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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바람과 뒤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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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면 한반도 동쪽 지역에 강한 바람이 분다. 바람을 세기에 따라 나눈 풍력 계급에 따르면, 연기의 이동으로 겨우 인지되는 ‘실바람’이 계급 1이다. 나뭇잎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남실바람’, 시원한 ‘산들바람’은 각각 풍력 계급 2와 3의 가벼운 바람이다. 선들선들 불어오는 ‘건들바람’은 풍력 계급 4로 종잇조각을 날리고, 계급 5인 ‘흔들바람’은 작은 나무를 흔들고 바다의 물결을 높인다. 풍력 계급 6~8인 ‘된바람’, ‘센바람’, ‘큰바람’은 바람을 안고 걸을 수 없을 정도이다. 굴뚝이 넘어지고 기와가 벗겨진다는 계급 9의 ‘큰센바람’, 나무를 뿌리째 뽑을 정도라는 계급 10의 ‘노대바람’도 무서운데, 산더미 같은 파도를 일으키는 계급 11의 ‘왕바람’과 12의 ‘싹쓸바람’은 인간의 나약함을 깨닫게 할 뿐이다.
과학에서는 바람을 기압의 변화로 설명한다. 그러나 삶에서 체화된 바람은 그저 공기의 움직임이 아니다. ‘바람도 타향 객지에서 맞는 바람이 더 차고 시리다’라고 하니, 바람은 사람의 마음도 조정하는 존재이다. 뱃사람들은 남풍을 ‘앞바람’이라고 부른다. 흔히 ‘남쪽’과 ‘앞’은 한국어에서 긍정적 방향이다. 그러나 물길에 배 띄워 앞으로 나아가려 할 때 앞바람은 얼마나 야속하고 얄미울까? 농부와 나무꾼에게는 앞바람이 이마의 땀을 식혀 주는 고마운 바람일지라도 뱃사람에게는 아닌 것이다. 때를 잘 맞추어 일을 벌여 나가는 것을 ‘바람 따라 돛을 단다’고 한다. 생각해 보니 뱃사람에게 이 바람은 ‘뒤바람’이다. 보통 ‘꽁무니바람’이라고 낮춰지거나 춥고 매서운 ‘삭풍’으로 표현되는 뒤바람이 물결 이는 대로 가야 하는 뱃사공에게는 하늘의 도움인 셈이다.
봄부터 초여름 사이에 영서지방으로 분다는 ‘높새바람’은 태백산맥의 서쪽이 터전인 이들에게는 반갑지 않다. 고온건조하여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바람인 탓이다. ‘황소바람’이란 말이 있다. 좁은 틈 사이로 세게 불어드는 바람인데, 큰 기압 차에 충분히 이해될 일이다. 그렇지만 어린 아들을 재우던 젊은 어머니에게 틀어진 문틈 사이로 밤새 밀고 들어오는 찬바람의 위력이란 황소보다 컸지 않았을까? 바람의 의미는 세기나 방향과 같은 것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겨울 가뭄으로 메마른 산에다가 이맘때의 강한 바람이 더해져 큰 피해가 났다. 이제는 비단처럼 보드랍고 화창한 ‘명주바람’만 와서, 이 3월 바람으로 힘들었던 모든 이를 위로해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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