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경제, 좀 알려 주시죠”

입력
2022.03.14 04:30
26면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당선 인사 기자회견을 마친 후 인사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당선 인사 기자회견을 마친 후 인사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경제만 놓고 보면, 5년마다 새 대통령은 미끄럼틀 앞에 선다. 뚝뚝 떨어지는 잠재성장률에 초고속 저출산·고령화는 가만 있어도 경제를 가라앉힌다.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경제 점수는 기본적으로 까먹을 일투성이다. 그래서 대선 후보마다 경제에는 더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다르다. 반드시 도약시키겠다”고. 하지만 제대로 성공한 대통령은 근래 보지 못했다.

막 출발선에 선 윤석열 정부도 같은 처지다. 전임 정부가 예외 없이 실패했다면 조금 다른 접근을 해보는 건 어떤가. 거창한 목표에 앞서, 경제주체의 공감을 얻어낼 방법부터 먼저 고민해 본다면. 내리막 경제를 걱정하며 투표장에서 떠올렸던 유권자의 바람을 다시 적어본다.

우선은 같은 실수 줄이기다. 경제 분야에서 문재인 학습효과는 무엇보다 ‘선의(善意)의 비극’이었다. 문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노동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 임차인 권리 개선, 부동산세금 강화 등 주요 경제정책은 모두 선의에서 출발했다.

약자에 대한 구조적인 차별을 줄여보자는 것. 이는 어느 정부건 지향해야 할 궁극의 목표다. 하지만 현실은 선의대로만 움직여주지 않는다. 선의가 폭력이 돼 약자를 더 고통스럽게 하고, 약자와 약자를 이간질하는 건 잔인한 비극이다.

윤석열 당선인은 선의만 믿지 않았으면 한다. 철석같던 공약이라도 시행하기 전 두 번 세 번 더 따져봐야 하고, 뚝심 못지않게 설득이 중요하다는 걸 문재인 정부는 뼈저리게 알려줬다. 이를 챙기지 못한 ‘무능’을 공격해 당선됐다면, 적어도 그 무능만은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 과감한 포기다. 선거가 거듭될수록 선심성 공약의 부메랑은 커진다. 영남권 신공항이 대표적이다. 노무현 정부부터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쳐 문재인 정부까지 장장 20년 가까이 ‘된다’, ‘안 된다’ 논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 하나의 수렁을 만들지 않으려면 당장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신설 공약부터 재고해 보기 바란다. 공사 과정의 장애와 비용을 소홀히 여기고, 지역 균형발전 목표를 거스르며, 먼 미래의 일을 마치 당장 될 것처럼 포장했다는 비판이 선거 과정 내내 제기됐다. 때론 면밀히 따져보니 안 되겠다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용기를 보고 싶다. 주워 담지 못한 공약보다 손절한 공약이 갈수록 아름다운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좋은 정책은 계승했으면 한다. 정권마다 통일을 위해, 서민을 위해, 기업을 위해 숱한 정책이 명멸했다. 새 정책을 위해 간판을 바꾸고, 조직을 바꾸는 데만도 적잖은 돈이 든다. 결국 비슷한 목적임에도 ‘전 정부 사업’이란 이유만으로 여전히 필요한 정책까지 흐지부지되곤 한다. 까짓 명칭쯤 비슷하면 어떤가. 국민 다수가 수긍하는 정책은 부디 잘 계승하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TV 토론에서 경제 안목을 시험하는 질문에 윤 당선인은 곤욕을 치렀다. 오히려 쿨하게 “잘 모르겠는데, 한번 설명해 주시죠” 하며 맞받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괜한 억지보다, 솔직하게 인정하는 자세가 불확실한 경제 운용에 역설적으로 중요한 덕목이라 믿는다.

부디 많은 이의 우려를 깨고, 내리막 경제를 거슬러 오르길 기대해 본다. “그럴 줄 알았다”며 또 혀를 차기엔, 유권자의 삶에 경제가 너무 중요하다.

김용식 경제산업부장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