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성을 드러낼 때 우리는 비로소 나다워진다

입력
2022.03.17 14:00
<3> '수치심 워크숍' 체험기

편집자주

내 마음을 돌보는 것은 현대인의 숙제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이후엔 우울증세를 보인 한국인이 36.8%에 달하는 등 '코로나 블루'까지 더해졌죠. 마찬가지로 우울에피소드를 안고 살아가는 보통 사람, 기자가 살핀 마음 돌봄 이야기를 전합니다. 연재 구독, 혹은 기자 구독을 누르시면 취재, 체험, 르포, 인터뷰를 빠짐없이 보실 수 있습니다.

수치심 워크숍 1기 홍보 포스터 속 워크숍 주최자인 정성은 PD와 에세이스트 사월날씨의 모습. 정성은씨 제공

얼굴이 붉어지고 식은땀이 났다. 민망해서 헛웃음만 나오고 눈치를 살폈다. 쥐구멍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인턴기자 시절, 취재하던 중 한 시민에게 뭔가를 물어본 뒤였다. 그 시민은 "기자라는 사람이 그것도 몰라요?"라며 웃었다. 5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의도가 뭔지 모르겠다. 다만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그날 나의 존재 전체가 부정당하기라도 한듯 너무나 숨고 싶었다는 사실.

수치스러운 경험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지난 1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둘러보던 중 눈에 띄는 게시글을 우연히 발견했다. '수치심 워크숍' 홍보 게시글이었다. 화려하다 못해 다소 어지러운 포스터 속에서 이 워크숍의 주최자 중 한 명인 정성은 콘텐츠제작사 '비디오편의점' PD가 손으로 하트를 날리고 있었다. 보는 사람이 괜히 민망한, 포스터 속 정 PD는 "부끄러워 하지 말고 함께해요"라는 말을 건네고 있는 것 같았다.

참고: 해당 기사는 주최 측과 참가자들의 양해를 구해 발언한 사람이 특정되지 않는 선에서 작성됐다.

① 취약성 드러내기…"무엇이 두려운가"

수치심 워크숍 커리큘럼. 정성은씨 제공

첫 회차의 테마는 '취약성 드러내기'였다. 현대 대중 심리의 권위자로 꼽히는 미국의 심리학자 브레네 브라운은 수치심에 대해 "내게 결점이 있어서 사람들에게 거부당하고 소속될 가치가 없다고 믿는 극도로 고통스러운 느낌이나 경험"이라고 정의했다.

처음 발제를 맡은 에세이스트 사월날씨(필명·심리학 석사)는 "우리에게 수치심을 촉발하는 요인은 무궁무진하다"며 "성취, 관계, 역할, 자아상, 나이, 종교 등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후 한 명씩 돌아가면서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참여자들이 갖고 있는 두려움은 제각각이었다. A씨는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데 나만의 루틴에 대한 것이 눈치가 보인다"며 "나를 백수라고 생각할까봐 옆집에서 소리가 나면 안 나가게 된다"고 고백했다. 또 다른 참여자는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상대를 이상화하고 나를 못난 존재로 생각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기자는 '기자답지 못한' 스스로의 모습에 대해 말하게 됐다. 직업· 외모· 경제력 등 외적인 요소에 대해서는 자신감 있는 반면, 내면에 대해서는 당당하지 못하다는 얘기다. 기자가 원하는 정체성은 '똑부러지고 독하고 깡 있는 모습'이지만 실제로는 긴장을 잘하고 마음이 약한 편이다. 이런 모습을 남들에게 들킬 때마다 수치심을 느낀다.

우리는 모두 사회에서 주입받은 메시지가 있다. 우리의 수치심은 이런 메시지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가령 B씨는 "직무 특성상 프로젝트 회의 분위기가 매우 험악하고 차가운데, 매번 주어진 질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사람이 될 때마다 창피하다"며 "이후 질문이 들어올 때마다 겨드랑이와 손바닥에 땀이 나고 볼이 뜨거워진다"고 했다. B씨의 경우 'N년 차 직장인은 똑부러지게 대답을 잘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안고 있는 것이다.

이날의 과제는 '함께 나눈 두려움을 SNS에 게시하거나 주변인에게 말하기'였다. 기자는 차마 게시글로 올릴 수는 없어서 24시간 만에 삭제되는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렸다. 누군가 읽었다는 표시가 뜰 때마다 민망함을 참을 수 없어서 그날 밤을 거의 지새웠다. 하지만 "뭐 어때"라는 생각에 나름대로 속이 시원하기도 했다.

