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현장 붕괴 수준 치닫는데… "치명률은 낮다"라는 정부

입력
2022.03.18 18:40
수정
2022.03.18 19:38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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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크론 정점 도달 전 안된다 반대론 속에도
거리두기 찔끔찔금 완화 ... 정작 효과도 없어
사망자 폭증에 병상, 재택고위험군 관리도 한계
전문가들 "예측실패로 인한 방역실패 사과하라"

사적모임 제한이 6인에서 8인으로 조정된 18일 서울의 한 식당 주인이 8인 가능 안내문을 써 붙이고 있다. 뉴스1

사적모임 제한이 6인에서 8인으로 조정된 18일 서울의 한 식당 주인이 8인 가능 안내문을 써 붙이고 있다. 뉴스1

지난 사흘간 코로나19 확진자는 140만 명이나 쏟아졌다. 쏟아지는 확진자에 의료진 감염까지 겹치면서 의료현장은 붕괴 수준으로 치닫고 있고, 넉넉하다던 병상도 부족해지고 있다. 고위험군 관리에 집중하겠다고 해왔지만 하루 두 번 체크하는 재택치료 고위험군은 이미 감당 가능한 수준이라던 30만 명에 다다랐다.

이 와중에서도 정부는 '국민 생활 불편 해소'를 내걸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6인·11시에서 8인·11시로 '찔끔' 완화했다. 하지만 거리두기 완화 근거는 제대로 대지 못했다. 거리두기 완화 명분은 자영업자의 어려움 해소였지만, 방역당국 스스로도 최근 거리두기 완화에도 카드 매출을 되레 감소했다고 실토했다. '방역이 곧 경제'임을 강조해온 방역전문가들은 "오미크론 예측 실패가 방역 실패로 이어진 점을 솔직히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선 전엔 '거리두기 대폭 완화' 외치더니 "정점 전 해제 위험" 말 바꿔

18일 이기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제1통제관은 "21일부터 2주간 사적모임 인원을 종전 6명에서 8명으로 조정한다"며 "정점이 분명해져서 감소세로 전환되고, 의료대응 여력이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고 평가하기 전까지는 전면적으로 거리두기를 해제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날 발언은 대선 직전인 지난 4일 발언과 완전히 정반대의 내용이다. 당시 방역당국은 "다음 번 거리두기 조정 땐 대폭 완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오미크론 정점이 어느 정도이고 확산세가 어느 정도까지 미칠지 가늠을 제대로 하지 못하니 미리 호언장담했다가, 막상 하루 확진자 수가 62만 명 선으로 치솟자 완전히 꼬리를 내린 모양새다. 이 때문에 오히려 지난 4일 발언을 두고 대선용 발언이었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찔끔찔끔 거리두기 완화 ... 자영업자에게 큰 도움 안됐다

방역당국은 자영업자들 상황이 어렵다는 이유로 오미크론 확산세에도 영업시간 제한 '찔끔', 사적모임 인원제한 '찔끔' 풀어왔다. 그렇다고 자영업자의 어려움이 해소된 것도 아니다.

방역당국에 밝힌 한 주간 신용카드 매출액을 보면 지난 1월엔 9조6,000억 원 수준에 이르기도 했지만, 지난주엔 8조243억 원으로까지 줄어들었다. 휴대폰 이동량을 따져봤더니 이번 주는 전주 대비 1.3%, 고속도로 통행량은 6%가 줄었다.

업종별로도 자영업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음식점을 비롯해 유통, 여행 등 대부분 업종에서 매출이 하락했다. 오미크론 확산세가 한창 불붙었을 때는 방역을 풀어줘봐야 움직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나마 늘어난 업종은 전주 대비 18.4%, 전전주 대비 29.9% 늘어난 유흥시설 정도다. 술만 권하는 사회가 된 셈이다.

17일 경기 화성시 함백산 추모공원 화장장에 화장시간 안내문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계절적 영향과 코로나19로 사망자가 급증하면서 화장시설이 부족해지자 정부가 전국 공설 화장시설 운영기간과 화장 횟수를 늘리기로 했다. 화성=뉴시스

17일 경기 화성시 함백산 추모공원 화장장에 화장시간 안내문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계절적 영향과 코로나19로 사망자가 급증하면서 화장시설이 부족해지자 정부가 전국 공설 화장시설 운영기간과 화장 횟수를 늘리기로 했다. 화성=뉴시스


방역 완화 2주간 사망자 3200명… 지방 중환자실은 포화

반대로 확진자는 크게 늘었다. 영업시간을 11시로 연장한 지난 5일부터 이날까지 2주간 확진자는 470만 명에 이른다. 하루 확진자 수는 20만 명을 넘어 30만 명을 찍더니 이젠 40만 명 정도라 해도 별로 놀랄 일이 아니다.

그간 방역당국은 '확진자가 늘어도 고위험군 위주로 대응을 잘하겠다'고 해왔다. 하지만 이 또한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는 경고음이 요란하다. 지난 5일 이후 누적 사망자만 3,202명에 이른다. 100명 수준이던 하루 사망자 수도 400명대에 이르렀다.

특히 17일 사망자 429명 중 요양병원 사망자가 148명에 이르고, 10명 이상 집단감염이 발생한 요양병원 및 병원이 서울에서만 200곳에 육박하는 등 의료시설 내 위험도도 높아지고 있다.

병상가동률도 가파르게 증가했다. 지난 4일 50.5%였던 전국 중환자 전담 병상 가동률은 66.5%까지 올라왔다. 평균치가 그렇다는 얘기지, 광주는 54개 병상 중 53개(98.1%)가 이미 찼고 전남 22개 중 19개(86.4%), 경남은 63개 중 54개(85.7%)가 가동 중이다. 병원 수가 적지만 고령층이 많은 지방은 이미 중환자실에 여력이 없다는 얘기다.

여기다 재택치료 집중관리군은 같은 기간 14만3,000여 명에서 29만4,000여 명으로 2배 이상 늘었다. 방역당국이 그간 '집중관리군 30만 명 정도 관리 가능하다'고 해왔는데 이 또한 포화상태인 셈이다.

이 때문에 대한의사협회 코로나19대책전문위원회는 "앞으로 무더기 사망자가 발생할 수 있다"며 "방역 완화 중지를 강력하게 촉구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정부는 '치명률 낮다' 강조 ... 전문가 "방역 실패 사과부터 하라"

하지만 방역당국은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중대본 회의 모두발언에서 '한국은 신규 확진자 수가 많지만 사망률은 전 세계에서 가장 낮다'는 해외 언론 보도를 내밀며 우리가 대응을 잘하고 있다는 점을 내세웠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 역시 '인구 10만 명당 사망자 수' 등의 수치를 내보이며 "국내 사정은 안정적"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한 발언'이란 측면을 이해하면서도 지금 필요한 건 예측 실패, 대응 실패에 대한 솔직한 사과라고 지적했다. 김우주 고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사망자 급증으로 화장시설까지 모자라다는 얘기가 나오는 와중에 사망률이 낮다고 생색내고 있다"며 "병원장들이 보고하는 병상 숫자만 볼 게 아니라 현장부터 챙겨야 한다"고 말했다. 최재욱 고려대 예방의학과 교수도 "사망자가 폭증하는 등 방역참사를 초래한 부분에 대해 국민 앞에 사죄하는 게 먼저다"고 꼬집었다.

김경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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