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의 지휘자 아바도처럼, 새 대통령도

'경청'의 지휘자 아바도처럼, 새 대통령도

입력
2022.03.10 20:00
25면

클라우디오 아바도 ⓒMezzolivekr

'세상의 끝에서 읽는 한 권의 책'을 추천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대선 때여서인지 더더욱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지구멸망 직전에 사과나무를 심듯, 숭고하고 장엄한 책을 소개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다른 존재의 소리에 귀기울이는 '경청'을 마음 속 사과나무로 삼기로 했다. 그리곤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Claudio Abbado)의 인생을 담은 평전을 추천했다.

아바도는 음표의 주선율뿐만 아니라 쉼표의 침묵까지 귀기울여 듣길 원했던 지휘자였다. 단원들을 이끄는 리더십에 있어서도 명령이나 금지 대신 구성원의 의견을 경청하며 개성과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했던 탈권위적 지휘자였다. 그러니 대선의 혼돈이나 지구 멸망 직전에 곱씹어 보아야 할, 내 편과 네 편으로 갈라져 양극화의 파국으로 치닫는 지금, 더 공들여 소개하고 싶은 지휘자였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자칫 거대한 구조물의 작은 부품처럼 자신의 개성을 마모시키고 지휘자의 리더십에 휘둘릴 우려가 있다. 하지만 아바도는 관현악 사운드에 실내악적 특성을 이식시키며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실내악 주자처럼 예술적 자율성을 발휘하도록 이끌었다. 한 악기가 하나의 성부를 고스란히 대표하는 실내악은 각 개별 성부가 음악적 토론의 치열한 당사자로 기능한다. 아바도가 서로의 연주를 헤치지 않는 범위에서 음악적 재량권을 허용하자 단원들은 개성과 책임이 공존하는 실내악적 이상을 교향악에서도 구현할 수 있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 ⓒMezzolivekr

아바도는 '하라, 하지마라'의 지시보단 상대방을 무장해제 시키는 배려의 기술로 단원들의 마음을 얻었다. 동반자 관계를 북돋기 위해 개개인의 개성뿐만 아니라 현재 처한 일상이나 심리적 상황까지 꼼꼼히 파악하며 단원들의 역량을 최대한 이끌어냈다. 그러니 아바도와 함께하는 단원들은 주눅 들지 않았다. 실제는 환상에 불과하다 해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석하고 있다고 느끼면서 자발적이고도 자율적인 사운드를 발산시킬 수 있었다.

그가 리허설 중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서로 들으세요."였다. 악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연주 실력보다 다른 단원의 연주에 귀기울여 듣는 능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 주장할 정도였다. 그러니 '경청'은 아바도의 음악관 중 가장 중요한 미덕이었다. 아바도는 단원들에게 집요하고도 반복적인 경청을 유도했다. 단원들이 무작정 지휘자의 지시를 기다리거나 따르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화성이나 선율적으로 중요한 순간에 어떤 악기의 소리에 귀기울여야 하는지 방향을 설정해주며 단원들 스스로 곡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도를 상승시켜 주었다.

이를테면 아바도의 리허설에선 트럼펫 주자에게 소리가 크다며 무작정 음량을 줄이라 요구하는 대신 주선율을 맡고 있는 오보에와 바이올린이 어떻게 등장하는지 귀기울여 듣게 한다. 반주에 불과한 트럼펫이 스스로 음량을 조절하도록 자발적 재량을 틔워주는 것이다. 덕분에 아바도 사운드의 특징은 풍성하고 유연했다. 강력한 음량인 ff를 연주할 때도 과격하기 보다는 '풍부'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오케스트라의 듣고자 하는 '집단적 의지'는 단원들의 자발적인 역동성으로 자연스레 연결되었다.

이 땅엔 한동안 정치적 격변이 소용돌이 칠 것이다. 아바도가 추구했던 경청의 리더십이 우리에게도 절박하게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인생에서도 음악에서도 우선 들을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상대방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다." 새로 맞이하게 될 대통령에게 오케스트라를 빗댄 아바도의 언급을 하나 더 전하고 싶다. "권위에 집착하는 사람에겐 정작 권위가 없다. 지휘자는 명령하는 독재자가 아니다. 오케스트라는 단원들과 함께하는 공동체이다."

조은아 피아니스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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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아피아니스트ㆍ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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