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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분의 삶'을 유지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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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을 볼 때 1인분 기준으로 꾸려진 소포장 식자재나 밀키트를 자주 산다. 물론 대용량으로 묶음 포장된 재료들에 비하면 객단가가 다소 비싸긴 하지만, 1인 가구로서 이 정도는 식생활의 질을 높이기 위해 감수할 만한 투자다.
처음 독립했을 무렵, 식재료를 극소량으로 판매하는 곳이 흔치 않아, 많아야 주에 한 번 정도를 제외하면 내 식단은 대개 '해치우기'와 '때우기'를 목적으로 짜여졌다. 유통기한에 쫓겨 시들고 묵은 재료를 대충 볶아 해치우거나, 물릴 대로 물린 국이나 밑반찬을 일주일 내내 데워 먹거나, 반대로 무언가를 냉장고에서 묵히지 않기 위해 참치 캔을 따 한 끼를 때우는 식이었다. 조리 도구나 그릇은 최소한의 식사를 기준으로 마련되어 있었고, 좋은 주방용품은 '나중에 제대로 해 먹고 살 때'를 위해 구비를 미뤄두었다. 이는 주방을 제외한 다른 공간들을 꾸미는 방식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다 1인분의 '요리'를 목적으로 소분된 재료들을 사들이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식탁의 독립을 달성했다. 무엇이 남아 있는지, 무엇을 먹어 치워야 하는지가 아닌 뭘 먹고 싶은지를 우선적인 기준으로 삼아 메뉴를 정할 수 있게 되었고, 제대로 된 그릇에 신선하게 조리된 음식을 담아 상을 차려 내기 시작했다.
작은 차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내 몫의 식사를 준비하는 태도로 집의 다른 모든 공간을 대하기 시작하면서 독립 가구로서의 내 생활은 인생 전체의 한 구간으로 조금 더 차분하게 단단해졌다. 어딘가 완성된 형태의 삶이 있고 그것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는 불안감이 현저히 줄었다. 이 변화가 식생활의 차이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겠으나, 내 거주 공간을 임시 숙소 같은 '자취방'이 아닌 '집'으로, 현재의 삶을 미래를 위한 준비기간이 아닌 독립적으로 완성된 상태로서 감각하도록 하는 데 이 경험은 분명히 큰 역할을 했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을 지나오면서, 단순히 먹고 사는 일을 떠나 인생 전반에서 한 사람의 일상을 독립적인 인격체의 삶으로 만들어주는 요소가 무엇인지에 관해 오래 생각했다. 끝에 내린 결론은 자신의 욕망과 필요, 사고를 먼저 명확하게 인지한 다음 나의 가치관을 실행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을 주도적으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명확한 기준점을 가진 자신의 선택들로 삶을 꾸린 사람들은 외부 상황의 변화에도 덜 흔들리고 더 의연했다. 그 이후 내게 중요한 가치들을 명확히 살피고 파악해 두었다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 최우선 순위의 기준점으로 삼는 일은 후회를 줄이고 삶의 방향을 균일하게 유지하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원칙이 되었다.
그로부터 또다시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 이때, 오래전 내게 가장 커다란 화두였던 이 '1인분의 삶'을 유지하는 일의 중요성을 다시금 되새긴다. 나 자신만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무수한 선택지가 쏟아지는 와중에 내 생각보다 타인의 생각을 더 빠르게 알 수 있고 내 허물보다 남의 잘못을 더 또렷하게 볼 수 있는 지금, 분위기에 휩쓸려 가볍게 분노하거나 타인의 생각이 나와 다름에 쉽게 절망하지 않고자 함이다. 또, 온전히 내 의지에 의해 선택하고, 그 선택을 진지하게 책임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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