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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소수민족 방치’…코로나에 가려진 베트남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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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일간지 최초로 2017년 베트남 상주 특파원을 파견한 <한국일보>가 2020년 2월 부임한 2기 특파원을 통해 두 번째 인사(짜오)를 건넵니다. 베트남 사회 전반을 폭넓게 소개한 3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급변하는 베트남의 오늘을 격주 목요일마다 전달합니다.
A(8)양은 하루라도 빨리 학교로 돌아가기만 기도했다. 지난해 6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베트남 남부 호찌민에 창궐한 이후 친구들을 못 본 지도 벌써 반년이 흘렀다. 단지 놀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재혼을 결심한 부친이 데려온 약혼녀 B(26)씨의 히스테리는 도를 넘은 지 오래였다. 베트남 최대 도시의 고급 아파트 삶을 동경했던 그녀는, 원하던 부의 상징에 입성했으나 도시 봉쇄와 휴교령으로 인한 답답함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온라인 수업 소리가 시끄럽다. 알아서 밥을 챙겨 먹지 않는다. 화풀이 대상이 필요했던 B씨는 A양을 온갖 이유로 괴롭히고 때렸다. 아파트 이웃들과 경비원은 그치지 않는 A양의 울음소리를 들었으나 모른 체했다. "코로나19로 인한 봉쇄로 다들 예민한 시기 아니냐"라는 그저 평범한 이유에서였다. 결국 B씨의 구타로 갈비뼈가 부러진 A양은 지난해 12월 의자에 묶인 채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뒤늦게 여론이 들끓었다. 정부는 허겁지겁 수습에 나섰다. B씨에 대한 중형 선고를 약속하고, 검찰청은 재발 방지를 위한 법 개정 절차에 돌입했다. 다만 대응책 발표 말미에 붙은 설명은 묘한 뒤끝을 남겼다. "전염병이 퍼진 2020년 이후에도 아동에 대한 가정폭력은 연간 평균치인 2,000여 건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B씨의 개인적 일탈일 뿐, 가족을 중시하는 베트남의 풍속은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여전히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취지였다. 과연 그랬을까.
정부의 설명은 사실과 거리가 있었다. 같은 달 공개된, 유엔아동기금(UNICEFㆍ유니세프) 베트남 사무소가 2020년 11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성(省)과 시(市) 63개 지역에서 1만4,000여 가구를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가정폭력 실태는 더욱 심각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유니세프가 베트남에서 진행한 역대 최대 규모의 이번 조사는 교육ㆍ의료ㆍ복지 등 심층 설문 문항만 190개에 이른다.
16일 한국일보가 입수한 유니세프의 '2020-2021 베트남 아동 및 여성 개발 목표 측정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전염병이 확산된 지난 2년 동안 가족으로부터 지속적인 신체적 처벌과 폭력을 겪었다고 답한 14세 이하 베트남 아동은 70.8%에 달했다. 2020년 베트남 통계청 기준으로 14세 이하 베트남 인구는 1,100만 명이 넘는다. 폭력의 수위를 신중하게 해석하더라도, 정부가 밝힌 가정폭력 2,000여 건은 지나치게 낮은 수치다.
아이들을 향한 폭력은 폭언으로 덧칠돼 있었다. 가족에게 구타를 당한 아동의 64%는 언어 폭력으로 인한 공포도 경험했다. 폭력은 가난에 비례했다. 소득 수준이 낮은 남부 메콩 델타 지역에 거주하는 아동(78.5%)은 부유한 북부 홍강 델타의 아동(66.3%)보다 더 많이 맞았다. 응우옌록 호찌민 사회생활연구소장은 "폭력을 이용한 아동 훈육은 여전히 베트남에서 용인되는 관습"이라며 "특히 전염병 창궐로 공동체 의식이 약화된 지역에서 아동폭력에 대한 방치가 갈수록 늘고 있다"고 진단했다.
코로나19는 아이들의 교육 환경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돈이 들지 않는 초등학교의 경우 전염병 기간 중 중퇴한 학생이 전체의 1.2%에 불과했으나, 추가 교육비가 급증하는 11세 이상의 중고교생 중 21.6%는 학교를 그만둔 것으로 나타났다. 베트남 내에서도 가장 가난한 지역으로 불리는 중부 고원지대에선 중고교생의 31%가 학업을 중단했다.
