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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의 장미 한 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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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생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다른 나라들처럼 3월 8일 무렵에는 꽃값이 세 배나 오르길 바랍니다. 밸런타인데이는 알아도 이날은 모른다는 제 조카 같은 대학생이 더는 나오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어제가 그날이었다. 아마도 강남의 빌딩 화장실에서 노란 고무장갑을 끼고 변기를 닦던, 온갖 전화에 시달리는 콜센터에서, 코로나 돌봄으로 지친 병동에서, 종일 미싱을 돌리는 섬유공장에서, '이름 없는' 여성 노동자 수백 명이 붉은 장미 한 송이를 받았을 것이다.
변한 게 있다면 꽃을 건네주고 다정하게 포옹해주는 사람이 바뀌었다는 것뿐이다. 옆집 아저씨처럼 사람 좋은 그 너털웃음과, 삶의 고단함을 한 방에 날려주는 재담을 더는 보고 들을 수 없게 됐다.
그가 떠난 지 벌써 4년, 그래도 붉은 장미는 17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이 땅 여성들의 거친 손에서 피고 있다.
노회찬은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이 돌아오면, 남들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이 땅의 여성 노동자들을 찾아 붉은 장미 한 송이를 선물한 사람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엔 노회찬 재단이 이어가고 있다. 3월 8일 새벽 4시에 구로동 거리공원정류장에 가면 노회찬이 있었다. 강남으로 가는 시내버스 6411번의 출발지다. 승객은 대다수 빌딩 청소를 하러 가는 여성 노동자들이다.
그가 남긴 명연설 '6411번을 아십니까'를 다시 읽는다.
"이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머니입니다.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한 달에 85만 원 받는 이분들이야말로 투명인간입니다.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이분들이 그 어려움 속에서 우리 같은 사람을 찾을 때 우리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들 눈앞에 있었습니까. 그들의 손이 닿는 곳에 있었습니까. 그들의 소리가 들리는 곳에 과연 있었습니까."
장미 한 송이가 뭐 대수랴. 붉은 장미 한 송이가 역사를 바꿀 수 있으랴. 물론 아니다. 하지만 상징은 우리를 일깨우는 힘이 있다. 붉은 장미에는 여성해방운동의 아픈 역사가 있다.
1908년 3월 8일 뉴욕의 럿거스 광장에서 2만여 명의 여성 의류 노동자가 시위를 벌였다. 열악한 작업장에서 화재로 숨진 여성들을 기리기 위해 거리로 뛰쳐나온 것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빵과 장미를!"이라고 외쳤다. 빵은 육체적 양식인 생존권이요, 장미는 정신적 양식, 참정권이다. 빵과 장미는 이후 전 세계적으로 여성운동의 상징이 됐다.
노회찬은 꽃 말고 말로도 우리를 위무했다. 온갖 막말이 난무하는 유세 현장을 보며 문득 그의 촌철살인 풍자가 그리워진다. "50년 동안 똑같은 판에다 삼겹살 구워 먹으면 고기가 시커메집니다. 판을 갈 때가 이제 왔습니다.", "모기들이 반대한다고 에프킬라 안 삽니까?" 노회찬 어록을 찾아 읽다 보면 포복절도한다. 그런데 그의 어록 포복절도(抱腹絶倒)란 '배를 가득 채우고(飽腹) 도둑을 근절하겠다(絶盜)'는 뜻이란 걸 아는지. 그가 꿈꾼 세상이다.
오늘 밤 새 대통령이 탄생한다. 내년 115회 '세계 여성의 날'에는 그가 장미 딱 100송이만 자기 월급으로 사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 보냈으면 좋겠다. 노회찬은 비주류였지만 장미꽃은 비주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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