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여자친구가 납치됐다... 예측 불가 스릴러

입력
2022.03.19 10:00
19면

<79> 디즈니플러스 '빅 스카이''

편집자주

극장 대신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작품을 김봉석 문화평론가와 윤이나 작가가 번갈아가며 소개합니다. 매주 토요일 <한국일보>에 연재됩니다.


디즈니플러스에서 볼 수 있는 '빅 스카이'는 사설탐정인 제니와 캐시가 트럭 운전사에게 납치된 자매를 찾아 나서는 범죄물이다.

디즈니플러스에서 볼 수 있는 '빅 스카이'는 사설탐정인 제니와 캐시가 트럭 운전사에게 납치된 자매를 찾아 나서는 범죄물이다.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바이킹스'는 바이킹의 영웅 라그나 로스브로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역사극이다. 전설과 역사 사이에 존재했던 라그나를, 8세기 말 처음으로 영국 북부를 공격한 바이킹의 지도자로 설정했다. 수평선 너머는 거대한 낭떠러지라는 전설을 물리치고 바다를 건너 신세계로 가자고 주장했던 라그나는 이후 바이킹의 왕으로 추대받는다. 잔인하고 폭력적인 약탈자 바이킹은 다신을 섬기며 여성들도 전사로서 함께 싸웠던 자유분방한 민족이다.

내가 '바이킹스'에 열광했던 이유는, 라그나로 대표되는 바이킹의 자유로움과 강인함이었다. 그런데 호쾌하고 정열적인 '바이킹스'에서 가장 좋아한 캐릭터는 라그나가 아니라, 라그나의 부인이자 여전사인 라게타였다. 보통의 남자들보다도 잘 싸우는 라게타는, 라그나가 새로운 부인을 맞아들이자 고향을 떠났다가 인고의 시간을 보낸 후 돌아와 새로운 왕이 되었다. 자신의 운명을 남자에게 맡기지 않고 스스로 개척하며 높이 날아오른 여성이었다. '바이킹스'를 보며 라게타를 연기한 캐서린 윈닉의 매력에 푹 빠졌다.

캐서린 윈닉이 출연한 '빅 스카이'가 디즈니플러스에 올라왔으니 놓칠 수 없었다. 그런데 작품 설명이라고는 기껏 '두 사설탐정이 시간 싸움을 벌인다'는 것뿐이다. 사설탐정이 나오니 범죄물인 것 같지만 내용을 짐작할 수 없다. 사전 정보를 얻지 못하고 일단 보기 시작했다. 1화가 시작하자마자 두 여성이 치고받는다. 전직 FBI였던 제니 호이트는 남편이 캐시 드웰과 동침했다고 비난한다. 캐시는 제니의 남편과 함께 탐정사무소를 운영하는 동업자다. 호이트 부부는 별거 중이었고, 캐시는 그들의 사이가 완전히 끝난 것으로 알았다고 변명한다. 결국은 우유부단한 남편 때문에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둘 다 말로만 끝나는 성격이 아니라 결국은 상처를 남기는 육탄전을 하게 된다.


제니의 아들인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던 다니엘과 그의 동생 그레이스는 운전 중 시비가 붙었던 트럭 운전사에게 납치된다. ABC 제공

제니의 아들인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던 다니엘과 그의 동생 그레이스는 운전 중 시비가 붙었던 트럭 운전사에게 납치된다. ABC 제공

한편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에 탄 젊은 여성 둘이 있다. 남자친구를 만나러 몬태나로 가는 다니엘과 그레이스 설리번 자매. 예쁘지만 성격 급하고 자존심이 센 언니 다니엘과 영리하고 차분한 동생 그레이스다. 거대한 트럭을 추월하다가 시비가 붙은 다니엘은 트럭 운전사에게 소리를 지르며 욕을 하고 속도를 내 오르막길을 내달린다. 다니엘은 트럭을 따돌렸다고 생각했지만, 트럭 운전사인 로널드 퍼그먼은 악착같이 그들의 뒤를 쫓았다. 그리고 차에 이상이 생겨 멈춘 다니엘과 그레이스를 납치한다.

'빅 스카이'는 미국 북서부에 있는 몬태나주의 옐로스톤국립공원 인근의 지역을 말한다. 제니와 캐시가 사는 곳이다. '빅 스카이'의 풍경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그들과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자연이 아무리 황홀해도, 인간이 모여 살면 범죄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로널드는 다니엘과 그레이스만을 납치한 것이 아니었다. 아니 그들을 납치하는 것은 목적에서 완전히 어긋난 일이었다. 로널드는 트럭 휴게소에서 몸을 파는 여자를 유인하여 납치하고 캐나다의 폭력조직에 넘기고 있었다. 주 경찰인 릭 레가르스키가 모든 것을 명령하는 보스이고, 로널드는 하수인이다.


