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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적 법치를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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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준으로 집계된 통계인지는 모르겠지만, 문재인 정부의 공약 이행률은 2021년 5월 기준 17%라고 한다. 그렇다면 윤석열 당선인의 공약은 얼마나 지켜질까.
'여성가족부 폐지'는 전략적 젠더 정치의 한가운데서 솟아오른, 특히 단 7개의 활자로 SNS에 공표되었다는 면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공약이었다. 존재하는 한 부처의 폐지를, 공론이라는 과정을 싹둑 떼어먹고 다짜고짜 '비상사태 선포'하듯 이런 방식으로 공표한 그는, 당선된 다음 날 '투표 결과를 보고 하루 만에 다 잊어버렸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통합과 법치, 소통의 정치를 '약속'한다. 통합은 차치하고 법치나 소통은 그에게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의 정치공학적 맥락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분석과 해석, 추측들이 나왔지만, 나는 무엇보다 그의 언어 행위성 자체에 주목하고 싶다.
'꼬마야, 요즘 어떤 책을 읽고 있니? 내게 그 책을 읽어줄 수 있겠니?' 서른여섯의 여자는 열다섯의 '꼬마'와 사랑을 나누고 나면 늘 그가 들고 다니는 책의 문장들을 청해 들었다. 나중에 나치 전범 법정에 선 여자를 보고서야, 그는 알게 되었다. 여자가 읽고 쓸 줄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복무'한 사람이라는 것을. 여자는 법정에서 국가가 명한 '질서'를 지키는 것이 자신의 의무였다고 말한다. 도대체 왜 법의 질서를 지킨 자신이 범죄자로 이 법정에 서야 하는지 여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여자를 사랑했던 그는 자신의 사랑을 배신할 수도, 범죄를 용서할 수도 없는 이율배반의 고통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그는 감옥에 있는 여자를 위해 날마다 '자신의 목소리로' 책을 녹음해 보낸다. 여자는 서서히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언어공동체의 일원이 되면서 여자는 비로소 자신이 한 일이 무엇인지, 왜 지금 감옥에 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홀로코스트 이후를 사는 세대의 역사적 책무에 대해 성찰하는 '책 읽어주는 남자'의 이야기다. 남자는 말한다. 책을 읽어주는 것은 '그녀에게 이야기하는', 그리고 '그녀와 이야기하는' 자기 나름의 방식이었다고.
앞으로 5년간 국가를 책임지고 통치할 사람이 언어의 힘을 전혀 믿지 않으며, 끊임없이 언어를 배신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나는 심하게 충격을 받았고 절망했다. 말하기와 기억하기, 행하기 사이에 어떤 논리적, 공동체 윤리적 책임을 두지 않는 그가 약속하는 통합과 법치, 소통이란 과연 무엇일까. 통치자는 반복해서 언어공동체의 존재를, 대화와 약속으로 지켜야 하는 사회의 존재를 무시하거나 파괴할 테고, 공동체의 구성원인 '우리'는 그때마다 이 파괴에 맞서 언어의 힘으로 사회를 지키려 애쓸 것인가.
나는 현실 속 '법들'이 정의라는 이념의 구현으로서 동시에 정의의 타락이며 배반일 수밖에 없음을 끊임없이 반성하고 변신하며, 그렇게 갱신하는 언어공동체 안에서 늙고 싶다. 다양한 세대들과 젠더들, 종들 사이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공존하고 싶다. 함께 진화하고 싶다. 어떤 연령대든 나이 들고 있는 다른 구성원들도 지금 나처럼 이런 꿈을 꾸며 나름의 다짐을 하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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