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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설한 갑질고객 신고했다고 "다른 매장 가서 일하세요" [그래도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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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쟁이의 삶은 그저 '존버'만이 답일까요? 애환을 털어놓을 곳도, 뾰족한 해결책도 없는 막막함을 <한국일보>가 함께 위로해 드립니다. '그래도 출근'은 어쩌면 나와 똑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노동자에게 건네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담습니다.
"아, 이 인간이 욕 나오게 하네. 여기 점장 누구야. 당장 나오라고 해."
청소기 제품의 가격을 묻던 60대 남성 고객이 갑자기 언성을 높였습니다. 자신이 알아보고 온 것보다 가격이 높다는 이유였습니다. 제가 사기를 치려 한다며 자신이 만만해 보이냐고 따지더군요. 오해하지 마시라고, 화를 가라앉히시라고 정중히 말씀드렸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급기야 차마 글로 옮길 수 없는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위협을 느낀 저는 증거를 남겨야겠다 싶어 휴대폰을 꺼내 녹음을 하고 경찰에 신고도 했습니다. 경찰이 출동해도 고객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해서 항의를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업무 매뉴얼에 따라 정해진 가격을 얘기한 것뿐인데도 말이죠.
저는 대기업이 운영하는 가전양판점인 H마트의 부산지점에서 판매직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정규직은 아니고 마트에 판매직원을 공급하는 하청업체 소속입니다. 2년 정도 이 일을 하면서 별의별 고객을 접했지만 한 번도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만은 그냥 넘기기 힘들더군요. 현장에 있던 동료 직원과 고객들도 이 광경을 목격했고, 말로 표현하기 힘든 모멸감과 자괴감이 밀려왔습니다. 사건 다음 날 바로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습니다. 그러자 고객은 2차 가해를 하려 했습니다. 매장에 전화를 해 따지러 오겠다고 협박하고 본사에 직접 전화를 걸어 고객을 고소한 직원이 있다고 항의까지 했다고 합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회사(원청) 측의 대응이었습니다. 고객을 고소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지점장은 자신이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며 화를 냈습니다. 경찰에 제출하기 위해 폐쇄회로(CC)TV 영상을 확보해 달라고 요청했더니 개인정보보호법 핑계를 대며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사건 발생 한 달이 지난 시점에 H마트의 다른 지점으로 가서 일하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매장 직원을 줄이기 위한 결정이라 했지만 흔히 있는 일이 아니어서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동을 앞두고 해당 지점의 지점장이 저를 받지 않겠다고 거부 의사를 밝혀왔습니다. 고객을 고소한 '문제 직원'이라는 이유였습니다. 제가 속한 하청업체는 대신 다른 대기업이 운영하는 가전양판점 매장으로 배치해주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후 그곳조차 저를 받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동료들은 이미 업계에 소문이 나버린 것 같다고 하더군요. 결국 집에서 1시간 이상 거리에 있는 다른 대형마트 지점에서 일하게 됐는데, 고정적인 업무가 있는 게 아니고 2주 후에는 다른 매장으로 지원 가게 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사실 가장 울화가 치미는 대목은 따로 있습니다. 만약 제가 하청업체 직원이 아니라 H마트 정규직원이었다면 어땠을까요. H마트의 직원들은 절반만 정규직이고 나머지는 모두 저와 같은 하청업체 소속입니다. 평소엔 정규직원과 다를 바 없이 고객을 상대하지만, 막상 업무를 하다 곤경에 처하자 원청인 회사는 지원은커녕 자신들과 상관없는 일인 양 발을 빼더니 아예 업계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하려는 시도까지 하고 있습니다.
경찰에선 모욕죄 혐의에 대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를 한 상태인데, 검찰이 기소를 해서 유죄가 인정돼도 그 고객에겐 많아야 벌금 200만 원 정도가 내려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잘못한 사람을 처벌해달라 요구한 게 전부인 저는 도리어 문제 직원으로 찍혀 매장을 옮기는 것은 물론이고 전혀 다른 업무를 맡게 된 겁니다. 적응이 쉽지 않고 심리적으로 지쳐서 퇴사까지 고려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대로 당할 수밖에 없는 건가요.
(A씨·남성)
고객에게 갑질을 당한 것도 화가 나는데 회사로부터 불이익까지 받고 있는 상황이 너무 화가 나고 답답할 것 같습니다. 법적 부문을 중심으로 어떻게 대응을 할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A씨와 같은 감정노동자는 고객으로부터 욕설 등을 들었을 경우 H마트에 적절한 조치를 요구할 수 있고, 사용자는 이를 따라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제41조 2항에 따르면 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해 고객응대근로자에게 건강장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현저한 우려가 있는 경우 사업주는 △업무의 일시적 중단 또는 전환 △휴게시간 연장 △폭언 등으로 인한 건강장해 관련 치료 및 상담 지원 △고소 고발 또는 손해배상 청구 등에 대한 지원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이러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사용자는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담해야 합니다. 이는 파견근로자와 파견사업주(하청업체), 사용사업주(H마트) 간의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A씨의 경우 H마트에 파견되어 근무하던 도중 고객에게 욕설을 들었기 때문에 산안법에 따라 H마트 측에 적절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CCTV 영상 확보 역시 회사가 지원해야 할 조치 중 하나입니다. 이를 위반한 사실만으로도 과태료 처분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단순히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을 넘어 피해 직원에게 오히려 불이익을 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산안법은 적절한 조치를 요구하는 근로자에게 불이익한 처우를 한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행정처분을 넘어 형사처벌까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A씨 사례는 두 가지 쟁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선 ‘고객 등 제3자의 폭언 등으로 근로자에게 건강장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현저한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해당하는지를 따져봐야 합니다. A씨의 경우 △산안법의 해당 조항이 감정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항인 점 △건강장해가 발생할 현저한 우려가 있는 경우를 엄격하고 제한적으로 해석할 경우 근로자에 대한 보호 및 지원 조치가 소극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점 △경찰에서 모욕죄로 판단하여 이를 검찰에 송치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폭언이나 욕설이 명확하고 상당한 수위가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건강장해가 발생할 현저한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단됩니다.
H마트가 불리한 처우를 한 것이 ‘사업주가 근로자의 요구를 이유로 해고 또는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한 경우’에 해당하는지 여부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A씨가 ➀H마트에 ‘폭언을 한 고객을 고소하려고 하니 지원을 해달라’고 요구를 했는데 ➁H마트가 이를 거부했고 ➂직접 고소를 하니 더 이상 H마트에서 근무시키지 않겠다고 한 상황이라면 산안법 위반이 명백합니다. 하지만 H마트에 이 사실을 알리지 않고 곧바로 고객을 고소했다면 H마트가 A씨의 요구를 거부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H마트에 현재 진행 중인 고소를 지원해줄 것을 공식 요청하고, 매장에서의 업무를 배제한 사유가 무엇인지 해명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H마트가 관련 자료도 제공하지 않고, 매장으로 복귀시키지도 않는다면 산안법 위반으로 노동청 진정 또는 고소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절차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내용증명이나 이메일 발송, 전화 통화 녹취 등의 형태로 반드시 자료를 남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과정에서 원청의 압박으로 하청업체 관리자 등이 부당한 지시를 할 수도 있는데, 이 또한 위법한 행위이기 때문에 녹취 등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부디 잘 해결되길 기원하겠습니다.
※회사 생활을 하며 말 못 할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해결책이 궁금하시다면 누구라도 제보를 해주세요. 이메일(119@hankookilbo.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되신 분의 사연과 상담 내용은 한국일보에 소개됩니다.
직장갑질119 김훈녕 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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