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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 벽에 '인체해부도'…단순 스토킹범인 줄 알았더니 살인전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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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에게 법정구속을 명한다."
판사 명령이 떨어지자 공소유지를 맡은 대전지검 서산지청(지청장 허정) 백가영 검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피고인 A(61)씨는 2020년 12월 밤중 충남 서산시 길거리에서 면식도 없는 여성을 향해 돌진해 강제추행하려다 피해자가 도망쳐 시민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붙잡혔다. A씨는 출동한 경찰까지 폭행하다가 검거돼 재판에 넘겨졌다.
당초 A씨는 강제추행 미수와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지만, 피해자 상황에 주의를 기울인 젊은 공판검사의 기민한 대처에 이례적으로 법정구속됐다. 최근 이 사연이 알려지면서 검찰 내부에선 백 검사가 '공판검사의 본보기'로 회자되고 있다.
사건 전말은 이렇다. A씨는 지난해 3월 첫 공판기일부터 수차례 재판에 출석하지 않았고, 법정에 서도 재판장 물음에 답하지 않은 채 제자리를 빙빙 돌며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다. 피해자 안전이 걱정돼 연락을 취한 결과, 백 검사는 A씨의 위험한 행적을 알 수 있었다. A씨는 기소된 뒤에도 피해자 뒤를 밟아 자택과 차량 근처에서 지켜보는 등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백 검사는 추가 조사를 통해 A씨가 30여 년 전 동거 여성을 잔혹하게 살해한 사실까지 파악했다.
적극적인 조사로 A씨의 살인 전과를 확인한 백 검사는 '단순 강제추행 미수가 아닌 묻지마 스토킹 범행으로 재범 위험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백 검사는 이에 재판부에 추가 피해 우려를 전달하고, 신속히 기일을 정해 A씨를 구인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재판이 열린 지난해 8월 11일, 날이 밝자마자 A씨가 거주하는 고시원에 들이닥친 검찰 수사관들은 예상치 못한 광경에 숨을 들이켜야 했다. '설마했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 문을 열자 온통 신문지로 도배된 2평 남짓한 방 벽면엔 가로 50㎝ 세로 70㎝ 크기 인체해부도와 테이프로 고정된 식칼이 눈에 들어왔다. 주변 탐문에선 "A씨가 고시원에 불을 지르려 한 적이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정신이상 또는 계획범행이 의심되는 상황이었지만 A씨 행적은 묘연했다.
보고를 받은 백 검사는 다시 구인을 시도해, 이틀 뒤 잠시 주거지를 찾은 A씨를 법정에 세울 수 있었다. 백 검사는 그간 수집한 증거를 현출하며 구속 필요성을 강력히 전달했고, 재판부는 사안의 중대성과 2차 피해 우려를 고려해 그 자리에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피해자는 그제서야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검찰은 이후 A씨에게 징역 2년을 구형, 법원은 올해 1월 A씨에게 징역 10개월을 선고하고 3년간 신상공개·고지명령도 내렸다. 형량이 높지 않았던 이유는 A씨의 범행이 스토킹처벌법 시행 전에 일어난 데다, 결국 강제추행 미수에 그쳤기 때문이다.
백 검사의 노력으로 A씨를 구속시킬 수 있었지만, 피해자 입장에선 벌써부터 10개월 뒤 A씨가 출소하는 게 불안할 수밖에 없다. 검찰 관계자는 "스토킹 범죄는 당장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해도, 예방 차원에서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상황까지 예측해 적극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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