같은 기간, 중부 고원지대의 14세 이하 아동의 노동률(13%)은 홍강 델타 지역(2.9%)의 네 배 이상을 기록했다. 코로나19가 부른 지역 봉쇄령, 이에 따른 성인들의 실직이 아이들을 학교가 아닌 일터로 내몬 것이다. 하지만 베트남 정부 노동부는 이번에도 "놀랄 일이 아니다. (유니세프) 통계는 전체가 아닌 빙산의 일각만 나타낼 뿐"이라고 반박했다.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이 서방의 인권 관련 국제기구인 유니세프를 못 믿는다 하더라도, 자국의 통계 역시 베트남 내 만연한 가정폭력을 증언하고 있다.
베트남 공산당 산하 조직인 여성연합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여성연합이 운영하는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센터 '평화로운 집'을 찾은 베트남 여성의 수는 2018년과 2019년 동기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베트남 정부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캠페인 '가정폭력 예방을 위해 손잡자' 신고 페이지에도 여성 피해자는 몰렸다. 첫 코로나19 봉쇄령이 발동된 2020년 상반기 피해 접수건수가 2019년 전체 접수치를 가뿐히 넘어선 것이다.
여기에 베트남 소수민족의 피폐해진 삶은 정부의 남은 변명마저 궁색하게 만든다. 베트남은 주류인 킨(비엣)족이 전체 인구의 87%, 54개 소수민족이 나머지를 차지하는 구조다. 킨족은 돈이 몰리는 대도시와 농업 지대에, 소수민족은 사파 등 주로 북부 중국 접경지대에서 전통 공예품 판매나 관광 수입에 의존해 살아갔다. 하지만 지난 2년 동안 코로나19로 관광산업은 붕괴됐고, 소수민족은 극빈층으로 전락하고 있다.
중앙 및 지방정부는 사태 해결을 위해 소수민족 지원을 수없이 약속했다. 정체성이 다른 소수민족이 생활고로 사회시스템에서 이탈할 경우, 단순한 빈곤율 상승 문제를 넘어 정치적 긴장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대 175억 달러(21조7,000억여 원)에 달할 것이라던 정부의 코로나19 지원은 끝내 없었다. 유니세프의 조사 결과, 오히려 지난 2년 동안 몽ㆍ크메르 등 5개 대표 소수민족 아동의 46.4%가 기초교육 부재는 물론 감염된 식수에 노출돼 있었다. 그리고 몽족 여성의 36.1%는 여전히 글을 읽지 못했다.
베트남은 인민의 평등, 특히 사회적 약자인 아동과 여성ㆍ소수민족에 대한 배려를 강조해 온 나라다. 무한 경쟁의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기에 할 수 있고, 그렇게 해야 만 베트남 국가 체제의 장점이 발현된다고 믿었다.
실제로 베트남은 사회주의를 유지하는 '4대 가치체계' 중 으뜸으로 '지식과 교육에 대한 열망', 그리고 '가족애'를 꼽는다. 모두 아동의 정상적인 성장이 전제돼야 실현되는 덕목이다. 헌법 9조는 "여성은 모든 면에서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고도 명시하고 있다. 베트남 공산당 역시 5년마다 교체되는 전국 대의원의 10%가량을 소수민족 대표로 채우며 최소한의 '정치적 공평함'을 놓지 않고 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중앙정부는 지난달 "2025년까지 선진국들이 내놓을 공공부문 공적개발원조(ODA)의 60% 이상을 경제 인프라 투자에 집중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나머지 ODA 자금은 63개 지방정부로 잘게 쪼개 지급되며, 복지만을 위한 정부의 예산 증액 소식은 아직 없다.
사회적 약자를 더 잘 보듬겠다는 약속은 물적 자원 투입이 아닌 '가정폭력 예방과 통제에 관한 정책', '산간지역 빈곤 감소 프로그램'으로 간판만 업그레이드됐다. 산간지역 학교 신축, 상수도 공급망 연결 같은 당장 필요한 공공 인프라에 집중적으로 돈을 들이지 않고, 정책과 말로만 변죽을 울린다는 비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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