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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를 끝낸 내가 해야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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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왔다. 차기 대통령으로 누구를 뽑을지 일찍 결정한 이도 있을 것이고, 투표소에 들어선 순간까지도 결정하지 못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기권도 하나의 선택지로서 투표 자체를 보이콧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마음 깊이 응원하는 후보가 있어 열정적으로 그 후보를 응원한 적도 있었고, 투표소에 들어가서야 겨우 결정을 내린 때도 있었다. 도무지 뽑을 이를 찾지 못해 기권을 선택한 적도 있었다. 방식은 달랐을지 몰라도, 어느 것 하나 진지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시민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존중한다. 나와 같은 선택을 했든 아니든, 기권했든, 각자의 방식으로 유권자의 권리를 행사한 이들의 선택을 존중한다. 시민으로서 덕성이 높아서가 아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로부터 나의 선택을 존중받고 싶기에,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대접하라"라는 황금률을 그저 따를 뿐이다.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지지한 이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세상이 갑자기 좋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내가 지지하지 않은 이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세상이 갑자기 나빠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알고 있다. 나와 같은 후보를 지지한 이들이 모두 착하고 선한 이들이 아니듯이, 내가 지지하지 않은 후보를 선택한 이들이 모두 악하고 나쁜 이들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알고 있다. 내가 투표한 정당이 국정운영을 잘 해낼 수 있듯이, 내가 투표하지 않은 정당도 국정운영을 잘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지지한 정부가 매 사안마다 100% 올바른 공적 판단을 내리지는 못하듯이, 내가 지지하지 않은 정부도 매 사안마다 100% 잘못된 정책 결정을 내리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것은 믿음이 아니라 통계의, 신념이 아니라 역사적 경험의 영역이다.
투표를 마친 내가 해야 할 일은 이것이다. 누군가에 대해 쉽게 기대하지도, 쉽게 낙담하지도 말기. 누군가에 대해 쉽게 천사화하지도, 쉽게 악마화하지도 말기.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신과 천사와 악마의 신계가 아니라,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오밀조밀 모여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는 인간계임을 기억하기. 절대 함께할 수 없을 것 같던 사람들이 사실은 나와 같은 우물, 같은 마을 길을 공유해야 하는 사람들임을 잊지 않기. 산불이 나면 함께 그 불을 꺼야 하는 사람들임을 기억하기. 투표 결과를 기다리며 내가 준비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다.
누가 되든 우리는 우리 앞에 놓여진 삶을 잘 살아낼 것이다. 투표장과 투표장 밖에서 제 몫을 잘 해낸 것처럼 말이다. 지켜볼 것이다. 누가 총성 없는 전쟁터에서 불타버린 것 같은 공동체를 다시 회복할 것인지, 우리 사이에 없어진 오솔길을 내 많은 이들이 오고 갈 큰길을 다시 만들어낼 것인지를 말이다. 따져 물을 것이다. 누가 정말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삶을 안전하고 행복하게 만들 것인지를, 우리의 목소리로, 행동으로, 표로 '곧' 따져 물을 것이다.
승자가 최종 승자가 아니고, 패자가 최종 패자가 아니다. 우리도 쉽게 기대하지도 낙담하지도 않을 터이니, 방금 막 전투를 끝낸 당신들도 승리감에 쉽게 흥분하거나 교만하지 말길 바란다. 패배감에 쉽게 좌절하거나 냉소적이 되지도 말길 바란다. 5년이 생각보다 짧음을 꼭 기억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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