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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에 딴짓 좀 하면 안되나요

입력
2022.03.18 22:00
23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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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세. 당신은 은퇴를 한다. 은퇴라는 단어를 꺼낼 수 있다는 점에서 당신은 꽤 행운아다. 노인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라는 우리나라에서, 대다수 노인은 열악한 처우를 견디며 노동을 이어 나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갑자기 넉넉하게 주어진 시간 앞에서 당신은 당황한다. 먹고사느라 바빴던 세월 동안 당신은 스스로를 위해 시간을 쓰는 법을 잊어버렸다. 당신의 딸은 취미로 목공을 배우고, 아들은 기타를 친다. 그들은 당신도 취미를 즐겨보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당신에게는 취미가 없다. 평생 취미를 즐길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은퇴 후 많은 노인들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라 막막해한다. 그들이 청년이었을 때 우리나라는 가파른 경제성장의 시기를 거치고 있었고, '잘 살아보세'를 외치며 일만 하느라 돈이 안 되는 취미 생활을 할 여유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곯는 서러움을 알았던 이들에게 돈이 되지 않는 즐거움이란 언뜻 사치로 보였을 수도 있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 시위의 현장으로, 지갑을 열지 않고도 앉아 있을 수 있는 공원으로 나간다. 그러나 코로나 때문에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진다. 60세 이상 국내 노인 10명 중 1.2명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 그들이 즐길 만한 취미는 없을까?

JTBC의 '뜨거운 싱어즈'는 나이 총합 990세 배우들이 모인 시니어 합창단의 예능이다. 82세의 나문희와 86세의 김영옥을 비롯해 김광규, 장현성 등 나이 많은 배우들이 노래를 부른다. 한창 유행이었던 노래 경연대회처럼 화려한 노래 실력을 뽐내거나, 치열하게 경쟁하지 않지만 그들의 노래를 듣다 보면 어쩐지 눈물이 난다. 긴 세월을 담담히 버텨낸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감정이 있다.

나와 두 명의 발행인이 함께 만드는 '딴짓매거진'은 밥벌이의 고단함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위해 재미있는 일을 벌이는 딴짓을 응원하고 있다. 몇 해 전 주제 중 하나는 '황혼의 딴짓'이었는데, 그때 나는 69세에 그림 그리기를 시작해 80세에 전시를 한 아티스트를 인터뷰했다. 81세부터는 대학에 가고 싶다고 했다. 자식들을 사회에 내보내기 전까지 바빠서 자신을 위한 시간을 낼 수 없었다고 말하는 그녀는, 나이 먹고 나를 위해 사는 행복을 다시 찾았다고 말했다.

무엇인가를 즐기는 것에도 훈련과 배움이 필요하다. 평생 소주만 마시던 사람은 칵테일의 맛을 모르고, 클래식만 듣던 사람은 트로트의 맛을 모른다. 경험으로서만 넓어질 수 있는 세계가 있다. 노인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고 즐기려면, 그것을 위한 시간과 자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돈을 내지 않고도 누릴 수 있는 공공공간은 자꾸만 줄어든다. 공원 조성을 위해 도시계획시설로 지정한 임야 등에 대해 20년간 공원조성 사업에 착수하지 않으면 공원 지정이 해제되는 상황 때문에, 공원은 더 줄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2년 동안 전체 예산의 2.4%를 유지하던 문화체육관광 분야 예산을 1.9%로 삭감했다. 대부분 취미로 즐기는 생활문화 관련 예산이다. 돈을 쓰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취미의 기회는 점점 줄어든다. 우리에게는 나이와 직업에 상관없이, '잘하지 않아도 좋아하니까 괜찮은 일'이 필요하다. '먹고사니즘'의 세계에서 잠시 벗어나 숨 쉴 틈이 필요하다. 지금 서울시는 그런 틈을 내어주고 있을까?


박초롱 딴짓 출판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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