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남 전리품 된 여가부 폐지 공약...성평등 정책은 무력화 위기"

입력
2022.03.16 17:00

편집자주

이왕구 논설위원이 노동ㆍ건강ㆍ복지ㆍ교육 등 주요한 사회 이슈의 이면을 심도 있게 취재해 그 쟁점을 분석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코너입니다. 주요 이슈의 주인공과 관련 인물로부터 취재한 이슈에 얽힌 뒷이야기도 소개합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으로 존폐 위기에 놓인 정부서울청사의 여성가족부. 홍인기 기자

‘여성가족부는 남녀 논란만 야기시키며 국민혈세만 낭비할 뿐이다.’(2018년 9월), ‘과도한 여성인권 정책으로 남성과 여성 간의 갈등만 심화되고 여성우월주의가 실현되고 있다.’(2020년 10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여가부 폐지를 요구하는 청원이 1,500건 이상 검색된다. 여가부보다 훨씬 규모가 큰 다른 부처의 폐지청원이 기껏해야 100~200건 정도 검색되는 것과 비교하면 여가부에 대한 대중들의 반감은 이례적이다. 여가부 폐지론자들은 현재 여가부가 남녀갈등만 일으키고 제대로 된 양성평등책을 내놓지 못하는 무능한 부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김대중 정부에서 여성부라는 이름으로, 양성평등 실현을 위한 최초의 정부부처로 출범(2001년)한 여가부는 만들어진 지 20년 이상 흘렀지만 자리를 잡기는커녕 선거 때만 되면 존폐 논란에 시달린다. 당장 20대 대선에서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면서 부처의 존속 여부를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지난 13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역사적 소명을 다했다”며 부처 폐지 방침을 재확인했지만 정부조직법 개정의 키를 쥐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여성단체ㆍ시민단체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여가부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정체성 혼란에 정치권 눈치보기로 여가부 폐지론 자초


김대중 정부에서 여성부로 출발해 노무현 정부에서 보육ㆍ가족 업무까지 넘겨받으면서 여가부는 존재감을 키워갔다. 이명박 정부가 처음으로 부처 폐지를 시도했다. 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여가부는 여성권력을 주장하는 사람들만의 부서”라고 주장했고 ‘작은 정부’라는 국정방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여가부 폐지를 추진했다. 당시 여당이던 민주당과 여성단체들의 반발로 가족ㆍ청소년 업무는 보건복지부로 이관하는 것으로 타협했으나 여성정책을 담당하는 여성부는 예산이 20분의 1로 줄고 정원이 40% 축소되는 등 사실상 무력화됐다.

가족업무를 복지부에서 다시 가져와 여가부로 개편됐으나 부처의 정체성은 20년 동안 갈팡질팡했다. 진보정부는 성평등을 강조했고, 보수정부는 저출산 대책의 연장선에서 여성정책을 바라봤기 때문이다. 2017년 대선에 출마한 유승민 당시 바른미래당 후보가 여가부 폐지론을 제기했으나 반짝 관심으로 그쳤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다시 여가부 폐지론은 고개를 든다. 여성학자들은 2016~2018년 진행된 격렬한 미투운동과 2018년 불법촬영범죄 동일처벌을 요구하는 혜화역 집회 등 여성혐오범죄에 분노한 여성들의 목소리가 집단적으로 터져나온 사태를 중요한 계기로 본다. 좁아진 취업문과 여성의 사회적 지위향상에 대한 불안ㆍ박탈감을 느낀 젊은 남성 중심으로 여가부 책임론과 폐지론이 힘을 얻게 된 것. ‘더 이상 여성들이 약자가 아닌데 여가부가 여성편향 정책을 편다’, ‘페미니스트들의 주도하에 남성혐오가 이뤄지고 있으며 이는 여가부라는 괴물 때문에 가능하다’ 같은 일방적 주장들이 이 무렵부터 확산된다.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도지사 등 여당 소속 광역단체장들이 잇따라 권력형 성범죄를 저질렀지만 여가부 장관 출신 여당의원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성 발언을 하는 등 권력형 성범죄를 두둔하면서 이에 실망한 여성들까지 가세, 여가부 폐지론 확산에 방아쇠를 당겼다. 이들의 범죄로 광역단체장 보궐선거가 치러지게 됐지만 이정옥 당시 여가부 장관이 국회에서 “국민 전체가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집단학습을 할 기회”가 된다고 실언하고 이를 권력형 성범죄로 규정하는 데 주저하면서 여론이 크게 악화된다.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이 당시(2020년 12월) 성인 998명을 대상으로 ‘서울ㆍ부산 전 시장의 성범죄 사건에 대한 여가부의 대처’를 놓고 설문조사를 한 결과 ‘(매우) 잘못 대처했다’는 응답이 남성(68.4%)과 여성(66.4%) 모두 3분의 2를 넘었다.

