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집단감염에 말라 죽어 갑니다" 요양시설의 절규

입력
2022.03.22 04:30
수정
2022.03.23 08:52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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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진 없는 요양시설 스스로 버텨내야
병상, 먹는 치료제 마땅찮아 사망자 늘어
요양보호사 확진 늘어 돌봄인력도 부족
장기요양시설 86%가 "업무공백 겪었다"

21일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 응급의료센터에서 의료진들이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뉴스1

21일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 응급의료센터에서 의료진들이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뉴스1

대전에서 요양원을 운영 중인 이모 원장은 원내 집단감염이 발생해 걱정이 크다. 지난달 말 시작된 감염은 어르신 81분 중 42명을 감염시켰고, 이 중 4분이 돌아가셨다. 지금도 확진자 격리 공간 부족, 하늘의 별 따기와도 같은 병원 이송으로 인해 원내 전파가 계속되고 있다. 여기다가 직원 56명 중 37명이 확진돼 격리당하면서 남은 직원들의 피로감은 점점 심각해져만 간다.

오미크론 확산 정점기를 지나면서 요양원과 같은 요양시설에서도 확진자가 쏟아져나오고 있다. 이 시설들은 요양병원과 달리 의료 기능이 없어 사실상 어르신들의 재택치료를 관리해주고 있는 격인데, 의료기관 연계나 먹는 치료제 처방이 원활하지 않아 시설이 자체적으로 동분서주하며 증상 악화를 막고 있다. 여기에 요양보호사 확진으로 인력난이 더해져 현장은 아비규환이다.

요양시설 집단감염 4주간 410건... 인력난 심각

양성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이 15일 강원 원주시 원주보훈요양원을 방문해 코로나19 방역 관리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제공

양성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이 15일 강원 원주시 원주보훈요양원을 방문해 코로나19 방역 관리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제공

질병관리청 방역대책본부는 21일 최근 5주간 요양원과 주야간보호센터 등 요양시설에서 집단감염이 총 410건 발생했다고 밝혔다. 추가 전파까지 고려하면 시설에서 시작된 집단감염은 보통 20~30명가량의 확진자를 발생시키는 것으로 집계됐다.

문제는 최근 요양보호사 확진 사례도 급증해, 업무 공백이 가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중심케어실천네트워크에 따르면 단체가 지난 14일부터 이틀간 장기요양시설 100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업무 공백을 경험하는 시설은 전체의 86%에 달했다. 평소 인력의 30% 이상이 병가를 사용한 기관도 10%에 육박했다. 즉 면밀한 돌봄이 필요한 고위험군 확진자가 늘어남과 동시에, 돌볼 요양보호사들은 역으로 줄어드는 악순환이 갈수록 심화되는 것이다.

전지현 민주노총 요양서비스노조 사무처장은 "요양원 요양보호사들은 보통 10~20명 정도를 관리할 정도로 업무 강도가 센데, 인력이 더 줄다 보니 2~3배 많은 인원을 관리해야 하는 지경"이라며 "확진된 요양보호사에게 확진된 환자를 돌보라고 하는 기가막힌 사례도 있다"고 지적했다.

치료, 이송도 난항... 숨 쉴 구멍이 없다

2021년 12월 23일 오전 서울 시청 앞에서 열린 코로나 최전선 요양보호사 처우 개선 및 예산 삭감 철회 촉구 서울시 규탄 기자회견에서 요양보호사가 현장발언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2021년 12월 23일 오전 서울 시청 앞에서 열린 코로나 최전선 요양보호사 처우 개선 및 예산 삭감 철회 촉구 서울시 규탄 기자회견에서 요양보호사가 현장발언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병원 이송이나 먹는 치료제 처방을 통한 부담 경감이 숨통을 트이게 해줄 수도 있지만, 이마저도 명확한 매뉴얼이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돼 삐걱대기 일쑤다. 보건소와 연락이 닿지 않거나, 이송될 병상이 부족하다며 무기한 대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A씨는 "중증 확진자 후송을 위해 보건소에 연락했는데, 후송되지 않아 원내에서 사망한 경우도 있었다"면서 "팍스로비드 처방도 제때 이뤄지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결국 코로나 확진자 대처 이외에 목욕이나 면회 등 기본 업무를 포기하기도 한다. 오현태 한국주야간보호협회 회장은 "보통 요양시설과 주야간보호시설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목욕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이 과정에서 확산되는 경우가 있어서 물티슈로 위생관리를 대처하기로 한 곳들도 있다"면서 "어쩔 수 없이 서비스 질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러니 시설에 가족을 맡긴 이들의 걱정과 불만도 쌓여간다. B씨는 "코로나 확진자가 폭증해 요양원에 모신 엄마를 다시 모시고 나와야 하나 고민이 된다"면서 "면회도 안 돼 걱정스럽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 원장도 "(사정을 모르다 보니) 어르신이 돌아가시면 시설을 원망하시기도 한다"면서 "인력이 없어 비접촉 면회를 중단했는데 여기에도 불만 의견이 있다"고 했다.

정부 "요양보호사 격리기간 단축, 검토 중"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일보 자료사진

정부는 이 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 무증상 요양보호사들에 한해 격리기간을 단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현재 업무연속성계획(BCP)의 일환으로 의료기관에서는 의료진 감염 비율 등을 고려해 확진 의료진의 격리기간을 3일, 5일 등으로 단축해 운영하고 있다.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관계자는 "현장의 인력 공백, 감염 확산 방지, 타 사례를 감안해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고위험군을 지근거리에서 살펴야 하는 요양보호사 특성상 부적절하다고 보는 시선도 있다. 전 사무처장은 "보호사들은 자기 때문에 환자가 확진될 경우 부담을 크게 느낀다"면서 "(단기간 격리한 요양보호사로부터) 추가 감염이 안 된다는 보장이 없어 위험한 부분이 있다"고 했다.

아울러 정부는 지자체별로 요양원 등 감염취약시설 담당팀을 구성해 집중 관리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손영래 중수본 사회전략반장은 이날 백브리핑에서 "최대한 빨리 처방하려 하지만, 지난주 하루 평균 4,000~5,000건 처방이 이뤄지는 등 처방이 증가했다"면서 "요양시설 등에서 감염 발생 시 어르신을 조기에 진단하고 먹는 치료제를 처방하기 위한 체계를 가동 중"이라고 밝혔다.

오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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