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학대영상 방치하는 커뮤니티 운영자도 책임지게 해주세요"

입력
2022.03.1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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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 책임 요구하는 창원 고양이

편집자주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철학으로 시작된 청와대 국민청원은 많은 시민들이 동참하면서 공론의 장으로 자리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말 못하는 동물은 어디에 어떻게 억울함을 호소해야 할까요. 이에 동물들의 목소리를 대신해 의견을 내는 애니청원 코너를 시작합니다.


경남 창원시 한 식당에서 운영자와 지역 주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살던 두부가 지난 1월 20대 남성에 의해 무참히 살해됐다. 사진은 생전 두부의 모습. 카라 제공

경남 창원시 한 식당에서 운영자와 지역 주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살던 두부가 지난 1월 20대 남성에 의해 무참히 살해됐다. 사진은 생전 두부의 모습. 카라 제공

저는 경남 창원시에 사는 고양이입니다. 올해 1월 26일 동네 식당 주인이 돌보던 동족 '두부'가 20대 남성에게 무참히 살해됐습니다. 엄중 처벌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20만 명 이상, 동물권 행동의 검찰 제출용 탄원 서명에 2만 명이 각각 동의하고 참여했을 만큼 많은 이들이 분노했죠.

공분이 가시기도 전에 온라인상 잔혹한 고양이 학대 범죄가 또 발생했습니다. 두부 사건 이틀 뒤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의 '야옹이 갤러리'에 고양이를 포획해 흉기로 찌른 뒤 불에 태우는 행위를 촬영한 영상과 사진이 올라온 겁니다. 오후 3시부터 게시된 영상은 논란이 확산되자 게시자가 다음날 새벽 1시쯤 자진 삭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달 5일 마감된 '길고양이를 학대하는 갤러리를 폐쇄하고 엄중한 수사를 해주십시오'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22만 명이 동의해 답변 요건을 충족했습니다. 동물보호단체들은 해당 게시물을 올린 이용자와 갤러리를 폐쇄하지 않은 디시인사이드 대표를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고, 경찰이 수사에 나섰는데요.

온라인 동물학대 영상 게시, 누군가에게는 간접 학대

올해 1월 말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내에 고양이를 칼로 찌르고 불에 태우는 현장이 담긴 영상과 사진이 올라와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카라 제공

올해 1월 말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내에 고양이를 칼로 찌르고 불에 태우는 현장이 담긴 영상과 사진이 올라와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카라 제공

디시인사이드 갤러리에 잔혹한 동물 범죄 영상이 올라온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동네 새끼 고양이 두 마리를 잡아와 때리고 물에 빠트리고 던지는 학대 과정을 '놀이'처럼 중계한 글과 사진이 지난해 7월 올라왔고요. 최근까지도 '길고양이 싫어하는 사람들 방', '길고양이 싫어하는 사람 모임 안티길냥이월드' 등의 갤러리에서 고양이를 포획해 가혹 행위를 벌인 사진과 영상이 공유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이들은 학대 방법 등을 교환하고, 서로 학대를 부추겼습니다.

동물 학대 행위를 온라인에 공유하는 건 2차 학대, 2차 가해로 이어집니다. 미성년자를 포함한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되기 때문이죠. 박미랑 한남대 경찰학과 교수는 "지속적인 학대 영상 노출은 누군가에게 간접 학대이고 이는 동일한 행위에 대한 가해자를 양산해 내는 환경을 제공하게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지난해 7월 디시인사이드에 올라온 새끼 고양이의 모습. 이 게시자는 해당 고양이를 학대하는 영상을 놀이처럼 중계해 올렸다. 결국 한 마리는 사망했고 나머지 한 마리의 행방은 알 수 없는 상태다. 카라 제공

지난해 7월 디시인사이드에 올라온 새끼 고양이의 모습. 이 게시자는 해당 고양이를 학대하는 영상을 놀이처럼 중계해 올렸다. 결국 한 마리는 사망했고 나머지 한 마리의 행방은 알 수 없는 상태다. 카라 제공

동물 학대 영상의 온라인 게시는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익명으로 글을 쓸 수 있고, 로그인과 개인정보가 남지 않아 용의자를 특정하기 어렵다는 점을 악용하는 거죠. 게다가 디시인사이드는 문제가 된 '야옹이 갤러리'를 폐쇄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 책임 요구할 수 있어야"

한국동물보호연합 등 동물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14일 오후 서울 마포경찰서 앞에서 산 채로 길고양이를 불태우는 등 동물 학대 영상을 디시인사이드에 올린 사람들에 대한 강력 처벌 촉구를 하고 있다. 뉴시스

한국동물보호연합 등 동물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14일 오후 서울 마포경찰서 앞에서 산 채로 길고양이를 불태우는 등 동물 학대 영상을 디시인사이드에 올린 사람들에 대한 강력 처벌 촉구를 하고 있다. 뉴시스

동물단체와 범죄 전문가들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 최소한의 책임을 요구할 수 있는 규제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합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전진경 카라 대표는 "디시인사이드는 통신사업자로서 이익을 취하고 있지만 시민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역할조차 하고 있지 않다"면서 "해외 극우 온라인 사이트인 포챈(4chan)은 동물학대 영상 게시로 인해 64만 달러(약 7억9,000만 원)의 벌금을 받았다"고 소개했습니다. 이상경 서울경찰청 과학수사과 프로파일러"사이버 공간에 학대 영상을 게시하는 범죄는 웹사이트 이용 권한을 주는 것 자체가 범행 장소를 제공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지므로 관리자의 책임과 감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죠.

동물권행동 카라는 지난달 11일 고양이 학대 영상을 올린 '성명불상의 글 게시자'와 영상을 방치한 디시인사이드 대표를 경찰에 고발했다. 카라 제공

동물권행동 카라는 지난달 11일 고양이 학대 영상을 올린 '성명불상의 글 게시자'와 영상을 방치한 디시인사이드 대표를 경찰에 고발했다. 카라 제공

사실 커뮤니티 운영자에게 책임을 묻기 위한 법은 이미 발의됐습니다. 지난해 7월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입니다. 정보통신망법 제44조에 따르면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 성 착취 영상 등 불법촬영물에 대해 유통 방지 책임자를 지정하고,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최대 2,0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데, 이 불법촬영물 범위에 동물 학대 영상을 넣자는 내용입니다.

온라인상 동물 학대가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경찰의 적극적인 수사는 물론이고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의 역할과 책임이 중요합니다. 이에 이 의원이 발의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하며, 학대 영상을 방치하고 해당 갤러리를 폐쇄하지 않는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도 책임을 물을 것을 요구합니다.

동물학대 영상을 방치하는 커뮤니티 운영자에게 책임을 묻자는 창원 한 동네 고양이가 낸 청원에 동의하시면 포털 사이트 하단 '좋아요'를 클릭하거나 기사 원문 한국일보닷컴 기사 아래 공감 버튼을 눌러 주세요. 기사 게재 후 1주일 이내 500명 이상이 동의할 경우 해당 전문가들로부터 답변이나 조언, 자문을 전달해 드립니다.

고은경 애니로그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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