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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에 총리·장관 후보자 추천해 달라고 손 내밀어야 협치 성공”

입력
2022.03.17 17:00
수정
2022.03.17 17:50
24면

[김정곤의 노크] 문희상 전 국회의장 인터뷰

문희상 전 국회의장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국민통합을 위한 협치를 당부했다. 문 전 의장은 15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여소야대 정국에서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야당에 먼저 손을 내밀고 총리와 장관 추천을 제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주연 기자

문희상 전 국회의장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국민통합을 위한 협치를 당부했다. 문 전 의장은 15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여소야대 정국에서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야당에 먼저 손을 내밀고 총리와 장관 추천을 제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주연 기자


20대 대선에서 민심은 정권심판을 택했다. 하지만 승자에게도 압도적 승리를 안기진 않았다. 거대 여당의 독주를 심판하면서도 승자의 오만을 경계한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5월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는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절반의 민심까지 보듬어 국민통합을 이뤄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대선 이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을 향해 국민통합의 주문이 쏟아지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방식으로 국민통합이 가능할까. 대표적 의회주의자인 문희상 전 국회의장은 협치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문 전 의장은 15일 인터뷰에서 “야당 인사 몇 사람 빼 와서 구색만 맞춘다면 국민통합을 기대할 수 없다”면서 “당선인이 야당에 공직 후보자를 추천해 달라고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여소야대 정국에서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문 전 의장은 패배한 민주당에도 독선과 오만에 대한 반성과 강도 높은 혁신을 주문했다.

-유권자가 이번 대선에서 정권 심판론을 선택했다. 그러나 48.56%대 47.83% 박빙 승부였다. 0.73%P 차이 승부의 의미는 무엇인가.

“모든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그리고 결과는 심판이다. 박빙 여부를 불문하고 국민의힘이 이기고 민주당이 졌다는 건 확실하다. 한 표를 져도 진 건 진 것이고, 졌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 선거를 주도했던 세력이 졌다면 책임을 져야 민주주의가 완성된다. 졌지만 잘 싸웠다는 말은 내부 결속용으로는 훌륭한 말이지만 변명에 불과하다. 박빙의 결과는 유권자가 양쪽에 주는 경고의 의미기도 하다. 야당에 정권교체의 명분을 주면서도 촛불 정부의 정통성에 대해서도 절반을 인정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어떤 국정운영이 심판을 받은 것인가.

“부동산 실패, 부동산 정책의 실패가 결정적이다. 문재인 정부가 시종일관 ‘우리만 옳다’는 독선에서 빠졌던 것도 사실이다. 이 정부는 촛불혁명으로 생긴 3기 민주 정부다. 그런데 촛불 정신의 근본을 적폐청산에서 찾는다면서 너무 무리를 했다. 모든 청산 작업은 전광석화처럼 빨라야 하는데 초점이 흐려질 정도로 너무 시간을 끌었다.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을 초래한 제왕적 대통령제를 제도적으로 개혁하자는 게 촛불혁명의 정신이다. 개헌으로 제도를 개혁하고 인사로서 보여줘야 하는데 둘 다 소홀하면서 초점이 흐려졌다. 노태우ㆍ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협치를 통해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시키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지난 재보선에서 내로남불의 독선과 오만,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한 최후 경고가 있었음에도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바람에 대선에서 패했다.”

-인사로서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를 어떻게 없앨 수 있나.

“김대중 정부만 보더라도 상대편 적을 모두 발탁했다. 보수 진영의 강인덕을 통일부 장관 시키고 김중권을 대통령 비서실장에 앉혔다. 국무총리는 야당대표였던 김종필에 이어 박태준 이한동 등 보수 인사 위주로 썼다. 지역과 이념을 고려하지 않는 탕평 인사로 김대중 정부는 혁신의 발판을 만들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도 여소야대를 돌파하기 위해 협치를 동원했다. 김윤환 여당 원내대표가 3김을 대리하는 김원기, 최형우, 김용채와 함께 이른바 4인 협의체를 만들어 모든 걸 결정했다. 대통령이 ‘당신들 마음대로 하세요’라며 국회의 자유를 최대한 인정해 준 것이다. 협치가 제대로 굴러가서 외교안보에서 획기적인 일들을 할 수 있었다. 남북 기본합의서가 그때 나왔고 남북 유엔 동시가입, 북방 외교 등이 이런 협치의 틀에서 가능했다. 윤석열 당선인은 이런 협치를 배워야 성공한다.”

