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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혐오, 주워담지 못할 말들

입력
2022.03.11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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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일 서울 서대문구 현대백화점 신촌점 유플렉스 앞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일 서울 서대문구 현대백화점 신촌점 유플렉스 앞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도발이라는 말도 못한 벙어리 행세를 했죠. 이런 정권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수 있습니까?"

3·1절 저녁, TV 뉴스를 보다 귀를 의심했다. 윤석열 당시 대선 후보가 유세 현장에서 "벙어리 행세"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고서다. 벙어리는 '음성 언어를 소리 낼 수 없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로 장애인 비하 용어다. 절름발이, 귀머거리 등과 함께 관용적 표현으로라도 더 이상 쓰지 않기를 사회적으로 합의한 단어다.

물론 아직 완벽히 사어(死語)가 되진 않았으니 모를 수 있다. 겨울만 되면 여전히 벙어리 장갑을 손모아 장갑, 엄지 장갑으로 바꿔 쓰자는 말이 나온다. 아직 살아있는 말이라서다. 그렇다고 실수라고 넘어가기엔 너무 무신경하다고 생각했던 건, 그가 벙어리라 소리 높여 외칠 때 한 발자국 뒤에 수화통역사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수화통역사는 그날 벙어리라는 단어를 수어로 뭐라 통역했을까.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선거 기간 타인의 세계에 무지를 넘어 무례한 태도로 일관했다. "손발 노동은 아프리카나 하는 것" "극빈한 생활을 하고 배운 것이 없는 사람은 자유가 뭔지도 모를 뿐 아니라" "없는 사람은 부정식품이라도 선택할 수 있게 해야"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등 발언으로 차별과 혐오를 드러냈다. 공교롭게도 대상은 모두 소수자와 약자다. 남성들만의 호칭인 석열이 '형'으로 자신을 지칭하며 일부 성별을 대변하는 후보임을 숨기지 않았다. 그의 청자는 자주 가난하지 않은, 못 배우지 않은, 한국인, 비장애인, 남성으로 국한됐다. 이 세계에서 빈곤층, 저학력자, (저개발국) 외국인, 육체 노동자, 여성은 철저히 타자화된다.

정치인들은 선거 후일담을 이야기할 때 '표만 준다고 하면 간이고 쓸개고 빼줄 것처럼 굴게 된다'고들 한다. 선거 중 무수한 감언이설과 거짓 공약이 탄생하는 연유일 테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윤 당선인과 캠프는 왜 이들을 위하는 '척'도 하지 않을까. 한 표가 아쉬울 텐데 특정 집단의 배제를 선거 전략으로 내세운 건 어째서일까. 갈라치기를 통해 우리 편을 결집시키기 위해서였든, 처음부터 버리는 표로 생각했든 이들의 표가 '덜 중요했다'는 것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권력의 심리학'에서 저자는 "자신이 강력한 사람이라는 기분이 들수록,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신경을 덜 쓴다"고 설명한다. 권력자는 "타인과 공감해야 할 필요성을 덜 느끼기 때문"이다. 상사의 기분을 살피는 건 부하 직원이다. 강자는 약자에 대해 알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윤 당선인이 정치에 입문한 뒤 지난 7개월 동안 했던 말들은 대개 강자, 권력자를 대변했다. 국민을 아우르는 대통령 후보자, 정치인의 언어는 아니었다.

지방선거가 3개월도 채 안 남았다. 많은 후보자가 여러 구호를 내걸고 선거판에 뛰어들 것이다. 낙승을 예상했던 국민의힘은 신승이 되자, 이제야 부랴부랴 차별과 혐오, 배제의 전략이 결코 성공적이지 않았다고 평가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0.7%포인트라도 어쨌든 선거는 이겼고, 현재는 성공한 과거를 보고 배우는 법. 5월이 되면, 미처 주워담지 못한 혐오의 말들이 또다시 허공을 뒤덮을까 두렵다.

송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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