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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당선인의 '도리도리' 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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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신의 건강이 소중하므로 어지간하면 "그럴 수 있지" 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 발언을 인터뷰 중에 면전에서 듣고도 그러려고 애썼다. "그럴 수 있지. 서울대 법대 나온 60대 이성애자 남자가 평생 검사로 살았으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그의 세상은 그렇게 생겼을 수 있지."
그럴 수 있다. 누구나 무언가를 모를 수 있다. 그러나 윤 당선인은 일부러 모르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계속 모름'을 향해 직진했다. "대통령 되겠단 사람이?" 구조적 성차별의 수많은 피해자들이 토한 울분에 그는 귀를 열지 않았다. 기회가 있었는데도 발언을 수정하지 않았다.
대선에서 승리한 윤 당선인은 '계속 더 몰라도 되는 세계'에 입장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한 그곳은 권력자들이 듣지 않고 각성하지 않아도 되는 세계다. "외람되지만" "감히 여쭙자면" 같은 군말이 넘쳐나며, 직언 한마디에 누군가의 목숨이 휙 날아가는 세계다.
윤 당선인은 그 세계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그는 대선후보로 번쩍 들어 올려졌다. 태어나 처음 출마한 공직선거에서 대통령에 당선됐다. 낙천과 낙선의 시련이 필수 과목인 '정치인을 위한 민심 겸허히 듣기 심화 코스'를 건너뛰었다. 그는 취약하다. "털털하고 호탕하지만 싫은 소리를 무던하게 삼키는 스타일은 아니다." 대선 때 그를 도운 인사의 말이다.
그런 윤 당선인이 소통을 열심히 하겠다고 했을 때 마음을 놓았다. 그는 그러나 정치지도자의 소통하는 법을 잘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소통은 태도이기도 하다는 것을 놓치고 소통을 지상 목표로 잡아 직진 중이다. 속도도 빠르다. 국민 속으로 안전하게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면서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 대신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옮기겠다고 서둘러 선언했다. 시간이 없다며 반대 의견을 흘려들었다.
그럴 수 있다. 윤 당선인이 옳을 수 있다. 안보 공백은 괜한 염려일 수 있다. 용산 대통령 시대를 그가 기어코 연 것에 언젠가는 모두가 감격할 수 있다. 그러나 그건 '결과' 얘기다. 좋은 통치는 '과정'과 '절차'도 헤아려야 한다. 약속이니까 여하튼 지키겠다는 신념으로, 외롭지만 결단하겠다는 비장함으로 질주하는 통치는 위험하다.
그럼에도 결론은 정해져 있다. 윤 당선인은 용산 직행을 좀처럼 접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가 잠시 멈춰선 김에 교훈을 얻었으면 한다. 무려 대통령의 이름으로도 못하는 일이 있다는 것, 우물쭈물보단 나을지 몰라도 빨리빨리 역시 정답은 아니라는 것, 추진력이 대통령의 최상위 자질은 아니라는 것. 또한 여성가족부 폐지, 사드 추가 배치, 노동권 후퇴 공약까지 급하게 밀어붙인다면, 정말로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것.
윤 당선인은 스스로 제왕을 닮아 갈 것을 걱정해 구중궁궐 청와대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고 했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고 했다. 그러나 공간의 위력은 부차적이다. 내가 모를 수 있다는 의심, 내가 틀릴 수 있다는 회의, 내가 부족할 수 있다는 반성이 의식을 지배하도록 하는 게 소통하는 민주 리더십의 핵심이다.
의심하고, 회의하고, 반성하려면 앞만 노려봐선 안 된다. 찬찬히 옆도 보고 뒤도 돌아보며 널리 들어야 한다. 고로 윤 당선인에게 지금 필요한 건 질주나 직진이 아니다. '의식의 도리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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