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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니 소금사막이 알려준 물의 고마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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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도가도 끝이 없다는 말이, 그저 딱 맞는 표현이었다. 최대한 길게 가로질러도 몇 시간이면 주파하는 반도국에 사는 이에겐 참 낯선 감각이었다. 칠레에서 볼리비아까지 국경을 넘어 이어지는 길, 고원의 사막지대를 2박 3일 동안 꼬박 달려가는 길이었다.
덜컹덜컹 없는 길을 만들며 달리는 지프차 안의 일행들은 고산병에 지쳐 쓰려져 있었다. 해발 2,000m가 넘을 즈음부터 스멀스멀 얼굴에 마비가 느껴지더니, 해발 4,000m에 다다르니 어찌 말로 못 할 두통이 생겼다. 숨쉴 산소가 희박해지는 고지대에서는 눈을 깜박이는 것조차 마냥 피곤하고 한 걸음은 천근만근이다. 낮은 고도로 가야 낫는 병인데, 그러려면 이 사막을 통과해야만 하니 그냥 버티고 또 버티는 수밖에. '우유니'라는 세 글자를 꿈처럼 품고 온 여행자들이 비좁은 차에 갇혀 만난 현실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소금사막 우유니로 가는 여행은 대부분 우연히 본 사진 한 장이 일으킨 호기심 때문이다. 옛날 옛적 바다 아래 있던 땅이 높이 솟아올라 안데스산맥이 되었고, 바닷물은 따가운 고원의 햇살에 말라 버렸다. 적게는 1m 많게는 120m 두께로 쌓인 소금양만 해도 100억 톤, 어디를 봐도 하얀 소금인 사막은 속세 인간의 눈으로 보기엔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스튜디오다.
바싹 마른 건기에는 태양보다 눈부시게 빛나는 소금이 하얀 지평선을 만들고, 우기에는 투명한 거울처럼 고인 빗물 위로 또 하나의 하늘이 포개어진다. 멀고 가까운 거리감각이 사라져 버리는 우유니 사막만의 특별한 순간. 천국의 풍경이 이런 걸까, 온통 순백으로 가득한 시공간에서 그저 작고 검은 점이 된 인간은 크나큰 자연과 기나긴 시간 앞에서 숙연해진다.
허나 세상에 없는 풍경을 만난다는 건 세상에 흔히 있는 무언가를 포기하는 거라는, 그 단순한 진리를 미처 알지 못했다. 소금사막에 물이 있을 리 없다. 일년에 3개월 정도 비가 내리긴 하지만 땅에 닿으면 짜디짠 물로 변하는 곳이니 물이 귀할 수밖에. 황량한 고원에 얼기설기 지은 숙소에는 찬바람이 숭숭 스며들었고, 찝찔한 소금기를 씻어낼 샤워는 고사하고 양치할 물조차 호사였다. 늘 물이 끊겨 있는 화장실 사용은 내 용변으로 남의 용변을 밀어내야 하는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물기가 남은 물티슈 한 장이 한없이 귀하게 느껴지던 날이었다.
물이 없는 이틀 밤을 보낸 후 사막 끝과 닿은 마을에 도착하니 졸졸 물이 나왔다. 온수는 별도 요금을 내야 하고 그것마저 아침 저녁 한두 시간이었지만, 고마웠다. 안개비처럼 희미하게 흩뿌려지는 샤워기에도 엄지가 척. 사람이 씻는데 그리 많은 물이 필요하지 않단 것도 알게 됐다.
오는 3월 22일은 '세계 물의 날', 흔하게 있을 때는 미처 깨닫지 못하는 물의 소중함을 알리는 날이다. 코앞에 닥치지 않고는 실행에 옮기지를 못하는 우리 인간에게 마지막으로 보내는 경고장인 셈이다. 하루하루 살기도 빠듯한 우리들은 어제의 교훈은 쉽게 잊어버리고 다가올 위험은 애써 무시하곤 한다. 그래도 우유니 사막에서 보낸 물이 고팠던 삼일 덕분에, 물이 없는 세상에 대한 경고가 한 뼘은 더 실감이 났다. 내 일상과는 전혀 다른 가정을 해볼 수 있는 기회, 당연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당혹스러운 경험, 이것이야말로 여행이 주는 깨달음의 선물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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