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진왕? 불도저? '靑 이전 결정'서 드러난 윤석열 리더십

입력
2022.03.21 04:30
수정
2022.03.21 11:46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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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회견장에서 대통령실 용산 이전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회견장에서 대통령실 용산 이전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연합뉴스

대통령 집무실 이전 문제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첫 번째 리더십 시험대였다. 윤 당선인은 ‘정면 돌파’를 택했다. 비판과 걱정을 뒤로한 채 20일 기자회견을 열어 ‘용산 집무실 시대’를 공식화했다.

"비(非)정치인 출신 대통령으로서 추진력을 입증했다"는 호평과 "정권 출범 전부터 ‘불도저 이미지'를 얻었다"는 악평이 엇갈렸다. 윤 당선인은 지휘봉을 들고 45분간 집무실 이전 계획을 직접 브리핑하고 기자들의 질문에 일일이 답하는 것으로 '일방적인 결정'이라는 우려를 씻으려 애썼다.

'용산 직행' 밀어붙인 尹 "청와대 들어가면 이전 못 해"

윤 당선인의 한 측근은 20일 "'용산 집무실 전격 이전'과 '청와대 입주 후 단계적 이전'을 놓고 막판까지 고심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윤 당선인은 19일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를 둘러본 뒤 마음을 굳힌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이 아니면 영영 못 한다"는 게 윤 당선인이 용산행을 결심한 핵심 배경이다. 그는 대통령이 구중궁궐 구조의 청와대에서 근무하고 생활하는 한 '제왕적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도 "공간이 의식을 규정한다"고 했다.

19일까지 국민의힘에서도 "시간을 두고 집무실 이전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우세했다. 그러나 윤 당선인은 문재인 대통령이 '광화문 집무실 이전 대선공약'을 끝내 포기한 사례를 따르지 않겠다고 작정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 위원회를 꾸려 광화문 이전 방안을 검토했으나,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판정이 나오자 청와대에 남았다.

윤 당선인은 “시기를 조금 더 두고 판단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는데, 청와대에 들어가면 여러 바쁜 일 때문에 안 된다고 본다”며 속도조절론에 거듭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선택을 "국가의 미래를 위한 결단”이라고 했다. 제왕적 대통령제 청산이라는 명분을 위해 당장의 반발을 감수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소통' 위한다면서 '불통' 강행... 靑과도 불씨 남겨

결정 과정은 매끄럽지 못했다. 대통령 당선 이후 불과 약 열흘 만에 초대형 결정을 하면서 '여론 수렴' 절차는 생략됐다. △공청회나 국민과의 대화 등을 통해 집무실 구상을 설명하고 국민의 의견을 듣는 과정 △여론의 반응을 기다리고 반영하는 과정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와 협의하는 과정 등이 일절 없었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제왕적 방식으로 내려놓는다"는 비판이 나왔지만, 윤 당선인은 "결단하지 않으면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며 대통령 집무실 이전이 '소명'임을 강조했다. 또 “여론조사 결과 등을 따르는 것보다 정부를 담당할 사람(대통령 당선인)의 철학과 결단도 중요하다고 본다”고 했다.

임기가 두 달 가까이 남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는 지적도 있다. 집무실 이전을 위한 예산 집행, 국방부 이전과 청와대 개방 업무 등을 놓고 청와대와 조율이 필요하지만, 윤 당선인은 "오늘 발표했으니 협조 요청을 하겠다"고만 했다.


강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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