정부 부처가 모든 정치적 사안에 대해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느냐는 반론도 나오지만 여가부의 편향된 정치적 행보가 부정적 여론을 키운 건 사실이다. 이복실 전 여가부 차관은 “정현백 장관의 혜화역 집회 참여, 주장의 사실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윤지오씨에 대한 여가부 차관의 지원 등 부처 책임자들의 신중하지 못한 행보가 여가부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키우는 데 영향을 줬다”며 “지나치게 정치권 눈치를 본 것이 자승자박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여가부는 올해 예산 1조4,650억 원으로 정부 예산의 0.24%, 정원은 270명에 불과한 초미니부처다. 지자체장의 성폭력 사건에 대해 해당 지자체에 시정 ‘권고’밖에 할 수 없는 등 예산ㆍ인원ㆍ권한의 한계도 분명하다. 그렇다 해도 소극적 행보로 부처의 존재감이 희미해지면서 젠더갈등을 악용하려는 정치권의 희생양으로 전락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여가부 장관정책보좌관을 지낸 A씨는 “여가부는 법무부, 경찰, 복지부 등 다른 부처와 협력할 일이 많은데 대체로 여가부 공무원들은 다른 부처와 회의를 해도 수동적ㆍ방어적 스탠스를 취한다”며 “장관이 욕을 먹더라도 책임지고 자기 부처의 정책을 밀어붙이겠다는 태도를 보여주지 않은 결과 존재감 없는 부처로 전락했다”고 쓴소리를 했다.

시각물_여성 가족부 연혁


성평등 정책 유지냐 축소냐…부처 개편 과정서 격렬한 대립 예상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며 윤석열 당선인이 성차별을 개인의 문제로 본다고 거듭 강조하는 만큼, 여가부가 폐지되든 개편되든 혹은 다른 부처와 통폐합이 되든 윤석열 정부에선 여가부의 핵심정책인 성평등정책이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공공기관에 대한 성별영향평가, 성평등지표 개발 등이 대표적인 여가부의 성평등정책이다. 국민의힘은 대선 공약에서 여가부 폐지와 함께 가족을 보호하는 별도 부처를 신설하겠다고 했는데 새 부처는 성평등정책이 크게 축소되고 현재 여가부에서 맡고 있는 청소년, 다문화가정 등에 대한 지원 업무에 주력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만 윤석열 정부가 성평등 정책의 약화를 시도한다면 여성계의 강력한 반발은 불 보듯 뻔한 수순이다. 국회에서도 여가부의 폐지방안이 논의된다면 여성정책ㆍ성평등정책의 존속여부를 놓고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ㆍ정의당 간 대립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여성계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지난 10일 여가부 폐지 공약의 철회를 요구하면서 “차기 정부가 민주주의와 성평등 가치에 기반한 국정철학을 세우고 구조적 차별 해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요구한다”고 밝힌 이유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대부분의 부처들이 남성 중심적 관점에서 정책을 입안하는 상황에서 다른 부처에 젠더평등 관점에서 정책을 펼칠 수 있도록 권고하는 여가부 같은 정부 부처가 존재해야 한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 이름이 무엇으로 바뀌어도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여성계는 여전히 성평등을 위한 우리 정부의 법ㆍ제도 정비가 미흡한 상황이라고 본다. 예컨대 성평등 관점에서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법무부, 교육부,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등 8개 부처에는 양성평등정책담당관이 배치돼 있는데, 정부의 예산과 인사를 좌우하는 힘센 부처인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에는 양성평등정책담당관이 배치돼 있지 않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국민의힘의 여가부 폐지공약은 전형적인 약자 때리기 전략”이라며 “새 정부가 성평등 정책을 약화시키기 위해 여가부를 폐지하고 출산 등을 장려하는 인구가족부처 등으로 전환을 시도할 경우 여성들의 엄청난 반발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여가부 폐지를 둘러싼 정치권의 움직임과 관련해 “국민의힘은 자신들을 지지해준 젊은 남성들에게 ‘전리품’을 안겨주기 위해서라도 여가부 폐지를 밀어붙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직을 폐지할 것인지 개편할 것인지 통폐합할 것인지 등 여가부의 개편 방안에 대해서는 국민의힘 내에서도 갑론을박이 나온다. 하지만 성평등 정책보다는 가족ㆍ인구정책을 집중하는 부처로 만들자는 데는 국민의힘 내부의 입장은 비슷하다. 최근 여가부를 부총리급 부서로 격상시킬 것을 주장해 주목받았던 조은희 의원은 “인구절벽의 문제는 국가존망과 관련된 중대한 사안이므로 특정부처가 담당하기는 쉽지 않다”며 “양성평등, 저출산문제, 아동과 가족문제, 초고령사회 대책 등을 종합적으로 다룰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며 여가부의 발전적 해체와 인구정책 부처로의 전환을 제안했다. 문재인 정부의 성평등 정책을 성별대립을 부추긴 것으로 보는 시각도 유사하다. 박근혜 정부에서 여가부 장관을 지냈던 김희정 전 새누리당 의원은 “새 정부에서는 성별 간 대결구조로 바라보는 현 정부의 정책이 아니라 연령별ㆍ생애주기별로 구체적인 고민을 담아 정책을 펼 수 있도록 여가부를 개편하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성정책, 성평등정책을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산하의 위원회로 이관하고 기존 여가부는 청소년ㆍ가족정책만을 맡거나 다른 부처에 통폐합시키자는 제안도 꾸준히 나온다. 하지만 위원회의 경우 입법권이 없고 예산과 조직이 없는 특성상 유명무실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편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14일 논란이 되고 있는 여가부 폐지공약을 폐기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폐기는 아니고 여러가지 정책적 방향들에 대해 (당선인께) 보고 드리고 그중에서 선택을 하도록 하시는 게 올바르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인수위에서는 무조건적 여가부 폐지가 아닌 여러 대안이 모색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3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여가부 폐지 입장을 다시 밝히고 있다. 뉴스1





이왕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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