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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돕는 우크라이나를 제발 하늘도 돕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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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다닐 때 학년 초에 하는 '환경미화'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교실 뒤편 게시판에 붙이던 '학급신문'이었다. 커다란 종이에 칸을 나누고 그림과 색지로 꾸며서 다양한 내용을 담아 놓으면 제법 그럴듯해 보였는데 한번은 그 칸 나누기에 실패해서 애매하게 두세 줄의 공간이 남았다. 기사를 넣기엔 너무 좁고 그냥 두기엔 휑해 보여서 고심한 끝에 그럴듯한 영어 속담을 찾아서 넣기로 했다. 그래서 형이 보던 영문법 책을 뒤져서 찾은 것이 바로 'Heaven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 우리말로 번역하면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속담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도, 그리고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이 속담의 뜻이 잘 와닿지 않았다. 풀어서 해석하자면 '적어도 네가 뭔가 시도는 해야 운도 따르는 법이다' 정도의 의미일 텐데, 내가 뭘 한다고 해서 반드시 운이 따르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안 될 일을 무작정 해보라고 등 떠미는 것도 무책임한 일이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최근 러시아의 침략에 맞선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처절한 항전을 보면서 저 속담이 진짜 의미하는 바를 알게 된 것 같다.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전 세계 군사력 2위 수준의 막강 러시아군에 우크라이나가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 모든 이의 공통된 예상이었다. 미국의 입장에서도 우크라이나는 버리는 패에 가까웠고, 심지어 독일에 무기 지원을 요청했던 주독일 우크라이나 대사는 '전쟁이 금방 끝날 것이므로 지원할 수 없다'는 모욕적인 말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금세 항복할 거라던 예상과 달리 코미디언 출신이라는 이유로 능력을 의심받던 젤렌스키 대통령과 장관들은 죽을 때까지 수도 키이우를 지키겠다는 결의로 맞섰다. 이에 호응하여 시장, 전임 대통령, 피란 가던 국민들, 심지어 해외에서 편안하게 살아오던 이들까지 우크라이나로 달려와 소총과 화염병을 드는 상황이 되자 하루이틀이면 끝날 거라던 전쟁은 몇 주를 넘기며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미국은 4,200억 원의 군사원조를 결의하고 러시아를 아예 국제금융망에서 배제하는 '금융 핵폭탄'까지 날렸으며 독일도 입장을 바꿔 대전차무기 1,000정, 지대공 스팅어 미사일 500기 지원을 발표했다. 이 외에도 우크라이나에 전 세계의 지지와 지원이 쇄도하면서 오히려 러시아가 막다른 길로 몰리는 상황이 되었다. 얼마 전 미군이 온갖 물자를 남겨두고 떠난 아프가니스탄이 대통령을 비롯한 지도부가 곧바로 도망치면서 순식간에 무너지는 장면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모습이다.
사실 이런 장면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IMF외환위기 상황에서 벌어졌던 '금모으기 운동'은 그 효과를 비관적으로 보는 이들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절망적 상황에서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돕는' 모습이 우리 스스로에게는 자신감으로, 외국의 투자자들에게는 신뢰로 자리 잡아 결국 IMF 지원을 받은 국가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회생에 성공한 국가가 되는 씨앗이 되지 않았던가. 우크라이나인들의 저항이 끝내 좌절된다 해도 '강대국이라도 함부로 전쟁을 일으키면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교훈을 전 세계에 던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큰 의미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의 '스스로 돕는' 몸부림이 우리의 슬픈 상상을 뛰어넘는 '하늘의 도움'으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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