"첫째도 협치 둘째도 협치, 꼼수식 인사는 안 돼"

문 전 의장은 “첫째도 협치, 둘째도 협치”라며 인터뷰 내내 협치를 강조했다. 협치는 사전에 야당과의 합의를 통해 시스템으로 해야 한다는 주문도 잊지 않았다. 김부겸 총리를 유임하는 방식이나 야당 인사를 구색 맞추기로 뽑아 쓰는 것은 꼼수라는 지적이다.

-대선 기간 보수, 진보 양 진영이 대장동 사건을 비롯해 사사건건 대립하면서 갈등이 심화됐다. 갈등을 완화하고 국민을 통합할 방안은 무엇인가.

“인사 방식은 DJ한테 배우고, 협치의 시스템은 노태우 전 대통령을 따라 하면 된다. 모든 걸 국회 자율에 맡기고, 총리도 국회가 알아서 추천해 달라고 해야 한다. 김부겸 총리를 유임시키는 방안처럼 대통령이 간섭하면 안 된다. 야당 인사를 뽑아서 쓴다고 협치가 아니다. 야당과 합의 없이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합의 없이 인물만 뽑아 간다면 당사자는 배신자가 되고 만다. 협치를 한다면 당 대 당 시스템으로 해야 한다. 통합과 협치를 생각한다면 야당의 주장뿐 아니라 정책까지 수용해야 한다. 야당이 제시한 공약 가운데 선택할 수 있는 목록을 인수위원회에서 정리해 줘야 한다. 상대방도 공약을 제시했을 때는 현실타당성을 고려했을 것이기 때문에 그냥 받아주면 된다. 야당의 말을 경청하고 받아주면 만사가 해결된다.”

-안철수 인수위원장과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 김병준 지역균형발전위원장, 박주선 취임식준비위원장 모두 정통 보수는 아니다. 통합 의지의 표현 아닌가.

“야당 주류로 보기는 어려운 정치인들이다. 그런 만큼 통합의 의미로 해석하기는 무리가 있다. 과거 박근혜 정부에서 국민대통합위원장으로 호남 출신의 한광옥을 발탁했지만, 지체 높고 예산은 많았지만 아무 실속이 없었다. 통합위원회 하나 만든다고 협치가 되는 건 아니다. 통합하겠다면서 그런 사람들 뽑아 쓰면 야당은 야당대로 반발하고 소위 집토끼들은 또 소외감을 느낄 게 아니냐.”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협치의 발판이 가능한가.

“협치를 하려면 공식적으로 해야 한다. 그래야 정책 연합도 가능하다. 어느 부처는 야당이 맡아라 하고서 국정을 공동 운영하는 연정 개념으로 접근해야 협치에 성공할 수 있다. 사람만 빼가는 식이라면 협치가 아니라 그냥 이용하는 것이다. 김부겸 같은 총리가 필요하다면 아예 민주당에 추천권을 넘겨야 한다. 이재명 후보도 통합정부를 선언하지 않았나. 민주당이 공약한 것을 그대로 수용만 하면 대연정도 가능하다고 본다.”

-당선인이 인수위 출근 첫날 민정수석실 폐지를 제시했는데 대통령 권한 내려놓기라는 평가가 많다.

“민정수석실을 폐지하는 것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물론 민정수석 제도는 필요한 측면이 있다. 민정수석이 없으면 인사 검증에 큰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인사검증 기구를 별도로 만든다면 결국 달라지는 건 없다. 그래서 제도 자체를 없애는 걸 찬성하는 게 아니라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을 내려놓는 상징성을 평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한동훈 검사를 중앙지검장으로 중용한다는 말이 나오는데 그러면 바로 망한다. 검찰공화국의 서곡이 되는 거다. 민정수석은 폐지하면서 한동훈을 중용하는 의미가 무엇이겠는가. 측근을 통해 검찰을 장악하겠다는 것으로 바로 해석될 것 아닌가. 한동훈 검사를 포함해 측근 검찰을 곁에 두지 않겠다고 선언한다면 진심이 통할 것이다.”