② 두려움 해체…나만의 고정관념은

미국의 심리학자인 브레네 브라운은 수치심에 대해 "내게 결점이 있어서 사람들에게 거부당하고 소속될 가치가 없다고 믿는 극도로 고통스러운 느낌이나 경험"이라고 정의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두 번째 회차의 테마는 '두려움 해체하기'. 우리가 갖고 있는 두려움의 맥락을 파악하는 작업이다. 예를 들어 우리의 두려움은 양육 환경에서 생겼을 수도 있고, 성장 과정 중, 혹은 사회문화적 기대에 맞춰서 만들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기자의 경우 양육 환경상 '(나 스스로)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을 받아왔다. 또 사회문화적으로 '기자면 강해야 한다'는 선입견을 받아왔다. 이 때문에 "나는 강해야 하고 두려움을 느끼거나 들켜선 안 된다"는 두려움을 가져왔다. 이 외에도 아무 대응 못 하고 또 기가 죽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이는 영유아 시절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워낙 자기 주장이 강해서 매번 나를 주장하지 못했던 성장 과정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성소수자 D씨는 "평생 좋은 파트너를 찾지 못하고 계속 이렇게 외로운 상태가 지속될 것 같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그는 양육 환경에서 늘 엄마의 사랑을 갈구해왔다고 한다. 그는 "하지만 장녀에 대한 부모님의 기대에 부합해야 한다는 생각에 나의 고민과 정체성을 부정하는 기간이 길었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후 참가자들은 3줄 노트 쓰기 작업을 진행했다. 1단계는 '관찰'. 우선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적는다. 이 중 사실과 환상을 구분, 환상(감정)을 깊이 파고든다. 환상에 대해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어째서 그렇게 느껴지는데?'라는 질문을 통해, 나만이 갖고 있는 고정관념을 깨닫는 것이다.

직장 내 발표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는 D씨는 "준비를 안 해도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하는 사람이 부럽다"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멍청하게 보이는 게 싫다"고 했다. 그가 갖고 있는 고정관념은 "사람들은 멍청한 사람을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2단계는 현재의 고정관념을 어떻게 할지 선택하는 단계다. 여기서 D씨는 "사실은 내가 다른 사람들을 멍청함이라는 잣대로 평가하고 있어서 그렇게 보이는 것에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이후 D씨는 "타인을 멍청함으로 판단하지 말고 그저 내용을 잘 전달하는 연습에 충실해야겠다"고 결심했다.

③ 두려움을 용기로…자기 효능감 세우기

우리의 존재 가치는 능력이나 쓸모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낼 때 빛난다. 게티이미지뱅크

3회 차에는 '용기 기르기' 연습을 했다. 사전적 의미의 용기란 씩씩하고 굳센 기운을 뜻한다. 하지만 참가자들에게 용기의 정의는 모두 달랐다. 혹자는 "솔직함"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상대의 기분과 분위기에 주눅들지 않고 할 말을 당당히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이는 "도망치지 않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후 두려움을 용기로 바꾼 경험을 나누며 자기 효능감을 느꼈다. '운전해보기', '옆 테이블이 먹다 남긴 굴튀김을 달라고 하기'처럼 일상의 사소한 경험들도 우리의 용기를 채워줄 수 있는 경험임을 알게 됐다.

또 애니메이션 영화 '엔칸토'를 인용해 "우리의 존재 가치는 능력이나 쓸모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낼 때 빛난다"는 얘기를 나눴다. 엔칸토 속 주인공의 언니 이사벨라는 이렇게 노래한다. "매순간의 감정을 피워냈으면 어땠을까/완벽할 필요 없단 걸 알았다면 어땠을까/있는 그대로 내 마음대로."

이후 참가자들은 '나의 두려움과 맞닿은 혐오'에 대해 나눴다. 발제를 맡은 사월날씨에 따르면, 혐오란 "난 저 사람과 다르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감정인데, 그 감정 속에서 나의 두려움을 발견할 수 있었다. 기자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을 최대한 피하려 하고 두려워 한다. 그 속에는 '사실은 나도 자존감이 낮다'는 생각과 '나도 심리적 약자에게는 막 대한다'는 사실이 깔려 있었다.

가부장적인 집안 분위기에서 자란 B씨의 경우 "엄마가 아빠와 싸울 때 대항하지 못하고 말과 눈물을 삼키는 모습이 싫다"고 털어놨다. "나도 남의 기분을 살피느라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는 모습이 겹쳐보여서 그렇다는 얘기"다.

④ 취약성 드러내며 '진정한 나'로 거듭

수치심 워크숍 4회 차인 2월 5일 참여자들이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주최자인 에세이스트 사월날씨와 정성은 PD, 그리고 기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모자이크 처리를 했다. 손성원 기자

마지막 회차에서는 '나로 행동하기' 작업을 진행했다. 우선 '이 세상에 어떻게 소속될 것인가'를 나눴다. "진정한 소속감은 불완전한 진짜 자신을 세상에 드러낼 때만 생긴다"고 사월날씨는 소개했다. 이와 관련, 미국의 시인 마야 안젤루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고 깨달을 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며 "그럴 때 어디에나 속한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수치심 워크숍에서 웬 소속감 얘기냐고? 수치심은 사실 나에 대한 어떤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면 나와 관계 맺을 가치가 없다고 느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취약성을 드러내고 불편함을 느끼며, 진정한 자기 자신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사람들과 함께 있는 법을 배워야 진정한 소속감을 얻을 수 있다."

브레네 브라운의 책 '진정한 나로 살아갈 용기' 발췌

참가자들은 4주 동안 끊임없이 자신의 창피한 부분을 드러내며 스스로에 대해 더 알아갔다. B씨는 "가부장적 문화 등 내가 갖고 있던 두려움의 뿌리가 나에게만 일어나는 특별한 불행이 아니라 세상에 아주 흔하게 일어나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정 PD는 "어떤 감정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풀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얻었다"며 "나를 허용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털어놨다.

수치심 워크숍은 단순히 스스로를 더 잘 알아가고 수용하는 훈련을 한 데서 끝나지 않았다. 부끄러운 부분을 나누면서 서로를 더 이해하고 더 포용해줄 수 있는 마음의 담대함도 생겼다.

한 참가자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취약성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점점 더 무해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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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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