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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규탄을 반대한 북한의 속내는?

입력
2022.03.22 00:00
27면
2019년 4월 25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첫 정상회담을 갖고 악수를 하고 있다. 타스 연합뉴스

2019년 4월 25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첫 정상회담을 갖고 악수를 하고 있다. 타스 연합뉴스

유엔 특별총회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규탄 결의안에 북한은 반대표를 던졌다. 혈맹 중국도, 사회주의 형제국 쿠바도, '동지적 관계'를 내세운 베트남도 모두 기권표에 줄을 섰지만 북한은 달랐다. 결국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지도자는 민주주의 파괴자와는 손을 잡았고 무고한 인민의 살상에는 눈을 감았다. 인민복을 입은 푸틴과 김정은의 얼굴 합성 사진에는 '좋아요'가 쏟아진다. 기권 정도로 충분히 체면치레를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북한은 왜 반대표를 고집했을까.

첫째, 북러관계를 보자. 러시아는 안보리의 대북 제재, 인권결의안 등 유엔 무대에서 북한 관련 사안에 대해 예외 없이 북한 편을 들었다. 게다가 푸틴은 구소련 시절 북한이 지고 있던 10조 원의 부채 대부분을 탕감해 줬다. 김정은이 권좌에 오른 후 불과 두 해 만의 일이다. 트럼프에게 뒤통수를 맞은 김정은을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날아가 제일 먼저 만나준 것도 푸틴이다. 하노이 참사 후 불과 두 달 만의 일이다. ICBM급 제재 폭탄을 맞은 러시아가 제재 형제국이라고 북한을 도울 여력이 있는 건 아니지만 사회주의 연대는 여전히 중요하다.

둘째, 북미관계에 던지는 메시지도 포함되어 있다. 우크라이나 개전 이후 북한 외무성 성명의 초점은 대미 비난에 맞춰져 있다. 전쟁의 원인은 미국과 추종세력의 강권과 전횡이며, 러시아의 안보 우려를 무시한 후과(後果)를 미국이 치르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 전선 대응에 경황이 없는 미국의 뒷다리를 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중국과 러시아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략적 계산이 내재해 있다. 북한이 최근 들어 러시아와는 '전략적 협조'를, 중국과는 '전략적 협조와 단결'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 속내가 읽힌다.

셋째, 비핵화 셈법으로 들어가면 북한의 계산법은 더욱 명료해진다. 우크라이나는 미국, 러시아, 영국 등 핵보유국이 서명한 안전보장 각서를 받는 조건으로 핵포기와 NPT 가입을 선언한 바 있다. 안전보장 각서에 서명한 나라들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력 사용과 위협을 '하지 않는다(refrain)'고 합의했다. 그러나 '금지(ban, forbid)'와 같은 단어를 사용하지 않은 데다 조약(treaty)이나 협정(pact)도 아닌 각서(memorandum) 한 장으로 국토와 인민들이 도륙당하는 전쟁에 제동을 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수천 명의 목숨값으로서 각서의 무게는 너무도 가벼웠다.

게다가 우크라이나와 동시에 자발적 핵포기를 선택했던 벨라루스는 28년 동안 유지해 왔던 '핵 금지' 헌법을 우크라이나 개전 사흘 만에 개정해 버렸다. 구소련에서 비확산 체제가 흔들리는 사이 일본에서는 아베 전 총리가 '핵 공유'를 들먹거리며 반세기 넘게 유지해 온 일본의 비핵화 3원칙을 흔들어대고 있다. 북한으로서는 불리한 환경이 아니다. 조만간 핵 보유의 불가피성과 정당성을 들고 나올 것이다.

올해 초 노동당 8기 4차 전원회의에서 북한의 대외전략은 공개되지 않았다. 당내 유일한 '김핵관'으로 분류되는 김여정조차 입을 열지 않으니 전문가들도 답답할 노릇이었다. 그러나 유엔 특별총회의 반대표를 독해하다 보면 북한식 대외전략의 윤곽이 보인다. 지난해 바이든 행정부는 모호하기 이를 데 없는 대북정책을 내놓으면서 북한을 향해 말이 아닌 행동을 요구했다. 북한이 워싱턴의 말귀를 알아듣고 행동에 나서는 것일까?


성기영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외교전략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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