-당선인 공약으로 여성가족부 폐지는 논란이 많다. 인수위에서 정리 가능한가.

“여가부 폐지는 소위 이대남 표심을 얻기 위한 선거 전략이었다. 포퓰리즘적 공약은 인수위 과정에서 과감히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문재인 정부의 원전폐기 공약처럼 5년 내내 벗어나지 못하는 덫이 되고 만다. 인수위에서는 5년 임기 동안의 목표와 함께 100일, 1년의 구체적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에 대한 당선인 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국민통합이 명분이다.

“국민 통합의 상징성 차원에서라도 사면조치는 해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비해 MB는 재산 범죄의 측면이 강하지만 사면권이 왜 필요한가. 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을 정치로 해결할 수 있다. 여전히 MB 사면에 부정적인 시선이 강한 것은 당사자가 깊이 반성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의 회동이 불발됐다. 누구 책임이 큰가.

“말할 나위 없이 당선자의 과욕 때문에 벌어진 사달이다. 지금은 당선자일 뿐이고 문재인 대통령이 현직이다. 당선 인사로 만나는 자리에서 축하와 덕담 이상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인사치레 자리를 사전 협의하고 발표문까지 작성한다는 게 현직 대통령 입장에서는 난세스다.”

-인수위는 청와대 대신 용산 국방부 청사를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광화문 시대도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을 내려놓는다는 취지를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당선인이 본질을 놓치고 있다. 광화문 시대의 본질은 소통하겠다는 것인데 군사 시설이 가득한 용산으로 가면 청와대보다 더 멀어질 수 있다."

-정권 교체로 한반도 외교안보 지형의 변화도 예상된다. 검찰 출신 대통령이라 외교안보 분야가 취약하다는 지적도 많다.

“대일 관계는 문재인 정부보다 개선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한일 양국 기업과 국민의 자발적 성금으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기금으로 활용하자는 대안(이른바 문희상안)까지 냈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제동을 걸었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한미 동맹을 기본으로 한미일 공조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이런 식으로 줄을 설 필요가 없을 만큼 우리 국력이 커졌다.”

"비대위 구성 둘러싼 민주당 내홍 어리석다"

문 전 의장은 민주당을 향해서도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특히 비대위 구성을 둘러싼 내홍에 대해서는 “어리석다”는 표현을 들어 질타했다. ‘졌지만 잘 싸웠다(졌잘싸)’는 민주당 내부의 평가에 대해서도 오만을 경계했다.

-윤호중 비대위원장 체제에 대해 당내 비토 분위기가 강하다. 86그룹에서는 윤 위원장 사퇴 요구까지 분출하고 있다.

“당대표가 대선 패배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마당에 공동선대위원장이었던 원내대표가 다시 비대위원장을 맡는 건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하지만 오죽하면 불가피한 선택을 했을까라고 이해할 측면도 있다. 사무총장을 지냈고, 압도적 다수로 원내대표에 당선된 만큼 정통성에서는 시비가 있을 수 없다. 선거 책임자로서 비대위를 맡는다는 게 명분은 없지만 얼마 남지 않은 지방선거를 감안하면 이만한 대안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문제로 당이 깨질 정도로 싸운다면 어리석은 짓이다. 이재명 후보 역할론도 나오는 모양이지만 지방선거 전까지 나타나지 않는 게 상책이다.”

-민주당이 강성 지지층에 휘둘리면서 중도층 민심과 거리가 멀어졌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그들도 이제는 소멸했다. 친노 친문 중에 진짜 문제가 되는 세력이 선거 기간 중에 윤석열 지지로 돌아서지 않았나. 강성 지지자들의 위협이 두려워서 정치를 못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졌잘싸 분위기도 감지된다.

“내부 결속과 상호 격려 차원에서는 할 수 있지만 국민 앞에서 공개적으로 할 말은 아니다. ‘지긴 했지만 잘 싸운 겁니다’라고 한다면 오만의 표시다. 이참에 정치가 복원돼야 한다. 승자독식의 정치 체제에서는 사생결단식 대결이 악순환될 수밖에 없다. 결선투표제나 다당제 도입 등 민주당이 선거 전에 발표한 정치개혁 과제를 꾸준히 실천해야 한다.”

김정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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