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 선동과 청와대 이전

입력
2022.03.22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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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22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인근에 '청와대 국방부 이전 결사반대'라고 쓰인 지역 주민들의 현수막이 걸려있다. 뉴시스

22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인근에 '청와대 국방부 이전 결사반대'라고 쓰인 지역 주민들의 현수막이 걸려있다. 뉴시스

청와대 이전 논란의 큰 쟁점은 소요 예산이다. 1조 원과 500억 원이라는 추산치의 간극이 큰데 이 대목에서 ‘광우병 선동’이 소환됐다. 인수위 청와대 이전 태스크포스(TF) 팀장인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이 21일 “500억도 안 드는 이전사업을 (더불어민주당이) 1조가 든다고 하는데 광우병 생각이 난다”고 했다. 김기현 원내대표도 22일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못된 심보가 아니고서야 무슨 염치와 권한으로 새롭게 출범하는 정부의 발목을 잡느냐”고 맹공을 퍼부으며 “제2의 광우병 선동이 아니냐는 비난까지 나온다”고 했다.

□ 과장이나 거짓 주장을 비난하는 상징적 용어로 쓰일 만큼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반대 촛불시위는 보수층에게 ‘거짓 선동에 의한 시위’로 각인돼 있다. 광우병 위험성을 다룬 ‘PD수첩’이 허위보도로 인한 명예훼손 혐의로 법정 다툼을 벌인 사실이 빌미가 됐고 국민의힘(당시 한나라당)은 줄곧 음모론과 선동 탓을 했다. 선동의 배후에 북한이 있다고 쓴 보수 신문도 있었다.

□ 그러나 쇠고기 수입반대 시위의 본질은 과학적 사건이 아닌 정치적 사건이다. 그 많은 시민들이 ‘속아서’ 광화문으로 쏟아져 나왔다는 보수층의 믿음은 핵심을 놓친 것이다. 정권이 바뀌자마자 쇠고기 수입 정책이 뒤집혔는데 국민에게 충분한 설명도 양해도 없었다는 게 분노의 지점이라는 것을 간과한다. 탄핵 전후 태극기 집회를 노인들의 ‘사고력 저하’ 때문으로 폄하하는 진보층도 같은 문제를 갖고 있다. 산업화 세대가 자신의 노력과 역할을 통째로 부정당하는, 상처받은 자존심을 태극기를 흔들어 보상받으려 했음을 봐야 한다.

□ 청와대 이전 논란에 선동이 언급되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이 1조 원의 근거가 뭐냐고 기자들과 설전을 벌일 게 아니라 장단기 절차와 소요 예산, 결정 과정과 이유를 투명하게 밝혀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윤석열 당선인의 국정수행 기대가 떨어지고 청와대 이전 반대 여론이 높은 것 또한 선동 때문은 아니다. 이제 본질은 불통이다.

김희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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