는 것인데, 아마도 특정 브랜드 언급을 피하기 위해 누군가 재치 있게 했던 말을 너도나도 가져가 쓰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문제는 이제 공중파뿐 아니라 유튜브나 팟캐스트, 개인방송 등에서도 이 단어를 '교양인'의 태도로 쓴다는 것이다. 비슷한 예로 MBC를 M본부, KBS를 K본부라고 부르는 것도 오래된 관행이다. 이를 두고 소설가 장강명은 예스24 칼럼에서 '마이클 코넬리의 소설에서는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나 '로키 마운틴 뉴스'처럼 진짜로 존재하는 신문사들이 버젓이 등장하는데 우리는 왜 그렇게 하지 못할까?'라고 자문한 뒤 '아마 다들 그렇게 표기하는 분위기이거나 집단적인 습관에 따르는 것이 아닐까'라고 의심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구성하고 있는 소설에서 연세대를 '연희대'라고 하면 웃길 것 같다고도 했다. 나는 이게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에서 주고받는 '돈봉투'와 비슷한 심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는 부조를 할 때 평소엔 사용하지도 않던 편지봉투를 찾아 현금을 넣음으로써 돈을 가린다. 혼주나 상주가 현장에서 돈의 액수를 알게 하는 것은 서로 실례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는 어렸을 때 뉴스에서 대통령이 어딘가 시찰하고 나서 '금일봉'을 하사하셨다는 말을 듣고(정말로 뉴스에서 그런 멘트가 나왔다) 진짜 금을 한 봉 주고 온 줄 알았다. 나중에야 그게 '봉투에 든 일정 금액'이라는 걸 알았지만.
우리는 똑바로 말하지 못하고 돌려 말해야 하는 세상을 살아왔다. 어른들이 그렇게 가르치고 본을 보이니까 다음 세대도 다다음 세대도 당연한 줄 알고 따라 하는 것이었다. 어느 시대든 어른들이 잘못하는 게 많다. 나도 다른 어른들 덕분에 비겁한 어른이 되어 버렸다. 박상영 작가의 신작 '1차원이 되고 싶어'에서 대구시를 'D시'라고 쓴 걸 보고 또 그런 생각을 했다. 이건 그동안 우리가 받아 왔던 억압이 체화되어 자기도 모르게 취하는 방어기제 아닐까. 우리는 서자도 아닌데(서자면 또 어떤가!) 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걸까. 너튜브 때문에 든 이런저런 생각들이었다. 참고로 유튜브는 구글에서 운영하는 공유 서비스인데 'You(당신)+tube(브라운관)' 두 단어를 합성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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