트럭 운전사 로널드는 주 경찰 릭의 명령을 받아 성매매 여성을 유인·납치해 캐나다 폭력조직에 넘기고 있다. ABC 제공

트럭 운전사 로널드는 주 경찰 릭의 명령을 받아 성매매 여성을 유인·납치해 캐나다 폭력조직에 넘기고 있다. ABC 제공

'빅 스카이'는 '앨리 맥빌', '더 프랙티스', '보스톤 리걸', '빅 리틀 라이즈', '미스터 메르세데스', '언두잉' 등을 만든 데이비드 E. 켈리가 제작했다. 데이비드 E. 켈리를 처음 크리에이터로서 기억한 작품은 '앨리 맥빌(1997)'이었다. 보스턴의 로펌을 배경으로 앨리 맥빌을 포함한 변호사들의 다사다난한 사건들이 펼쳐진다. 국내 방영 제목인 '앨리의 사랑 만들기'는 앨리의 연애와 그가 만나는 남자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에서 나름 합당했다. 5시즌까지 이어진 '앨리 맥빌'은 모든 캐릭터의 개성이 돋보이고, 각각의 사건과 스토리가 충실했다. 앨리를 스쳐가는 남자들의 우여곡절까지도 모두 흥미로웠다. '앨리 맥빌'의 캐릭터들은 스쳐가는 작은 역까지도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데이비드 E. 켈리가 제작한 작품의 매력은 무엇보다 캐릭터였다.

C. J. 박스가 쓴 여성 탐정 '캐시 드웰' 시리즈를 각색한 '빅 스카이'의 캐릭터들도 인상적이다. 시작부터 주인공인 제니와 캐시가 싸우지만, 사건이 생기면서 화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다니엘은 제니의 아들을 만나러 오는 중이었다. 연락이 끊긴 다니엘과 그레이스 자매를 찾아 나선 제니의 남편조차 사라져 버리자 두 사람은 힘을 합친다. 납치나 유괴는 48시간이 중요하다. 48시간이 지나면 거의 살해되거나 다른 곳으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캐시의 남편은 전쟁에서 죽은 군인이다. 가장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경험했던 캐시는 제니를 위해, 파트너를 위해 함께 그들의 행방을 추적한다.


자매를 찾아 나선 제니의 남편조차 사라지자 제니와 캐시는 힘을 합쳐 이들의 행방을 추적한다. ABC 제공

자매를 찾아 나선 제니의 남편조차 사라지자 제니와 캐시는 힘을 합쳐 이들의 행방을 추적한다. ABC 제공

릭 레고르스키는 로널드를 하수인으로 두고 매춘부를 납치했었다. 사라져도 아무도 찾지 않을 사람들이었다. 정치적 이유도 있다. 백인 남성인 릭은 소수자를 혐오한다. 이민자, 동성애자 등등을 내치는 것이 미국에 도움이 되며, 자신은 애국자라고 믿는다. 거대한 몸집을 가진 자신을 항상 남들이 우러러봤고, 지금도 자신은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내는 릭을 지긋지긋해하고 있다.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생각이 뒤틀린 릭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로널드는 마흔이 되어서도 강압적인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로널드는 순간의 감정을 참지 못해 위기를 몰고 왔다. 릭과 로널드는 동전의 양면이다.

'빅 스카이'는 제니와 캐시, 릭과 로널드의 행적을 쫓아가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 처음 보여주는 그들의 첫인상은 계속해서 변하고 발전한다. 일관성이 없는 것이 아니다. 기본적인 성격은 같지만, 변하는 상황에 따라서 그리고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면서 달라진다. 제니는 여전히 남편을 사랑하고, 사라진 그를 찾기 위해 필사적이다. 캐시는 제니의 남편과 있었던 추억을 잊지 못하지만, 지금은 제니와 함께 역경을 뚫고 나가야만 한다. 릭과 로널드의 변화는 더욱 눈부시다. 특히 찌질한 하수인에서 능동적이며 잔혹한 살인자로 변하는 로널드를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빅 스카이'는 개성있는 캐릭터와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들이 매력적인 스릴러다. ABC 제공

'빅 스카이'는 개성있는 캐릭터와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들이 매력적인 스릴러다. ABC 제공

로널드는 휴게소에서 제리를 납치했다. 제리는 트랜스젠더다. 어릴 때부터 자신이 소수자라는 것을 알았고, 잡힌 후에도 무기력했던 제리는 설리번 자매와 함께 저항하고 맞서 싸우면서 강해진다. 그레이스는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노력한다. 그리고 기회가 있다면 과감하게 실행한다. 다니엘은 그레이스를 보면서 감화되고, 성장하고, 결국 이겨낸다. '빅 스카이'는 작은 조연까지도 모두 매력적이다.

몬태나의 광활한 자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빅 스카이'는 도시에서 벌어지는 범죄물과는 다른 재미를 준다. 그리고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다른 사건들로 확장된다. '빅 스카이'는 개성적인 캐릭터들이 있고,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들이 매력적인 스릴러다. 결말을 예측하기 힘든.

김봉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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