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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쳐나는 ESG 잣대들

입력
2022.03.21 00:00
27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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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주식시장 대표지표 중 하나로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DJIA)가 있다. 30개 우량기업 주식종목으로 구성된 지수다. 다우존스지수의 특징 중 하나는 시대의 흐름을 그다지 재빠르게 반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과 주식 시장에 놀랄 만한 혁신과 영향력을 발휘한 기업들조차 지수 편입은 늘 때늦은 감을 줄 정도다. "자주 바꾸지 않는 것이 오히려 신뢰를 줄 수 있다"는 게 다우지수의 철학이란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ESG 분야에도 세계적으로 벤치마킹되는 해외표준(이니셔티브, 프레임워크, 가이드라인, 스탠더드 등등)들이 있는데 그중 지속가능회계기준위원회(SASB; Sustainability Accounting Standards Board)의 '중대성 기준'(materiality)은 기업들의 ESG 관련 정보공시에 대한 지침이 되곤 한다. 각 산업별로 중요하게 관리, 공개해야 하는 항목들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전력·철강·화학산업은 탄소배출과 관련된 정보를, 건설업체들은 토지 이용과 생태계를, 금융산업의 경우는 내부통제나 인적자원 관리 등이 우선순위 높은 테마가 된다. 그런데 메타버스나 암호화폐, NFT, 디지털 헬스케어 같은 신산업에 대해선, 이미 방대한 연구자료가 있고 무엇보다 요즘 가장 '뜨거운' 업종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별도의 중대성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 그저 기존의 유사 산업 케이스를 확장 적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작년 12월 산업부가 관계부처 합동으로 'K-ESG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ESG 평가기관들의 평가결과가 제각각이라 기업들의 혼란과 불편을 줄이고자 표준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기획 단계부터 찬반 양론이 많았다. 'K-ESG 가이드라인'의 부재로 인해 과연 어느 기업이 어느 정도로 심각한 혼란과 불편을 겪었을까? 혁신으로 따진다면 시장과 제도 중에, 혹은 기업과 정부 중에 누가 더 혁신적일까?

최근 들어 로펌과 회계법인들의 ESG 사업 참여가 높아지고 있다. 신용평가사들도 이 분야로 비즈니스를 확장하고 있다. 'ESG 기준원'으로 사명을 변경하려는 회사도 있고, 'CFA(Chartered Financial Analyst: 공인재무분석가)협회'도 ESG투자에 대한 자격증(certification) 사업을 하고 있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란 책에서 비즈니스 논리가 지나치게 확장될 경우(그는 심지어 탄소배출권 거래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원래의 선한 가치에 대한 태도와 인식 등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경계했다.

ESG와 관련된 기준과 표준, 가이드라인, 그리고 인증과 자격증이 범람하고 있다. 필자가 일하는 회사 역시도 이와 관련된 비즈니스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동료들과 함께 불완전하고 부족한 잣대로 기업들(상장사)의 ESG 활동에 대해 점수를 매기고 순위를 정한다. 순위를 정해야 하다 보니 최소한의 기준들이 최대한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필자의 초등학생 시절에는 등수가 쓰인 성적표가 있었다. 지금은 아마도 초등학생들에게는 시험이나 학교활동에 대한 평가순위는 큰 의미가 없다고 세상이 믿고 있을 것이다.

세상의 ESG에 대한 연구는 아직 초등 수준일 수 있다. ESG가 모든 기업에 또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에게 동일한 무게나 가치로 느껴지진 않을 것이다. 미래를 내다볼 수 있을 정도의 대단한 수준이 아니라면, 기준이나 가이드라인은 최소한일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비록 열위의 것이라 하더라도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격려해야 한다. ESG에 대한 표준화된 정석은 없다.


조윤남 대신경제연구소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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