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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여기까지 온 성평등인데

입력
2022.03.23 00:00
26면

대통령직인수위 여가부 공무원 없어
여가부 폐지 후 대안 뚜렷하지 않아
여성 배제된 여성정책 수용 쉽지 않아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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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인선(人選)을 종료했다. 누군가는 예상했던 대로, 누군가에게는 예상외로 여성가족부 파견 공무원은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보도에 따르면, 인수위에서 2명 파견을 요청했고 여가부에서 국·과장 4명의 명단을 제출했지만 최종 인선에 포함되지 않았다.

인수위원회는 명확히 자신의 입장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공약을 고수하겠다는 것이다. 후보 시절 첫 번째 공약이니 만큼 약속을 지키고자 하는 대통령 당선인의 심정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또 대다수의 여성들은 코로나 시국에 생계 걱정과 가족 돌보는 일로 지칠 대로 지쳐 있어서 여가부 같은 정부조직의 해체까지 걱정할 여유조차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은 늘 드라마의 마지막 편이 끝난 후 시작되는 법이다. 여가부 폐지로 대선 드라마의 막을 내린다면 그 다음은 무엇일까? 현재까지 전해진 정보로 몇 가지 추측을 해 볼 수 있다. 첫째, 가족이나 청소년, 성폭력 같은 여가부의 업무를 쪼개서 다른 부처로 이관하고 성평등 업무는 폐기하거나 축소한다. 이 경우 우리는 '성평등'이 빠진 복지 서비스와 폭력대응체계를 갖게 될 것이다. 둘째, 인구가족부로의 재편이다.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산장려와 가족강화를 목표로 하는 부처의 탄생이다. 이 경우 '여성 대신 출산자와 양육자를 위한' 정책이 전개될 수 있다. '성평등은 없고 성역할만 남은' 사회가 될 것이다.

최종 개편안은 인수위 안과 당선인의 결정 후 국회의 정부조직법 개정 심의와 조정 절차를 거치며 모습이 드러날 것이다. 민주당과 정의당 등 폐지 반대를 당론으로 내세운 정당이 거의 180여 석을 점유하는 국회에서 여가부 폐지안이 쉽게 통과되리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은 상실감과 선거 후유증으로, 생계와 돌봄의 무게로 잠자코 지켜보는 여성들이 언제까지나 침묵하지는 않으리라는 점이다.

여성의 목소리가 배제되고 성평등 가치가 사라진 정부는 사회의 기본 정의를 실현하는 데 실패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자유주의 정치학자 존 롤스는 사회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해지는 구성원들의 협력체계'로 규정하며, 사회 정의를 판단하는 두 기준으로 도덕적 감수성을 포함하는 '합당성(reasonableness)'과 정책 수단으로 효율적인 '합리성(rationality)'을 제시했다. 가족이든 인구든 폭력이든 성평등을 삭제한 정책은 합당하지 않다. 여성이라는 주요 당사자의 목소리를 배제했기 때문이다. 또 그런 정책은 합리적이지도 않다. 정책의 목표를 충분히 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돌봄이든 가족이든 여성을 배제한 정책을 여성들이 수용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불과 2년 전인 2020년 3월 'n번방 방지법'이라고 불리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 개정안이 통과되었던 상황을 기억하는 분이 계실까. 당시 법사위에서는 "청소년들은 자주 하는 짓" "혼자 일기장에 그리는 그림"(공무원과 여당 의원), "청원한다고 법 다 만드나" "자기만족으로 혼자 즐기는 것을 처벌하나"(야당 의원) 같은 발언이 쏟아져 나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처구니 없는 일이지만, 청와대 청원 20만 명, 국회 입법청원 10만 명을 넘기고서야 주요 부분을 삭제한 채 간신히 통과되었다. 이후 법 개정은 계속되었지만, 성평등 관점을 가지고 끈질기게 이어간 부처의 노력 없이는 어려웠을 것이다.

성평등 정책은 '불과 5년 임기를 가진' 정권에 의해 휘둘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5년의 통치가 한국사회의 미래에 빛이 될지 그림자를 드리울지 선택하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ㆍ전 한국여성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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