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에 안 들어도 투표 할 이유

입력
2022.03.08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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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20대 대통령선거 본투표일을 하루 앞둔 8일 경기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담화문을 발표하며 코로나19 확진자 사전투표 혼란과 관련해 사과하고 있다. 과천=서재훈 기자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20대 대통령선거 본투표일을 하루 앞둔 8일 경기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담화문을 발표하며 코로나19 확진자 사전투표 혼란과 관련해 사과하고 있다. 과천=서재훈 기자

2,500년 전 그리스 아테네의 데모크라티아(demokratia, 평민과 지배의 합성어)는 민주주의의 원형으로 불리지만 사실 당시 참정권은 모두에게 주어진 게 아니었다. 귀족들과 전쟁에 참여한 일부 시민들에게만 부여됐다. 프랑스혁명 후 서구 근대 국가에서 투표권이 확대된 것도 징병제와 무관하지 않다. 목숨을 건 대가였던 셈이다. 가난한 공장 노동자도 투표하게 된 건 산업혁명 이후 차티스트 운동이 일어난 19세기 후반이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참정권은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국가 차원에서 여성 참정권이 처음 허용된 건 1894년 뉴질랜드에서였다. 미국 전역에서 흑인들의 투표권 행사가 전면 가능해진 것도 1965년이다.

□ 국민들이 직접선거로 국가 지도자를 뽑는 건 결코 당연한 게 아니다. 오랜 기간 수많은 이들의 희생으로 얻은 귀중한 성취다. 인류사는 참정권이 확대돼 온 과정이라 할 수도 있다.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획기적인 남녀 평등 선거권을 천명한 것도 3·1운동의 또 다른 성과이고, 1987년 직선제 도입은 민주화 항쟁의 산물이었다. 우리가 대선을 치른다는 건 정말 감사해야 할 일이다. 주변국과 비교하면 더 자랑스럽다.

□ 아직 누굴 찍어야 할지 정하지 못한 이들도 적잖다. 맘에 드는 후보가 없는 건 물론이고 그나마 덜 나쁜 차악을 고르는 것도 쉽지 않은 비호감 선거다. 기권도 유권자의 의사표시란 주장도 나온다. ‘어차피 똑같아, 바뀌는 건 없어’라는 냉소와 체념도 팽배하다. 그러나 투표를 하지 않는 건 역사에 대한 망각이자 직무유기이다. 내일의 역사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도 기표소엔 가야 한다. 투표도 하지 않은 채 4류 정치를 비난만 하는 건 의무는 다하지 않은 채 투정만 부리는 것과 같다.

□ 사실 저 자신도 스스로 맘에 들지 않을 때가 더 많지 않나. 시대나 부모가 맘에 안 든다고 내 삶을 방치할 순 없듯 지지할 후보가 없다고 소중한 한 표를 버릴 순 없다. 2008년 6월 강원 고성군수 선거에선 단 한 표 차로 승부가 갈렸다. 한 표가 역사도 바꾼다. 한심한 선관위 행태가 미덥지 못해도, 그렇기에 더 투표해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이제 유권자의 시간이다.

박일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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