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섬, 한일 외교타협은 불가능한가

입력
2022.03.09 00:00
26면

세계유산등재 놓고 양국 외교전 돌입
일본은 모든 역사 진실 알리고
한국은 인류유산 보존에 협력

사도 광산을 대표하는 아이카와 금은산에서 메이지시대 이후 건설된 갱도. 연합뉴스

사도 광산을 대표하는 아이카와 금은산에서 메이지시대 이후 건설된 갱도. 연합뉴스

사도 광산이 또 하나의 한일 외교전 소재로 부상했다. 사도섬은 동해의 일본쪽 해안도시 니가타시에서 페리호로 1시간 남짓 거리에 있는, 일본 본토를 제외하면 오키나와 다음으로 큰 섬이다. 자연과 풍광이 아름답고 에도시대 막부의 돈줄을 담당했던 금의 최대 산지로 유명하다. 면적은 제주도의 절반, 인구는 약 5만5,000명으로 한때 관광지로 유명했지만 근래 들어 쇠락의 길을 걸어왔다.

일본 정부는 지난 2월 1일 사도섬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해 달라는 추천서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냈다. 주민들은 이곳이 문화유산으로 등재될 경우, 일본 국내뿐 아니라 세계에서 관광객이 몰려와 관광산업 발전을 이룰 것을 고대하여 10년 전부터 세계유산 등재를 일본 정부에 줄곧 간청했다. 일본 정부는 광산유적 중에서도 에도시대(1603~1867)의 금산만을 대상으로 하고 메이지(1868) 이후 광산은 제외하는 방식으로, 2023년 세계유산 등재를 목표로 하는 추천서를 제출했다.

일본 정부의 이러한 결정에는 등재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표면화될 수밖에 없는 조선인 강제동원을 둘러싼 한국과의 역사 마찰을 회피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또한,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과 현재 진행 중인 일본 기업에 대한 강제집행 과정도 그 배경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한국인의 강제노역 피해 현장인 사도 광산의 등재 추진에 강한 유감을 표명하며 중단을 요구했다. 일제강점기인 1939년 이래 사도섬에는 약 1,200명의 조선인이 가혹한 노동환경에서 구리, 철 등의 광물을 캐는 노동자로 일한 역사가 존재한다.

한국 정부가 이토록 반대에 나선 데에는 일본 정부가 2015년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의 하나인 하시마(군함도)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며 조선인 강제동원 등과 관련한 '모든 역사'를 전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년 7월 일본은 이 일로 유네스코의 경고를 받은 바 있다. 인류 보편의 유산과 가치를 보존하는 데 결코 어두운 역사를 덮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양국은 정부 차원에서 태스크포스(TF)를 조직하여 각각 사도섬 세계유산 등재와 반대를 위한 대대적인 활동에 돌입했다.

내년 6월 등재 결정까지 양국은 유네스코를 무대로 한 외교전쟁을 또 한 차례 치를 전망이다. 우선은 전문가로 구성된 유네스코 민간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 유적협의회(ICOMOS: 이코모스)가 오는 4월부터 사도 광산에 대한 서류심사와 조사를 진행하고 내년 5월쯤 등재, 보류, 반려, 등재 불가 가운데 하나를 권고하게 된다. 이코모스의 이 권고안을 놓고 21개국이 참여하는 세계유산위원회가 최종 결정을 하게 되는데 보통은 만장일치로 결정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견이 노출될 경우 3분의 2(14개국) 이상 찬성으로 결정될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중국 다음으로 분담금을 많이 내는 일본의 영향력을 결코 무시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사도 광산 등재 이슈가 과연 한일 양국이 대대적 역사전쟁을 벌여야 할 주제인가, 국제무대에서 제로섬 게임의 사활을 건 외교전을 치러야 할 사안인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일본이 아무리 부끄럽더라도 역사의 진실을 숨기지 않고 제대로 알릴 용기를 발휘한다면, 한국이 인류의 보편가치와 유산을 보호하겠다는 뜻을 굳이 나서서 방해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최근 한일관계는 정치외교, 안보, 경제, 문화면에서 전방위적 갈등을 벌이고 있다. 사도섬 등재 문제가 한일 갈등의 또 하나의 악재가 되기보다는 모처럼의 대화와 대타협을 통해 윈윈의 길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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