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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짜리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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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로또 1등 90억 원 당첨자가 나왔다. 이 사람은 지난달 1,003회 로또 복권에서 1등 번호만 5게임 연속 찍었다.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순 없지만 그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렸다는 거래내역 확인증에 따르면, 그는 지난 2월 21일 오전 9시쯤 서울 농협은행을 찾아 당첨금 61억 원(세금 제외)을 수령했다.
여러 가지 말들이 나왔다. 이 사람의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6개 번호를 꿈에서 찍어줬다느니, 로또 번호 제공 사이트에서 받은 번호라느니. 하지만 무엇보다 귀를 사로잡은 말은 그가 '20대'란 것이었다. 대학생이나 취업준비생, 기껏해야 사회 초년생이 61억 원의 주인공이란다. 떠도는 말이 전부 사실이라면, 운 하나는 억세게 좋은 청년임이 틀림없다.
하필 그가 당첨금을 수령했다는 2월 21일, 한쪽에선 '청년의 난(亂)'이 일어났다. 정부가 청년들의 자산 증식을 돕겠다며 내놓은 '청년희망적금'의 판매 첫날이었다. 만 19~34세 청년들이 이 적금에 가입하겠다며 몰리면서 주요 시중은행들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은 먹통이 됐다. 정부 지원금 등을 더해 최고 연 10% 이자(만기 2년)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입소문을 타고 출시 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더니, 판매 첫날부터 가입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요새 보기 드문 고금리 상품에 '가입 대란'은 예상된 수순이었다. 지난 4일까지 2주간 몰린 가입자 수만 290만 명에 달했다. 최근 2년 사이 주식과 코인에 불나방처럼 뛰어들었다가, 시퍼런 마이너스 수익률을 떠안은 적지 않은 청년들에게, 이 적금은 이름 그대로 작은 '희망'으로 다가왔을 수 있다.
38만 명 정도가 가입할 것으로 내다봤던 정부의 엉터리 수요 예측과 가입 자격 논란 등 잡음도 있었다. 하지만 종잣돈을 차곡차곡 불려 나가는 안전한 재테크로 눈을 돌리는 청년이 많아졌다는 건 분명했다. '한 방 투자는 패가망신의 지름길'이요, '원금 보장만이 살길'임을 뼈저리게 느낀 반성문이 많아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공약으로 내건 '청년도약계좌' 역시 현실화할 경우 가입 폭주가 예상된다. 만 19~34세 청년이 매달 70만 원 한도 내에서 적금을 부으면, 정부가 소득에 따라 최대 40만 원씩 추가 지원해 10년 만기로 1억 원을 만들어 준단다. 앞선 청년희망적금과 연령 조건은 같지만, 소득 제한을 없애 지원 대상은 훨씬 넓어졌다.
10년 만기가 너무 길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소요 예산이 수십조 원에 달할 것이란 예산 우려도 잇따른다. 취업을 못 한 청년들은 배제돼 불평등하단 지적도 있다. 윤석열 정부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보완해야 할 대목이다. 청년들의 근로 의욕을 높이고 자산을 안정적으로 불리도록 돕겠다는 의도가 적중하려면 말이다.
동네 복권방은 금요일 퇴근 시간만 되면 장사진을 이룬다. 대충 봐도 줄 선 사람 절반 이상은 20, 30대 젊은 사람들이다. 줄까지 설 일인가 싶으면서도 꾸역꾸역 줄 서서 로또를 사 본 기억, 당연히 나도 있다. "자동 5,000원이요" 하고 받아 든 복권 한 장에 하루짜리 희망을 건 청년들이 주위엔 너무도 많다. 10년에 1억 원 만들기는 희망을 넘어 진짜 청년 도약으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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