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의 야심찬 출발이 실패하지 않으려면

입력
2022.03.15 00:00
27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9일 워싱턴DC 백악관 경내 사우스 코트 오디토리엄에서 글로벌 정보기술(IT) 업체 및 관계자들과 반도체 공급망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9일 워싱턴DC 백악관 경내 사우스 코트 오디토리엄에서 글로벌 정보기술(IT) 업체 및 관계자들과 반도체 공급망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지속되는 와중에도 바이든 대통령은 엊그제 반도체 공급망에 대한 세 번째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내 첨단 반도체 제조를 지원할 수 있도록 의회가 관련 법안을 신속하게 만들어 백악관으로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상원은 이미 작년 6월 '미국혁신경쟁법'을 통과시켜 하원에 보냈고, 하원은 올해 2월 초 유사한 '미국경쟁법'을 자체적으로 만들어 통과시켰다. 현재 상하원 대표들 간에 양 법안을 검토·조정하는 과정이 진행 중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취임 초부터 반도체, 배터리, 의약품, 희토류 등 전략 물자에 대한 공급망 안정성 확보를 강조하고 미국 내 첨단 제조 역량 강화 필요성과 이를 위한 정부의 대대적 지원을 약속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임 1년을 넘긴 현재까지도 여전히 첨단 반도체 제조 지원을 위한 조치들이 실행되지 못하고 있다.

상·하 양원에서 발의된 법안은 모두 합쳐 5,000 페이지가 넘는다. 양 법안은 의회 내 여러 위원회가 제안한 다수 법안을 모은 패키지법이다. 각 법안은 반도체 첨단 제조시설 지원만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의 구조조정, 전략산업 지원, 대중 무역규제 확대 등 연구개발시스템, 산업, 무역 정책 등을 포괄하다 보니 논쟁의 소지가 있는 부분이 많이 들어 있다. 예컨대 이제까지 주로 기초과학 연구에 집중했던 NSF가 보다 적극적으로 응용연구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중국 기술굴기를 견제하는데 기여토록 해야 한다는 논의가 제기되었다. 상원은 NSF 전체 예산의 40% 이상을 응용기술 연구에 지원할 것을 주장한 반면, 하원은 이를 20% 이하로 제한하는 안을 내놓고 있다. 상대적으로 긴급하고 단순한 반도체지원법이 이렇게 논쟁적인 다른 법들과 같이 묶여 1년이 넘게 의회에 계류되어 있다.

중국의 기술굴기를 견제하고 미국의 첨단 제조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조치들이 취해져야 하고 이를 패키지로 묶어 다루고자 하는 의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중에는 긴급한 사항들도 있는 반면, 상대적으로 장기적 효과들을 검토하면서 서서히 진행시킬 수밖에 없는 것들도 있다. 그런데도 이를 다 한꺼번에 처리하겠다고 하니 법 제정이 계속 지체되면서 시간만 속절없이 흘렀다. 게다가 하반기로 접어들어 중간선거 국면이 시작되면 제안된 내용들을 강하게 추진할 동력이 분산될 가능성이 있다.

우리나라도 대통령선거가 끝나 현재 인수위가 구성되고 있다. 첨단기술을 둘러싼 미중 갈등으로 글로벌 공급망 불안정성이 증대되는 과정에서 안보, 경제, 기술 영역이 교차하는 문제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새 정부는 개별 부처가 감당하기 어려운 경제안보와 과학기술외교 이슈들을 풀어가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구상하고 조직 개편을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든 행정부와 의회가 대중 기술견제와 미국 경쟁력 강화를 한마음으로 지지함에도 불구하고, 실질적 정책들을 만들어 실행하는 데에 시간이 지체되고 있는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새 정부가 한꺼번에 모든 문제를 풀겠다고 야심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긴급하고 실행가능한 것부터 차근차근 풀어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배영자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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